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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1. 언두
유수가 도호를 만나며 느끼는 감정들이 세밀히 묘사되어 있다. 장애를 가진 할머니와 살아온 도호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은 엄청난 어둠을 머금고 있지만 말이다. 유수가 어렵게 취업한 도호를 대신해 할머니를 보살피게 되며 점점 답답함을 느낀다. 열심히 들여다보아도 유수에겐 그 어느 마음 하나 와닿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별 앞에서 도호는 담담한 모습이었겠지. 자신도 그런 할머니에게 견뎌내고 있으니까, 유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을 거라 짐작해 본다. 다정한 도호가 되기까지 얼마나 아팠을지 가늠은 되지 않지만.
2. 화양극장
임용을 준비하다 집으로 돌아온 경은 매주 영화관을 찾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인 이목과 가까워진다. 그저 마음을 나눴던 이목과 경, 그리고 이목과 연수의 이야기는 현실이 반영되어 아프게 다가온다. 바지씨라고 지칭받는 이목과 이목이 크게 다쳤을 때 다가왔던 연수, 그리고 경의 아버지가 자주 했던 사람처럼 살아란 말과 숨소리가 크다라는 말의 무게.
3. OK, Boomer
언제 어디서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라방을 켜고, 틱톡이나 릴스를 찍는 사람들을 보고는 한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때론 어느 골목길에서. 혹여나 스치듯이라도 내가 화면에 나올까 봐 숨어 지나가기 일쑤인 그 행동들이 사실 꽤나 불편하다. 자신을 내보이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무척 좋은 일이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꼰대가 되어버렸다.
4. 괸당
먼 친척을 이르는 제주도 방언, ‘괸당’. 먼 곳에서 오는 친척과의 만남을 기대하던 아버지는 파란 눈을 가진 그에게 낯섦을 느낀다. 항렬과 파에 대한 말이 나오기 전까지. 어쩌다 같은 해남 윤 씨를 만나면 나도 파를 말하게 되니,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여기에 제주의 아픔도 담았다.
5.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
오수에게 촬영 요청을 받고 방문하게 된 구한말에 지어진 일본식 고택. 형형한 눈빛을 가진 조부, 오래된 도검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 가장 소중히 여기던 도검 한 자루의 실체라 해야 할까.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는 사람이 다수인 곳에서는 옳은 사람이 잘못된 사람이 되고 만다. 신념이 강한 사람은 좋은 사람인 경우가 많지만, 가끔 일그러진 신념으로 잘못된 것을 옳다고 여기는 굳은 신념도 있다. 잘못을,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6. 당춘
요즘의 나는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다고 느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한때 젊은이 소리를 들으며 똑똑 박사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기술들에 따라가기가 버겁다. 아날로그 찬양을 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두루와 헌진의 모습에 공감이 되기보다는 바뀐 시대 탓이 마치 제 탓인 듯 작아지는 할머니의 모습에 공감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건, 괸돌에 있다.
7. 오즈
요즘의 건강은 나이가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신체적으로, 심적으로 각자 감당하는 것은 다르다 여기기 때문에. 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1인가구이며 중년에 접어든 나는 고독사가 가장 두렵긴 하다. 어느 날, 말라비틀어진 미라로 발견되거나 부패가 진행되어 벌레거 바글거리는 건 너무 싫기 때문에.
8. 김일성이 죽던 해
작가의 길을 걸으며 엄마에게 자랑이 되고 싶었으나 엄마는 관심이 없다. 정확히는 조용히 응원을 하고 이해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임신하고 공장을 다니던 때, 엄마 순이는 노동자 글쓰기 모임을 통해 어렵사리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막막했던 글쓰기는 어느 순간부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여전히 많은 인권이 짓밟히는 사회이다. 상희 언니의 동생은 프레스에 눌려 손가락을 잃었다고 했다. 나도 그런 일을 근처에서 가끔 보았다. 해골이 그려진 독극물을 목장갑 하나로 잡아야 하고, 고온 테스트에서 플라스틱이 타며 나온 매쾌한 검은 연기를 얇은 마스크 하나로 맞이했다. 30대의 젊은 동료가 출근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걸 보거나 원인 불명의 급성백혈병에 걸린 것을 보게 되며 퇴사한다. 같은 뜻이지만, 그때는 노동자였고 지금은 근로자인 것 같다. 묵묵히 노력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인데, 꿈조차 없을 거라 여기고 무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모두가 꿈을 꾸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