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준일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기업에 들어가 10년이 넘게 잘 근무하다 마흔에 조용히 사건 하나를 저지른다. 모두 내려놓고 캐나다로 이민을 간 것, 그곳에서 힘든 한국인 응급구조사가 된 것이다. 겉보기엔 편안한 땅을 박차고 험하고 메마른 땅으로 간 듯 보이지만, 저자에게는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탈출시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캐나다 땅을 밟고 가족을 굶기지 않기 위해 스트립쇼 공연장부터 은행 협력업체 사무실, 경기장 주류 판매소등 최저시급 받는 일들을 하며 겨우겨우 살아간다. 그런 일들을 전전하며 달려오는 버스에 몸을 던지는 상상까지 할 정도로 여유를 잃기도 한다.
이후 그는 2년제 칼리지를 다닌 후, 렌프로 카운티 파라메딕의 현장실무에 적응하면서 수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저지른다. 실수에서 배우면 실력이 된다는 말이 맞다. 그는 누구보다 간절했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실패해도 죽지 않는구나'라는 깨달음과 안정된 마음을 갖게 된다.
저자는 2024년 2월 현재까지 캐나다에서 6년째 파라메딕(응급구조사)으로 일하고 있다. 파라메딕은 환자의 상태를 최대한 정상에 가깝게 끌어올려 궁극적인 치료가 가능한 병원까지 신속하게 이송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하지만 목숨이 오가는 의료 최전선인 현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잔혹하고 치열했으며 몸보다 마음과 정신이 다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치 매일이 저세상에 있다가 자신의 세상으로 겨우 넘어오는 느낌이다.
누군가 죽지 않고 다시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드라마틱하고, 그리 간단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가 말하는 몇가지 사건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사고는 한순간에 평범한 일상을 날려버리고 항상 옆에 있던 가족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일을 아주 손쉽게 해치워 버린다. 또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잔인함이다. 그 참혹한 순간을 직접 목격하게 하는 잔인함은 죽을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슬프고 원통한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응급구조사의 일에 대한 애환과 트라우마들이다. 현장에서 자신에게 튀기는 피와 바닥에 가득 고여 있는 피웅덩이, 남편이 아내를 난로에 대고 밟아서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피해자의 얼굴, 크리스마스에 심정지가 와서 하늘 나라로 간 아홉살 아이, 화상 환자의 살에서 올라오는 냄새등 병원에 도착하여 의사들에게 전달되는 브리핑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생략되지만 이것들은 파라메딕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