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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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다 이렇게 아리고 아픈 것 같다. 시대와 역사에 휘둘리는 개인의 삶들을 바라보는게 익숙해서 그런가..(우리 역사와 비슷한 느낌) 공감과 이입이 잘 되는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은 1918년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킬네이에서 자라던 소년 윌리는 험악한 얼굴을 한 시대의 폭풍우 한가운데 휘말려 가족이 학살 당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둥지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던 집은 불타버리고 존경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두 여동생을 한번에 잃어버리게 된다.

윌리는 어머니와 집의 하녀였던 조세핀과 함께 겨우 살아남았지만, 이 후의 삶은 상실속에 허덕이는 우울한 시절들이 계속해서 이어질뿐이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형벌처럼 난도질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윌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쌓아갔을까. 그 참담함을 상상하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윌리가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을 때 알코올 중독에 빠져 점점 자신을 놓아버리는 어머니와 윌리를 위로하러 멀리서 이모와 사촌 메리앤이 찾아온다. 그리고 메리앤과의 만남에서 또 다시 운명의 비극이 이어진다.

처음엔 윌리가 말하고 그 다음은 메리앤이, 마지막으로 그들의 딸 이멜다가 말하는 소설의 전개는 사실상 한 가정과 개인의 삶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빼앗아가고, 미쳐버리게 만드는 일들뿐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시종일관 우울한 이야기를 잃고 있는데 전혀 가라앉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 오히려 책을 덮었을때는 이상한 희망의 싹이 보여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이야기의 중심이 난도질당한 삶, 운명의 꼭두각시, 유령의 삶, 우울, 상실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버팀의 하루, 또 다시 반복되는 비극을 마주보고, 남는 건 상처뿐일지라도 그래도 품에 안고 가져가려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긴 세월을 놓고 보자면 '결국 단지 비극일 뿐'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어진다.

다만 삶이 언제든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 가끔 화가 나기도 하고 어쩔 수 없겠다라는 낙심으로 남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삶에서 불행과 희망은 아주 가까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 갑자기 한 순간 인생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멜다 퀸턴은 내 이름. 아일랜드는 내 조국. 불탄 집은 내 거처. 천국은 내 목적지.

275p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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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뜻대로 안 될 때 - 낙심, 피로, 분노, 불안을 끊는 온전한 연결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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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누구나 하는 경험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도 통하지 않을 때 결국 낙심하게 되고 방향을 잃고 주체적으로 삶을 잡아당겼던 끈을 놓게 된다. 이 책은 이때 우리가 다시 각성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고쳐먹어야하는지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던 그 문제에 유일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 핵심의 단어는 바로 '연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5절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 곁에 꼭 붙어 있으라는 얘기. 어떤 문제 앞에서도 그분 안에 거하라는 그 말이 삶에서 행동으로 옮기기란 너무나도 어렵다. 때문에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 '연결'을 위해 어떤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지, 200페이지가 넘는 여백에 저자는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이 후 구약성경의 인물들이 자신의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 경험했던 감정들을 살펴보면서 '연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그 분 앞에서의 겸손과 항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

기독교의 신앙은 모두 이런 '믿음'을 깔고 시작한다. 절대 불변하는, 거스를 수 없는 전제 조건이 마치 출발하기도 전에 앞을 가로막는 높은 진입장벽이 되기도 한다. 나도 여기서 오는 거부감이 꽤 컸고, 나름의 하나님이 주시는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후에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것이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일탈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삶이 뜻대로 안 될 때>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져서 힘들어하는 가지들에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된 '연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침서와도 같았다.

읽으면서 예전에 암송했던 성경구절이 떠올라 찾아보았다.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고 밀려오는 감사에 또 마음이 울컥. 나는 내가 갖게 된 이 신앙이 너무 감사하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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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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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에 담긴 것들이 완성도 높은 구성으로 꽉 차여있다. 소설보다는 다큐를 본 느낌. 그렇다고 딱딱하지는 않고 오히려 문장에 쓰는 단어의 조합이 새롭고 참신했다.

작가가 지난해 대선 이후 쌓인 스트레스를 지식인으로서 뭐라도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해서 자신의 생각을 소설을 통해 직접적으로 강하게 설정하고 있다. 만약 이야기에 자신의 정치적인 스트레스를 쏟아 붓기만 했으면 몇 페이지만 읽다 덮었을텐데, 여기에 평범하지만 문제가 다 있는 모두가 공감하는 가족과 세대의 이슈를 담고, 지금 부모가 된 내가 이후의 노년이 되어 자녀들을 바라보는데 필요한 문제들까지 담아내었다. 이건 뭐 이후 세대가 과거 당시대를 너무나 잘 반영하는 사회,정치적 소설로 꼽을 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봄>은 대통령선거 이후 1년을 배경으로 한 4인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이 가족의 특징은 부모가 정치적으로 예민하여 정치 얘기만 나온다하면 금방 대화의 온도가 가파르게 올라간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가족 구성원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화자가 되어 말한다. 처음엔 엄마, 다음은 딸, 아들, 그리고 아버지. 피붙이고 한 가족이지만 타인보다도 모를 수 있는게 가족인데, 이게 식구 수가 많을수록 더 제각각인 법이다.

엄마 정희는 2년전 기타를 들고 가출한 아들과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국제결혼에 커밍아웃까지 동시에 터트려버린 딸 하민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기만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더 이상 어떤 문제도 부모와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며 통보할 뿐이다. 여기서 부모로서의 얼굴은 두가지뿐이다. 놀람과 슬픔. 자녀들의 고민 사이 사이에 부모의 역할이 비집고 들 틈은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 책을 20대가 읽는다면 하민과 동민의 시각에서 볼 것이고, 나 같은 자녀가 있는 30, 40대부터는 부모인 정희와 영한의 시각에서 볼 것이다. 세대의 격차와 사고를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어 모두가 공감하고 서로의 생각을 마주할 수 있는 다면적인 소설이라 하겠다.

가장 작은 사회 단위인 가족의 분열을 통해 현 사회와 정치에 대해 비판한 것 같다. 그리고 이 후에 고름이 터지고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정치적인 문제도 나아지길 바라는 작가의 소망도 담겨있는 듯 하다. 이 소망을 담기위해 소설의 형태를 사용했나보다.

그리고 이 말을 하기 위해 작가는 하얀 백지에 아주 굵은 직선으로 망설임 없고 쭉쭉 그어놓은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깊이 동감하고 끝에 가서는 마음도 시원해졌다.

작가의 전작인 <세 여자>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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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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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쌓여 삶을 이루는데, 그 하루의 대부분은 돈을 버는 '일'이 차지한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해야하는 것인데, 산재사고를 볼 때마다 거꾸로 뒤집어진 세상을 보는 듯하다. 한 사람의 생명이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왜 계속해서 일터에서 사람이 죽는 것일까.' 기업들은 일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고 현장을 마음대로 훼손하고, 피해 노동자 개인의 실수라고 오히려 뒤집어 씌운다. 아니 그렇게 당당하면 현장은 왜 훼손하는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하는 일터에서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죽는다'라는 말을 하는 기업의 행태가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기업의 이익과 자본 축척을 위해서는 죽음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려서 거북스럽다. 이 책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유를 알지 못하는 죽음을 당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해 쓴 책이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많은 산재중에서도 '사고 산재'에 집중한 책이다. 대부분의 예시도 제조업 일터의 산재를 들었다. 1부는 2021년 평택항에서 죽은 20대 노동자 이선호씨 사고를 다룬다. 아들과 함께 일했던 아버지는 안전을 방치한 기업때문에 사고 현장에서 자는 듯이 엎드려 죽은 아들을 보게 된다. 안전관리자 한 사람만 있었어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는데, 10만원(안전관리자 일당) 아낀다고 자신의 아들이 죽은 것이다. 다행히 선호 씨 죽음의 구조적 원인을 증언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어서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화되고 공론화되기 쉬웠다.

이선호씨의 사건과 더불어 2부에서 보여지는 여러 제조업 산재 사망 사고를 보다보면 산재의 원인이 노동자의 실수보다는 여러 사회적 분위기와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더 심화되는 듯 보인다. 산재사고에 많은 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언론구조의 문제도 있다.

여기서 '구조'란 노동자 개개인의 성향을 넘어서는 견고한 체계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쏠리는 위험한 작업, 원-하청의 번거로운 소통, 2일 1조 원칙을 무시하는 관행 등이 산재를 유발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71p

이 견고한 구조체계는 결국 예방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돈에 미친 나라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한 노동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입장들이 너무나 한결같아 소름이 끼친다. 기업의 기만과 마치 죽음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듯한 나라, 깊이 탐색하기보다 단신 보도에만 바빴던 언론 등 또렷한 답 없이 길을 헤메고 있는 느낌이 들지만 사실 어떤 방법보다도 이 책을 통해 산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결국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공장 안의 사고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 앞서 문제가 됐던 잘못된 구조체계에 조금씩이나마 금이 갈 것이고 느리더라도 천천히 변화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것을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자꾸 들여다보며 왜를 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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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프로젝트 -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본격 장르만화 단편집
봉봉 지음 / 씨네21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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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6개의 단편집이 수록된 봉봉 작가의 장르만화집이다. SF, 판타지, 블랙코메디가 흐르는 모든 이야기들이 과하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은 개연성과 무게감이 있다. 일단 기발한 소재와 상상력으로 첫인상을 강한 호기심으로 사로잡고 현재 인간의 본능과 부조리한 사회를 풍자하는 뒤틀린 유머를 이야기 속에 흘려넣어 더 이상 서사의 재미로 끝낼 수가 없어진다. 작가의 탁월한 통찰력과 근미래에 던지는 메세지에 긴장감과 위화감이 생겨나고 지금도, 앞으로도 이슈화 되는 문제들에 있어서 짧은 시간안에 깊은 사유에 잠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완성도 높은 책이다.

ANA

인간이 가진 고유한 기능중 하나인 생명의 탄생이 인공자궁으로 대체될 수 있는 시대. ANA는 인공자궁을 출시한 회사의 이름. 불임 부부들에게는 축복이지만, 가격이 비쌌고, 이로 인해 여러가지 사회적인 부작용이 튀어 나온다. 뭔가 가장 기본적인 윤리 시스템이 붕괴되는 느낌. 불쾌하지만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짐작되는 미래.



웰다잉 프로젝트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가장 아름다운 연출로,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도와주는 전문과들과 이 모든 과정이 <웰다잉 프로젝트> 프로그램 리얼리티 쇼로 송출된다. 언제나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는데, 또 언제나처럼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더 한쪽으로 계속 기울진 선택을 한다.



붉은 여왕

유전자 조작으로 모두가 바라는 미의 형태를 동일하게 맞출 수 있는 세상. 하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미의 기준은 유행처럼 매번 바뀌고 그때마다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온갖 시술에 매달린다. 지금도 외모지상주의는 심화되고 있다만 모두가 같은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소름이 끼친다.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자리잡은 획일적인 형태를 바라보며 인간이 가진 모순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진다.


여섯편의 작품 모두 좋았지만 앞의 세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인건가. 사람은 참 이상하다. 무리를 만들고 조직화 되면 이상한 방향으로 더 자극적이고 난폭해진다.

과학의 발달과 방향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스스로 그것을 망치는 느낌이든다. 부디 자멸의 길을 걷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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