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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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유년시절은 무척 외로웠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엄마와 할머니와 지내며 궁금한 것이 생겨도 편히 묻지 못하였을 것이다. 엄마의 도피처가 술이었던 걸 얼핏 알게 된 것은 한참 자라서였고, 일생일대의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결혼을 앞두고도 엄마는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술 때문에 결혼식을 함께 하지 못했으면서 딸을 비난하는 게 엄마였다. 그러니 도피처라고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었을 거라 여겨진다. 작가가 안타까운 건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마사지샵을 가는 그 시간에 엄마에게 맘 놓고 아이를 맡기지 못하였다. 엄마는 손녀를 하염없이 예뻐해 줬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더 컸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작가가 어려서부터 봐 온 엄마는 그렇게 딸에게 불신을 심어주었다.

책의 중간에 아이를 낳고 2인실 생활을 담은 부분이 있다. 부인과 병실이지만 산모뿐만 아니라 여성질환의 환자와 함께 병실을 쓸 수도 있다고 해서 68세의 환자와 함께 지내는 이야기. 나는 몇 해 전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와 2인실을 나눠 썼다. 나이 차이는 두 배였지만 같은 수술을 받았었다. 수술 후 가스통으로 힘들던 날 밤, 의사가 없어서 찜질 처방이 안된다 해서 낑낑거리던 그날 밤, 그 아주머니의 딸은 초여름 편의점을 돌아 핫팩을 싸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내게 내밀었었다. 일곱 군데인가, 아홉 군데인가를 돌아 어렵게 구해온 핫팩이었다. 덕분에 난 잠을 잘 수 있었고, 엄마는 다음 날 빵과 음료를 잔뜩 사주었다. 그리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었다. 예민한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나 했던 병원 생활이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분과 그분의 딸 덕분에. 이 부분을 읽고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고맙고 고마운 순간들.

딸이자 작가는 엄마가 죽고 나서 시원했다고 적었다. 물론 많이 아팠겠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중독자의 딸로 살아오는 고통이 더 컸으리라 짐작해 본다. 아주 조심스러운 짐작만. 엄마와 나는 잠깐씩의 미움은 존재했지만, 이별을 견딜 정도는 아니다. 난 오래오래 엄마가 함께하길 바란다.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해 주는 건 이 세상에 엄마뿐이란 걸 알게 되고 나니, 그 맹목적인 사랑을 오래오래 받고 싶다.

이렇게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그러나 사랑 또한 가득한 책의 마지막은 엄마의 입장에서 쓴 편지로 채워져 있다. 그 누구보다 딸을 사랑했을, 사랑이 넘치는 그런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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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가도 배는 고프고
라비니야 지음 / 크루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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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소질이 없다. 먹는 것만 잘하고 살아온 건 요리를 잘하는 언니 덕분이다. 어릴 때부터 줄곧 내게 맛있는 음식들을 해줬다. 양식 조리사 시험을 준비할 때는 하루에 수십 개의 오므라이스를 먹어야 해서 그건 좀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전문적인 요리사가 되면서 더 많은 요리를 해줬었다. 그에 반해 라면의 물 하나도 못 맞추는 나였다. 그런 내게 이 책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작가의 레시피가 적혀있고, 천천히 따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사계절이 담겨있다. 봄의 나물요리부터 조금은 의아한, 그러나 이해되는 겨울의 팥빙수까지의 레시피와 작가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봄을 맞이한 지금, 이 책의 레시피를 차근차근 따라 해보기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다. 물론 아직 나물을 즐기지 않는 유아 입맛이지만, 접근이 용이한 프렌치토스트부터 따라 해볼까 한다. 다행인 건 이 책 중 세 가지 정도의 요리는 해봤다는 것이다. 문득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 맘대로 요리를 해서 가끔 먹는 메뉴들이 담겨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고, 또한 그런 요리들이다. 이제 이 책을 읽었으니 제대로 된 레시피를 따라 해볼까...? 주방에 화재 센서만 작동 안 되길 바라며 천천히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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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골목의 끝에, 첼시 호텔 문학동네 청소년 76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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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골목의 끝에, 첼시 호텔 <도서 제공>

락영의 아버지는 후미진 골목에서 오랫동안 첼시호텔을 운영해 왔다. 뉴욕 맨해튼의 유명한 그 첼시호텔을 모티브로 한 이곳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안식처이자 도피처이다. 낡은 만큼 간판의 글자조차 깜빡거리고, 몇 글자는 아예 켜지지 않기도 한다. 락영이 태어나기 전부터 운영하던 탓에 단골손님들은 락영의 성장과정을 다 보아왔다. 그래서 락영을 귀여워하지만, 락영은 영 못마땅해한다.
아버지와 달리 성실한 낮의 일을 하는 엄마와 같은 삶을 꿈꾼다. 적어도 남들처럼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 성실함으로 자라왔다. 성적 관리에 힘쓰고, 반장을 맡으며 모범생의 삶을 산다. 그러다 지유와 도영을 만나며 일탈 아닌 일탈을 경험하게 된다. ‘어부’를 찾기 위한 동맹이 성립되었다. 처음으로 수업시간에 운동장에서 수다를 떨어보고, 공부가 아닌 것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나이를 떠나 모두 각자의 길을 걷는다. 한없이 가라앉기도 하고, 그런 나를 숨기고자 과장되게 밝게 행동하기도 한다. 온전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첼시호텔이었다. 각자의 첼시호텔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정말 모두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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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짜리 숲 트리플 30
이소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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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호 작가님의 신간으로 세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연작 소설이다.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되어 작고 얇으면서도 양장으로 되어있다. 즉, 우선 가볍고 이쁘단 소리!

무작정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SF잖아!’하고 알 수 있었다. 먼 미래(혹은 가까운)의 어느 날 붉은 달이 생겨난다. 그로 인해 하루의 시간은 436시간이 되고 지축은 무너져 모든 계절 또한 사라졌다. 그렇게 대부분의 생명이 소멸된 후, 에어 포켓이 12곳, 그래서 열두 개의 틈이 생겨난다.

에어 포켓의 생명 또한 끝이 다가오며 두 곳으로 모여들게 된다. 평생 낮뿐인 데저트랜드와 평생 어둠뿐인 아이스랜드. 단 48시간 만에 이주할 곳을 골라야 했고, 너무 극단적으로 다른 환경에 선뜻 선택을 하지 못한다. 각자 이주할 곳을 고르고 나서 마주한 새로운 공간에서 각자 살아나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데저트랜드와 아이스랜드, 당신은 어디서 여생을 보내고 싶나요?



* 자음과모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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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영어 한 문장 100일 쓰기 : 감성고전편 - 아주 보통의 하루를 위한 필사 자기계발은 외국어다
이지은(지니쌤)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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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서 문장을 발췌하고 작가의 생각을 풀어낸 후 오늘의 문장을 따라쓰고 응용하는 법까지 한 장에 담겨있다. 인상적인 문장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으며 일차적으로 공감과 위로를 받고, 직접 손으로 써보며 이차적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의미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의미있도록 만들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을 할애하여 하루가 뜻 깊어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도서를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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