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야드 북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노블마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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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닐 게이먼은 20여년 전 어린 아들이 묘지에서 노는 것을 보고 정글북을 생각하며 묘지가 보호 하는 아이 노바디의 이야기를 그려내었다고 한다.

유령들이 키운 아이라는 소재는 또한 얼마나 매력적이며 호기심을 자극하는가.

영문도 모른채 어린 아기였던 노바디는 가족의 살해 현장에서 벗어나 있어 다행히 죽음을 모면하고 묘지의 유령들은 회의를 거쳐 노바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기,유령처럼 어떤 공간도 막힘없이 통과하는 등의 묘지의 특권을 부여받은 채로 성장한다.

 

묘지에서 가장 안전한, 묘지의 보호를 받는 아이 노바디. 노바디를 보호자 역할을 차처한 사일러스와 묘지의 수많은 유령친구들로 보터 노바디는 안전하게 성장하게 된다. 감출수 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노바디는 묘지 안에서도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묘지안의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묘지의 일원이 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이지만 묘지 밖이 노바디를 위협하는 곳이 되고 오히려 묘지는 노바디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곳이지만 넘치는 호기심으로 묘지 밖을 나선 노바디는 아찔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루페스쿠 선생님을 비롯해서 많은 사연을 가진 유령들과 대화하며 하나씩 배우며 성장해가는 노바디.

중간 중간에 삽화는 노바디와 그를 보호 하는 묘지를 시각적으로 눈앞에 그려내 보이는데 유령이 키운 아이 노바디의 성장과정이 한편의 에니메이션처럼 선명한 색을 띠고 선명하니 그려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자신을 지켜주는 묘지와 자신을 해치려는 묘지 밖 세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하고 호기심을 가진 노바디가 마냥 귀엽다.

닐 게이먼이 만들어낸 묘지 안의 여러 묘사는 읽는 내내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인간과 유령의 삶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노바디의 모습을 읽으면서는 우리의- 사람의 아이들의 성장하는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죽음과 자신을 해하려는 자들과의 숨막히는 대결의 순간 상상하게 되는 시각적 이미지가 생생하고 사실적이어서 실체가 있는 장면 장면이라면 섬뜩하고도 기괴한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묘지의 특권이 하나 둘 사라지는 노바디는 비록 안전하지 못한 세상일지라도 세상과 두손을 잡고 세상으로 걸어나가는 노바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세상을 보고 싶어요, 어려움도 겪어보고 혼자서 해결해 볼래요. 밀림에도 가보고 화산에도 가보고 사막과 섬에도 가볼래요.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겠어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p344

노바디는 두렵지만 세상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안전하게 보호해주던 것들로 부터 떨어져 자신만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될 노바디. 안전한 묘지가 키우고 묘지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경험하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해결해가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노바디의 모습에서 어쩌면 안전하게 지켜주던 가족이나 학교 같은 울타리를 넘어 세상으로 나와야만 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듯도 하다.

이제 묘지 안에서의 어린 노바디가 아닌 세상에서 성장하며 세상을 헤쳐나갈 노바디를 기대하며 기다려진다.

닐 게이먼의 노바디의 묘지에서의 성장판타지가 세상에서의 성장판타지가 되어 독자들을 찾아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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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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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0년대 중반 일본 문화 개방을 앞두고 티비에선 개방의 찬반과 일본문화의 개방이 끼칠 영향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모습을 많이도 보여주었던것 같다. 그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을때 였던것 같은데 별달리 일본문화라 해서 거부감이나 맹목적인 찬사는 없었지만 막연히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했던 기억이있다.

이후로 많은 영화와 음악들, 일본문학작품과 소설들을 자주 접할 수 있게되었음은 물론  나 또한 일본소설이나 일본작가에게 매료되어 얼마의 작품을 읽었나보다.

최근에 가장 많이 접하게된 장르가 일본 미스터리 내지는 추리 작품인데 의도적은 아니었으나 몇권정도 읽은듯하다.

2005년 출간된 이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이시모치 아사미의 ' 이 미스터리는 대단하다' 2위에 선정된 동시에 '본격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선정된 화제의 베스트 셀러라 한다.

굳이 수상명마저 익숙하지 않고 약간의 웃음이 나는 단어들이긴해도 주목 받는 미스터리 작가의 베스트 작품이니 일본인들의 선택과 열광을 믿으며 닫혀있는 그 문 앞으로 그들과 함께 동행하기로 마음먹는데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후시미 료스케, 안도 쇼고, 우에다 사쓰키, 니이야마 가즈히로, 오오쿠라 레이코, 이시마루 고헤이, 레이코의 동생 우스이 유카

대학 동창인 6명과 관계자 1인으로 구성된 대학의 경음악부 '알콜중독 분과회' 멤버인 7인은 안도 쇼고의 형님 소유 고급펜션에서 모이게 된다.

시작부터 니이야마는 후시미의 계획된 밀실 살인에 희생자가 되고 후시미는 문을 안에서 걸어둠으로 니이야마의 죽음과 외부로 부터의 차단을 완료한다.

시작부터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미스터리인데 범인의 범행동기인 "왜"라는 의문은 밀실살인이 완료되고 난 후 이어지는 이야기들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끝까지 다 읽었을때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결코 악인은 아닐듯 한 후시미의 범행을 곳곳에 깔아놓은 암시와 복선을 통해 유추하는 것이 펜션 안의 7인과 함께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살짝 흥분되기도 한다.

후시미가 범인임을 정황과 상황, 직감을 통해 짐작하는 유카와의 두뇌싸움은 또한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사실 후시미의 심리에서 묘사, 전개되는 이야기 인지라 소위 탐정이 되는 유카의 추리나 논리보다는 후시미의 편에 서서 범행을 은폐하려는(문으로 부터 차단하려는)후시미의 시각이 되어버렸다.

대학시절 그들의 관계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유카와 후시미, 문을 열고자 하는 자와 은폐하려 하는 자 사이의 묘하고 팽팽한 감정들이 뒤섞이며 흥미와 재미를 더한다.

살인의 동기에 대한 유카의 날카로운 지적과 마지막에 드러나는 후시미와 유카의 반전은 과연 밀실 미스터리 살인 사건을 다룬 이 책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배가 시켜주었다.

시리즈로 연결된 작품 속에서 유카와 후시미의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는것 또한 즐거움중의 하나일 것이다.

샛길로 잠시 세자면 몇장을 넘기면서도 후시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안도와 친구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름 석자 라는 우리 나라 이름들에 익숙해져서 이겠지만 성별을 알수 없는 (코 자가 들어가는 여자이름은 빼고)이름들에 살짝, 아주 살짝 당황 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척척 구분 되어지는 것을 보니 그다지 염려스러울 일은 아닌듯하다.

마지막 장을 넘길때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작가의 호흡이 대단하고 마지막장을 보자마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한번 더 읽게 만드는 흡인력도 매력적이었다.

결말을 알고 나서 다시 한번 곳곳에 양념처럼 뿌려진 암시를 찾아내는 즐거움도 기꺼이 느낄수 있는 매력적인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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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 비밀스러운 종교의 역사
에두아르 쉬레 지음, 진형준 옮김 / 사문난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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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은 신비하지 않으며 위대하지도 않고,그렇기에  깊은 사상이나 삶과 영혼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를 시도하거나 가만히 영혼을 들여다 보는 일이 멀게만 느껴져왔는지도 모른다.

1889년 출간된 에두아르 쉬레의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은 당시 유럽과 사회에서 이단 취급을 받으며 이단시 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적인 시각이나 관점에서 보자면 몇 장을 넘겨보지 않아도 당시의 기독교적인 사회였더라면 인정받기가 어려웠으리라 생각하는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듯 하다.

유일신과 그외의 신들은 신이라는 말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라면 라마와 크리슈나, 헤르메스와 모세, 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 플라톤과 예수 등의 모세와 예수를 포함 시킨다 하더라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는 금기시 될 만한 내용이었다.

라마와 크리슈나, 헤르메스와 모세, 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 플라톤과 예수 여덟명의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의 삶과 영혼 그리고 신비주의에 다가가는 모습과 그들로 인해 변화하고 번창하는 세상,  철학적인 내용과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우고 초월을 경험한 신비주의 선각자들의 모습을 담아 내고 있다.

 

 '신비주의란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존재, 신비스러운 힘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에게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영혼의 숭고함에 대한 깊은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금방 알게 될 것이다 '

옮긴이의 말에서 처럼 인간이었던 선각자들의 삶과 영혼에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라면 지니고 있는 영혼과 삶에 관한 이야기임을 선각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영혼을 가진 인간이기에 어쩌면 늘 신을 찾게되고 신을 의지하고 신에게는 자신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며 관대하지 않는것도  인간이기에 그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좀 생소하기도 했던 라마, 크리슈나 등과 오르페우스와 헤르메스의 부분에서는 언젠가 읽었던 신화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꽤나 힘겹지만 흥미롭게 읽히기도 한다.

지금의 시대와는 가치의 차이가 다른 시대에서 출간된 책이라 그런지 다소 이입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없지 않지만, 기독교적인 사회에서 금기시 되었으나 은밀하게 여러 사람에게 읽히고 많은 나라에 다른 언어로 출판된- 우리말로 까지 번역되어 내가 보고 있는- 이 책의 매력과 흡인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엔 많은 종교가 있고 그 종교의 가장 위에는 신비주의로 남은 위대한 선각자들이 있다.

많은 종교와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이 영혼을 가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하고 위안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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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게임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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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전세계 독자를 매혹시킨 소설이라한다.

과연 그 광고성 짙은 문구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깨닫는것은  책을 몇장 읽지 않고서도 충분히 전해진다.

1920~30년대의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펼쳐지는 천사의 게임은 읽기전에는 그 마법같은 매력을 감히 짐작할 수 없으리라 단언한다.

세계 많은 독자들을 열광케한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에 대해 아는것이 없으니  이것은 빈천한 독서량과 책 편식에 빠진 가난한 나의 독서때문임이 틀림없다.

 

우선 처음 몇장을 읽으며 또 1권이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장을 넘기며 ' 이 소설을 스페인어로 된 원서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한글로 옮겨진 소설을 읽는것 보다 진한 매력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내 조촐한 외국언어 실력에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심이 많이 들어간 말이지만 4부로 나뉘어진 책의 1부 정도만을 읽고 '아.. 이 작가 천재구나. 번역되어 만들어진  책에도 이런 호흡과 시각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는구나' 하는 감탄을 연발 할 수 밖에 없었다.

 

스토리가 중점적으로 전개되는 소설에는 문장이나 문체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듯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도대체 이 작가의 소설은 한문장 한문장이 따로 노트에 적어두고 때때로 꺼내보고 싶을 만큼 인상깊고 멋있다.

 

주인공인  다비드 마르틴을 중심 축으로 그 주위의 인물들의 이야기와 심리가 그려지는데 탑의 집에서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의 영혼과 마음을 뒤흔들고 바꾸는 책을 써내야만 하고 이것의 댓가로 그의 인생을 담보잡히게 된다.

탑의 집의 미스터리함과 주변인물들의 허를 찌르른 반전, 오롯이 다비드의 눈으로 다비드의 심정으로 전개되는 상황 정도로 이해하다 그것이 뒤집힐 때의 짜릿함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의문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얽히고 설킨 이야기.

 

1920~30년대의 바르셀로나, 그 거리의 어둠과 서늘함 위에 사랑하는 여인의 운명과 배신, 그를 책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던 셈페레 서점의 셈페레 부자, 천사인지 악마인지 분간할 수도 존재에 대한 의문만 가지게되는 코렐리, 셈페레의 손에 이끌려 가게된 [잊힌 책들의 묘지], 탑의 집에서 벌어진 의문의 죽음과 미스터리한 인물들등은 작가가 천사의 게임에 독자가 참가하기를 바란다는 바람처럼 어느샌가 나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눈으로 읽히는 소설을 화면처럼 생생히 머릿속에 그려낼 수있었다.

 

객관적이지 못하고 사심만 잔뜩 들어간 말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천사의 게임은 너무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소설이다.

과연 사람과 운명. 사랑, 살인, 욕망, 고통, 종교, 미스터리 등의 철학적이고 형이상학 적인 이야기들이 눈앞에서 생생히 그려진다면, 그런 소설을 읽는 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한문장 한문장을 감탄스러운 마음으로 읽히는 이 작품에 별이 100개쯤 주어진다면 100개를 다 주고 싶은 마음인것을.

 

때로 오래전에 읽은 책을 떠올릴때 마치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처럼 구체적인 이미지로 기억되는 책이 있다.

지금껏 머릿속에서 살아나던 그 어떤 이미지 보다 천사의 게임은 잘 알지도 가본적도 없는 바르셀로나 거리와 마르틴,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잊힌 책들의 묘지 까지 생생한 이미지로 각인될것이다.

 

유려하고 매혹적인 글 속에서 곳곳에서 작가의 재치와 유머,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력을 보이는것도 또한 매력이었다. 

내게 절대적으로 매혹적인 이 소설의 써머리를 하는 따위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날때 허물어질런지, 과연 그렇게 될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직 천사의 게임의 여운은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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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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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에서 살해당해 사망한 체 게바라.

당시 그의 홀쭉한 배낭 속의 두권의 비망록 노트는 이미 체 게바라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익히 알려졌으나  체가 필사한 69편의 시가 담긴 녹색스프링 노트는 40년간이나 베일에 쌓여있었다.

중남미시인이기도 한 작가와 체가 필사한 시가 만나 앞을 예측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시를 필사하고 있는 체의 모습을 한권에 담아내고있다.

 

"민중해방을 위해선 무장투쟁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킬겁니다. 많은 이들이 저를 무모한 돈키호테라 여기고 있음을 잘 압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자신의 올바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험가이기도 하지요"P.213

콩고로 떠나기 전 체는 그의 부모에게 띄운 편지의 내용처럼 민중해방을 위해 제국주의와 맞서싸우며 많은 이들이 무모하다 여겼으나 자신의 올바른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십여년전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체 게바라 평전을 들고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나는 체가 누구인지 그게 사람 이름인지조차 모를 만큼 아는게 없었다. 퍽이나 이야기가 통하던 친구였음에도 친구가 읽던 체게바라 평전을 알지못하고 체를 알지못한다고 말하자 친구는 쿠바혁명을 이끈 사람이라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친구의 얼굴에 비웃음과 우월감이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새겨두었다가 다음날 당장에 책을 사서 읽기 시작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내겐 남미 지역은 아무래도 동질감이 든다거나 그들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거나하는, 체의 사상과 신념이 이해하기엔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쿠바 혁명을 카스트로와 함께 성공으로 이끌었으나 그에게 주어졌던 모든것을 놓아두고 아프리카의 혁명에 뛰어든 체, 그의 사상과 신념은 우둔한 내가 가슴으로 느끼기엔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친구의 우월감을 짓밟아 주고자 체의 평전을 읽기 시작했으나 그런 마음들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지 그렇게 한해 두해 학생이 아닌 돈벌어 사는 입장으로 살다보니 자연스레 체에 대한 생각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간혹가다 티비 프로에서 그에대한 다큐를 방송하는 것을 보며, 아...체.. 하며 아련함으로 떠올리기도 했었던것 같다.

 

체의 혁명 기운의 원천이기도 했던 시, 전장에서 나무등걸에 기대어 스프링 노트에다 시를 필사하는 체를 그려본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뻬 네 시인의 시들을 필사하며 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신념에 대한 믿음과 혁명에 대한 확신을 했을까 아니면 숨쉬는 것 마저도 조심스러운 전장에서 잠시의 휴식을 시와 함께 하고자 했던 것일까.

네 시인의 시들을 거의 알지 못하지만 책에 인용된 시들에서 핏빛을 보았다면 지나친 설레발일까?

사후에 붙여진 별명 라틴아메리카의 돈키호테와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레온 펠리뻬 시 중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대모험』 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제국주의에 맞서 민중을 위해 투쟁하는 체의 모습이 함께그려지기까지 한다.

시의 전문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서사적인 이 장시는 매혹적이었다.

 

"나는 예수도 아니고 박애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적들이 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손에 닿는 모든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다. 독재와 싸우는 혁명이라면 그 어떤 혁명에라도 참가할 것이다"P.188

 

그의 말 처럼 그는 손에 닿는 모든 무기를 들고 싸웠고 또 예수를 사로잡은 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것 처럼 그는 살해되었고 두 손이 잘렸고 시신은 참혹하게 모욕을 당했다. 숨이 끊어진 체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속의 볼리비아 정부군들의  사진을 보며, 체가 당했을 그가 사랑한 민중들이 당했을 모욕과 숨참 앞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여긴 체의 말처럼 해학과 낭만을 즐기던 휴머니스트 혁명가 체는 볼리비아 협곡에서 인디언들이 신는 모카신을 신은 채로 사로잡혀 그의 나이 39세에 살해 당하였다.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수 많은 베트남 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 혁명전장을 뛰어다닌 체 게바라는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었으며 그가 실천한 혁명의 본질은 이데올로기의 정의에 있는것이 아니라 핍박받는 민중을 제국주의로 부터 해방시키고 궁핍을 해소하는데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혁명이 죽음으로 그와 함께 죽은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독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이 존재하는 한,  체를 기억하는 모든 혁명전장에서 살아있을 것이다.

안티 체와 프로 체로 극명하게 나뉘는 현 시점에서 자본주의에 대항한 체의 이름이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팔리는 현실이 아이러니컬 하기도 하지만 안티 체와 프로 체라는 살아남은 자 살고 있는 자들이 만들어낸 말이 딜레마를 안고 있지만, 체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영혼을 통해 오늘을 생각하는 눈을 뜨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닐런지도 모른다.

 

지구 반대편에서 민중을 위해 투쟁하고 혁명에 몸으로 뛰어든 체, 그 낯설지만 결코 멀지 않은 이름 체 게바라가 전장에서 비스듬히 기댄 어느 시간에 스프링 노트에 시를 필사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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