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이긴 날 문학동네 동시집 1
김은영 지음, 박형진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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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전화 문자-

 

엄마 휴대폰에 / 문자 메시지를 보내다

"엄마 덥지? / 숙제도 하고 / 방 청소도 다 해놨어요."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 시원한 목소리를 전송한다.

 

-학교와 집 사이-

 

학교와 집 사이는  / 후다닥 걸어서 가면 / 단 5분 거리 / 하지만 나는 / 다섯 시간이나 걸린다

수학은 영재수학 / 국어는 독서논술 / 영어는 웰컴 투 영어나라 / 컴퓨터 워드 3급 / 태권도 품세 심사

학교와 집 사이가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동시는 아이들이 쓴 시라고만 생각했었다.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글들이 쓰여있어서, 당연히 아이들이 쓴 시라고 생각을 한것이 맞을 것이다.   킥킥 거리고 책을 넘기다가 숙연해진다.  그래서 알았다. 아이가 쓴 시가 아니구나.  연륜이 느껴지는 글들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또 킥킥 거린다.

 

문학동네 동시집 전집을 들여놨다.  책장을 펼치질 못했다. 한줄로 세워놓은 책들이 어찌나 곱고 예쁜지, 이 가을 단풍잎들처럼 곱다. 책을 읽은 생각은 하지도 않고는, 책 곱다 소리만 외치니 작은 녀석이 먼저 읽어 내린다.  우리집 작은 아이는 과학 책만 좋아한다.  그런 녀석이 동시집 한권을 읽어버렸다.  그것도 후딱.  하루에 두권씩 읽을꺼란다. 짧으니까.  엄마가 느끼는 감정과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선생님을 이긴 날>이 김은영님 시집의 제목이다. 물론 이 시도 나와있다.

 

-선생님을 이긴 날 -

 

내가 무얼 잘못하면 / 선생님은 내 이름 대신 / 별명을 부른다

선생님이 부르니까 / 아이들도 내 별명을 부른다

오늘은 아침 자습 안 했다고 / 또 내 별명을 불렀다 / 순간 내 머릿속에서 / 시한폭탄이 터져 버렸다

선생님 / 내 별명 부르지 마세요 / 차라리 종아리를 때려 주세요

깜짝 놀라 벌레진 얼굴로 / 나를 노려보기만 하는 선생님

떨렸지만 / 속이 후련했다

 

요 녀석 꽤나 혼났겠다.  어디 선생님께..   그런데, 누구 이야기였을까? 그게 궁금하다.  초등학교 선생님 이시니, 아이들 이야기가 이리도 재미있게 엮어졌을 듯 하다.   엄마이야기는 김은영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이 절절하다.  엄마가 사라져 버린 아이. 그 아이 주변에 변화들.  눈물 흘리는 사람들.  무뚝뚝한 아빠가 잔소리 꾼이 되어가고, 자신은 동생에게 라면박사가 되어 가는 것을 시인은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그리고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시들은 읽는 이의 가슴에 구멍을 내버린다.

 

구멍은 그리 오래 버려두지는 않는다.  엄마에게 보내는 아이의 사랑스런 냉동전화 문자로, 신나게 뿡뿡뿡거리는 오토바이 방귀로, 학교 급식실 음식 냄새로 실감나게 표현한 낚싯줄에 걸린 코로 다 덮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환하게 웃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예쁘다. 곱다. 박형진 님의 삽화가 정겹고, 김은영 시인의 글들이 사랑스럽다.

 

시인은 네가지로 시를 분류해서 실었는데, 1부에서는 자연의 새로운 발견, 2부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3부에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가 느끼는 아픔과 즐거움, 4부에서는 사회ㆍ환경 문제 비판과 학교 주변의 아이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쩜 이리도 적절하게 분류를 해서, 웃기고 울리는 지 모른다.  그리고, 이 가을, 이 곱고 고운 시들이 내 가슴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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