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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서수진 작가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6년간 쓴 여덟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묶은 소설집이다.
<골드러시>
표제작인 '골드러시'는 새로 발견된 금광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현상을 말하는데, 뜻과는 반대로 주인공들이 어두운 폐광에 가는 이야기다. 결혼 7주년 기념이 폐광체험이라는게 좀 이상하고, 부부 사이도 두껍고 높은 벽이 있는 것처럼 멀고 어색해 보인다.
이들은 한국에서 호주로 와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비자문제로 속을 앓았다. 진우는 457비자를 약속 받기까지 최저 시급의 70퍼센트만 받으며 일하는 중이었고, 457비자로 2년을 일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어실력이 부족한 진우는 서인의 도움을 받아 파트너 비자를 신청해야했는데, 문제는 서인이 바람을 피고 진우가 알게되자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서인이 없으면 파트너 비자는 무효화되기에 진우는 그녀를 잡을 수 밖에 없었고, 이후로 영주권이 나와도 이상하게도 서인은 진우의 곁에 남았다.
서인은 사랑해서라기보다는 흘러가는 시간에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결혼 7주년이 됐을 때, 이 폐광에 여행을 온 것이다. 음산한 폐광도 별로였지만 돌아가는 길에 차로 친 캥거루도 꺼림직하다. 그 부부 앞에 보여지는 어둡고, 저물어가고, 죽어가는 장면들이 그들의 미래 같아 보인다.
<헬로 차이나>
아파트를 경매하는 일을 하는 혜선의 시각을 통해 중국인들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얘기한다. 혜선은 매번 자신의 경매물을 사주는 중국인 얀 덕분에 먹고 살면서도 딸의 남자친구가 중국인이라는 것에, 자신이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것에 기분나빠한다. 먼 타국까지 와서 여러 차별적인 시선에 발버둥치며 살아내고 있는 본인이면서 스스로도 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졸업 여행>
자식의 교육을 위해 호주로 와서 고생하고 드디어 자신의 가게를 차리고 아이가 졸업을 했는데도 부모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불안의 그림자가 자신들의 기대, 희망인 자식과 연결된다. 그저 아들은 졸업여행을 갔을 뿐인데, 그 지역에 산불이 났다는 뉴스만 듣고도 부부는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불안과 초조에 휩싸인다.
<캠벨타운 임대주택>
같은 한국인 이미자들 사이의 차별을 이야기 한다. 호주에서 나름 자리잡은 한국인 이민자인 다니엘 가족과 나라에서 지원 받는 엉망인 상태의 한국인 여자의 사건을 통해 같은 한국인 이민자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선과 차별이 존재함을 확인한다.
<입국심사>
가장 좋았던 작품.
남자친구 에디를 만나기 위해 유미는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는다. 다만, 지인을 보러왔다는 답변은 미국 입국심사에 적합하지 않다고들 해서 관광하러 왔음을 강조한다. 직원은 볼것도 없는 이곳에 아무 이유 없이 세달이나 있겠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다. 곧 관광하러 왔다는 유미의 거짓말을 알게 된 직원은 현대인의 가장 민감한 프라이버시인 휴대폰을 빼앗고 강제로 유미의 메신저를 훑는다.
이 과정에서 유미의 얼굴은 점차 붉어지고, 읽는 나도 불쾌해진다. 집요하게 묻는 직원은 위장 결혼을 의심한다. 미국에 머무는 3개월 동안 남자친구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내고, 남자친구 에디에게도 전화해 확인을 한 후에야 유미를 놓아준다.
소설집을 읽다보면, 모두 이민자들의 이야기지만, 부딪히는 문제들(차별, 편견)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는 모습, 이루어 놓은 것들이 무너지고 끝장날까하는 두려움, 알지 못하는 미래의 불안감등 마치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국경과 다른 인종의 낯선 풍경 차이보다, 오늘도 살아내기 위한 고통과 몸부림 속에서 동질감과 공감을 더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아주 현실적이고 뼈때리는 소설들이었다. '그래... 나 이런 세상에 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 찬 냉수 한컵 들이킨 기분. 근데 요즘 이런 소설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