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년의 역신들 - 계유정난과 사육신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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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복위의 성사가 불가능 해지자, 자결한 사람,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사람들 중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이개 등 6명을 우리는 사육신이라 부르고, 평생 절개를 지킨 김시습, 원호, 조여, 남효온, 이맹전, 성담수 6인을 생육신이라고 부른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사육신과 생육신이다. 

 

사육신과 생육신은 어떤 의미일까?  단종의 복위를 논하고 있다.  요즘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공주의 남자>. 피 튀기는 수양대군, 세조의 왕권 찬탈기.  단종 1년에 일어난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곁가지식의 이야기가 풀어져 나오는 드라마이다.  물론 드라마 속 인물들은 실존인물과 가상의 인물들이 골고루 섞여있고, 김종서의 차남, 김승유역시 실존 인물은 아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본 수양대군은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데, 왜 그가 자신의 조카를 죽이면서 까지 왕이 되려고 했을까?  한국인물사연구원에서 펴낸 <계유년의 역신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계유년의 일어났던 일들과, 단종의 죽음이후에 일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육신과 생육신에 대해서 말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 후, 세종에 이르기까지 장자가 왕위에 오른적이 없었다. 정종,태종,세종까지 건국공신이라는 미명아래 장자보다는 힘이 우선시 되었고, 태종 역시 왕권 강화측면에서 삼남인 충녕대군을 왕으로 삼았다.  물론, 세종대왕은 동양의 성군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조선왕조중에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는 분이다.  그리고 세종이후 처음으로 장자인 문종이 왕위에 오르고, 문종의 아들 홍휘는 8세에 왕세손으로 봉해진다.  왕권이 탄탄대로로 이어질것 같던 왕실은 문종의 이른 죽음과 12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으로 인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김종서, 황보인등의 세종과 문종의 신임을 얻었던 인물들이 왕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신권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왕실인 수양대군의 눈엔 힘없는 조카와 신하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집현전 학자임에도 수양대군의 편에 선 신숙주, 책사 한명회등과 함께 수양대군은 단종의 목을 조이기 시작한다.  김종서와 황보인등을 죽인 후, 수양은 단종을 상왕으로 만들고, 자신은 세조가 된다.  상왕이니 임금보다 높은 직책임에도 어린 상왕은 숙부의 문후가 두렸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단종을 복위시키겠다는 기류가 움직이고 있었고, 단종 복위 실폐는 사육신과 생육신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자의든 타의든 단종의 자리를 더욱더 위태롭게 만드는 결과로 돌아온다.  상왕에서 노산대군으로 노산대군에서 노산군으로.  조선의 6대 임금은 이렇게 노산군이 되어 유배를 떠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세종의 사랑을 받고 8세에 왕세손이 되어 12세에 왕이 된 단종은 17세의 어린 나이의 죽음을 맞는다.  단종의 복위는 단종 사후 1백여년이 지난 중종 대부터 시작하여 244년이 지나서야 역사 속에서 새로이 살아난게 된다.  숙종때에 이르러 노산대군의 시호를 추상하여 순정안장경순대왕이라 하였고, 묘호는 단종이라 하고 능호는 장릉이라 하였으며, 단종의 왕비 송씨의 시호는 정순이라 하였다. 역사는 돌고 돈다.  어린 조카를 죽이면서 까지 왕이 된 세조는 왕권강화 측면으로만 본다면 굉장히 강한 임금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갑론을박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것이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하기는 힘이든다.

 

단종과 수양대군, 세조의 이야기와 함께 <계유년의 역신들 - 계유정난과 사육신>에서는 사육신과 생육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데, 선왕조실록을 일반인들이 볼 수 없었던 관계로 남효온이 쓴 <육신전>을 근거로 1977년까지 사육신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문제는 남효온이 계유정난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단종복위운동 때에도 2살밖에 안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육신전>은 구전으로 이어지는 내용을 그가 기록한 책이겠지만, 그로 인해서 2011년 현재까지 <조선왕조실록>에 나와있는 김문기가 아닌, 유응부가 사육신으로 기록이 되어왔고, 사육신묘 또한 7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가타부타 이야기를 하기는 힘이 든 부분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들의 선조들의 문제는 기득권의 문제 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사실을 왜곡해서 알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TV드라마로 역사를 알아버린 아이들은 <태왕사신기>를 보면서 광개토대왕을 판타지로 이해하고, <여인천하>를 보면서 문정왕후와 정난정을 멋진 여인으로만 생각한다.  역사는 <삼국유사>를 통해서 만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역사는 피가 튀고 살이 깎이는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바로 알아야만 한다.  돌고 도는 이 역사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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