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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평점 :
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에서 살해당해 사망한 체 게바라.
당시 그의 홀쭉한 배낭 속의 두권의 비망록 노트는 이미 체 게바라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익히 알려졌으나 체가 필사한 69편의 시가 담긴 녹색스프링 노트는 40년간이나 베일에 쌓여있었다.
중남미시인이기도 한 작가와 체가 필사한 시가 만나 앞을 예측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시를 필사하고 있는 체의 모습을 한권에 담아내고있다.
"민중해방을 위해선 무장투쟁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킬겁니다. 많은 이들이 저를 무모한 돈키호테라 여기고 있음을 잘 압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자신의 올바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험가이기도 하지요"P.213
콩고로 떠나기 전 체는 그의 부모에게 띄운 편지의 내용처럼 민중해방을 위해 제국주의와 맞서싸우며 많은 이들이 무모하다 여겼으나 자신의 올바른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십여년전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체 게바라 평전을 들고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나는 체가 누구인지 그게 사람 이름인지조차 모를 만큼 아는게 없었다. 퍽이나 이야기가 통하던 친구였음에도 친구가 읽던 체게바라 평전을 알지못하고 체를 알지못한다고 말하자 친구는 쿠바혁명을 이끈 사람이라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친구의 얼굴에 비웃음과 우월감이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새겨두었다가 다음날 당장에 책을 사서 읽기 시작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내겐 남미 지역은 아무래도 동질감이 든다거나 그들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거나하는, 체의 사상과 신념이 이해하기엔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쿠바 혁명을 카스트로와 함께 성공으로 이끌었으나 그에게 주어졌던 모든것을 놓아두고 아프리카의 혁명에 뛰어든 체, 그의 사상과 신념은 우둔한 내가 가슴으로 느끼기엔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친구의 우월감을 짓밟아 주고자 체의 평전을 읽기 시작했으나 그런 마음들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지 그렇게 한해 두해 학생이 아닌 돈벌어 사는 입장으로 살다보니 자연스레 체에 대한 생각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간혹가다 티비 프로에서 그에대한 다큐를 방송하는 것을 보며, 아...체.. 하며 아련함으로 떠올리기도 했었던것 같다.
체의 혁명 기운의 원천이기도 했던 시, 전장에서 나무등걸에 기대어 스프링 노트에다 시를 필사하는 체를 그려본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뻬 네 시인의 시들을 필사하며 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신념에 대한 믿음과 혁명에 대한 확신을 했을까 아니면 숨쉬는 것 마저도 조심스러운 전장에서 잠시의 휴식을 시와 함께 하고자 했던 것일까.
네 시인의 시들을 거의 알지 못하지만 책에 인용된 시들에서 핏빛을 보았다면 지나친 설레발일까?
사후에 붙여진 별명 라틴아메리카의 돈키호테와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레온 펠리뻬 시 중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대모험』 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제국주의에 맞서 민중을 위해 투쟁하는 체의 모습이 함께그려지기까지 한다.
시의 전문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서사적인 이 장시는 매혹적이었다.
"나는 예수도 아니고 박애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적들이 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손에 닿는 모든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다. 독재와 싸우는 혁명이라면 그 어떤 혁명에라도 참가할 것이다"P.188
그의 말 처럼 그는 손에 닿는 모든 무기를 들고 싸웠고 또 예수를 사로잡은 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것 처럼 그는 살해되었고 두 손이 잘렸고 시신은 참혹하게 모욕을 당했다. 숨이 끊어진 체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속의 볼리비아 정부군들의 사진을 보며, 체가 당했을 그가 사랑한 민중들이 당했을 모욕과 숨참 앞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여긴 체의 말처럼 해학과 낭만을 즐기던 휴머니스트 혁명가 체는 볼리비아 협곡에서 인디언들이 신는 모카신을 신은 채로 사로잡혀 그의 나이 39세에 살해 당하였다.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수 많은 베트남 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 혁명전장을 뛰어다닌 체 게바라는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었으며 그가 실천한 혁명의 본질은 이데올로기의 정의에 있는것이 아니라 핍박받는 민중을 제국주의로 부터 해방시키고 궁핍을 해소하는데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혁명이 죽음으로 그와 함께 죽은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독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이 존재하는 한, 체를 기억하는 모든 혁명전장에서 살아있을 것이다.
안티 체와 프로 체로 극명하게 나뉘는 현 시점에서 자본주의에 대항한 체의 이름이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팔리는 현실이 아이러니컬 하기도 하지만 안티 체와 프로 체라는 살아남은 자 살고 있는 자들이 만들어낸 말이 딜레마를 안고 있지만, 체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영혼을 통해 오늘을 생각하는 눈을 뜨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닐런지도 모른다.
지구 반대편에서 민중을 위해 투쟁하고 혁명에 몸으로 뛰어든 체, 그 낯설지만 결코 멀지 않은 이름 체 게바라가 전장에서 비스듬히 기댄 어느 시간에 스프링 노트에 시를 필사하는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