열린다 비유 : 포도원 품꾼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 3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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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와 함께 현대의 성경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3대 난해 비유로 손꼽힌다.  물론 내게도 그렇다.   신약을 읽으면서 짧게 나오는 이 비유들은 머리를 묵직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이게 뭔가하고 고심을 하게 만든다.  분명 천국의 이야기,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런 답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비단 나 뿐 만은 아닐 것이다.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쫒았을 때는 말이다.

 

 “내 돈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네가 악하게 보느냐.”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주인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아침 일찍 포도원 주인은 품꾼을 구하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 일을 하기 시작한 품꾼에게 주인이 약속한 돈은 한 데나니온이었다.  그런데 주인이 또 품꾼을 데리고 온다.  마지막에 데리고 온 품꾼은 1시간만을 일을 했고, 주인은 그에게 한 데나니온을 지급한다. 모든 품꾼들이 주목하기 시작한다.  포도원 주인이 자신들에게는 얼마를 줄지 말이다.  그들역시 한 데나니온을 받는다.  무엇이 문제 인가?

 

 주인은 분명 약속을 이행했는데도, 품꾼들은 서운하기 시작한다.  한시간만을 일한 일꾼에게 한 데나니온을 주면서, 꼬박 열두시간을 일한 자신들에게도 한 데나니온을 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분명 주인은 하루의 일당으로 한 데나니온을 이야기했는데 말이다.  <열린다 비유>시리즈는 이 난해한 예수님의 비유를 풀어내고 있다.  난해하기로 따지면 불의한 청지기나 혼인잔치의 비유나 마찬가지다.  내 눈은 열려있지 않고, 내 맘은 주님의 맘이 아니니,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니 그런 결과가 나올것이다.  저자, 류모세 목사님은 <열린다 성경>시리즈로 베스트 작가시다. 성경의 주무대인 이스라엘에서 11년간 사역하면서 류목사님은 성서 시대 유대인들의 문화를 알아야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닫고,<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기획, 출간하였다.  이스라엘의 문화를 통해 성경을 이해하는 <열린다 성경>시리즈는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에 힘입어 예수님의 비유를 그 시대의 청중의 눈으로 한 편 한 편 살펴보는 <열린다 비유>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렇게 이 어려운 비유를 읽으면서 내 눈이 아닌,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려 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비유 속의 포도원 주인이 하나님의 대역이라면 품꾼들은 지금 하나님이 멸망하도록 ‘악한 눈’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불평하는 품꾼들의 사악함과 극악무도함, 후안무치… 도저히 인간의 언어로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도 없는 그런 무섭고 섬뜩한 품꾼들의 죄악이 느껴지는가? 만약 우리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읽으면서 불평하는 품꾼을 향해 일말의 변호하는 마음과 동정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우리도 결국 하나님의 멸망을 바라는 참람한 죄악에 자신도 모르게 동참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p.199)

 

 어렵다.  분명 쉽지만은 않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정의와 세상이 생각하는 정의의 문제 뿐만 아니라,  천국 윤리에서  보상의 개념까지 굉장히 어렵지만, 그러하기에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된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님에도, 내 눈은 보이는 것만을 보게 된다.  엘리사가 사환의 눈을 열어 아합의 군대 뒤의 천군천사를 보여준것 처럼 내 눈 역시 영의 눈이 뜨여지길 바라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얻는것이 당연시 되면서도, 그러지 못하기에, 미련하기에 이렇게 책을 읽고, 이 위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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