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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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생일것이다.
시간에 제약을 받는 것 또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응당 그러할 수 밖에 없는건지도 모른다.

미래를 걱정하는 것, 더 나은 혹은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가지기 위해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를 고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시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인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 내지는 불안감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가진 소설이나 영화, 만화영화 까지.

시간여행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재를 살아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궁금해 한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서 잘못 틀어진 일을 바로 잡거나, 미래로 시간여행을 해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4차원으로 시간여행을 해서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상상이나 소설에만 존재할 수밖에 없을까. 

 

주민등록까지 되어 있다는 만화 영화 속 둘리의 친구 빨간코 깐따비아? 별에서 온 도우너는 타임 코스모스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지구별에 떨어졌다. 둘리와 친구들은 타임코스모스를 타고  차원을 넘나들며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고, 영화 타임 머신을 보더라도 물리학자인 주인공이 연인이 죽자 연인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 또는 미래를 다니며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였다.

현재, 꼭 이시점에서만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이 시간여행이라는 상상을 뛰어넘는 무한의 세계에 흥분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멸종은 단지 시간 여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또, 단지 공룡의 멸종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21세기 캐나다의  고생물학자가 햄버거 모양 처럼 생긴  타임머신인 스틴버그호를 타고 6500만년전 백악기- 공룡 멸종의 원인을 찾고자- 시간 여행을 떠난다.

두사람이 시간여행을 하는 점 부터가 SF 적이다.그런데 거기다 더해 고생물학자인 브랜디와 클릭스가 맞닥드린 6500만년 전의 지구와 거대한 공룡 그리고 화성생물체인 헤트와의 대면.

작가의 과학적 상상력과 창조는 과연 그 끝이나 한계가 있기나 한것일까.

시간여행과  공룡의 멸종 원인을 맞대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도 흥미진진하고 놀라울 뿐 아니라 공룡 멸종에 관한 브랜디와 클릭스의 서로 다른 견해는 과연 관심 바깥쪽에 있던 공룡멸종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가깝께 끌어당겨 주었다.

[멸종]은 시간여행의 패러독스와 그  딜레마 역시 양자역학에 기반한 평형세계의 가설을 취하고있다.

다른 시간선에 존재하는 브랜디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시간여행을 한 브랜디와 다른 시간선의 브랜디가 존재하며,  공룡의 멸종과는 다른 개인적인 이야기가 맞대여 있어 읽는 내내 작가의 치밀한 상상력과 사고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결단이다.”

책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 말은 SF 소설-멸종-이 단순한 오락적 재미에만 그치지 않고 브랜디의 행동과 결단에서 개인적인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책속의 브랜디의 이야기와 6500만년전 백악기로 시간여행을 한 브랜디의 SF 적 이야기는 단지 SF 소설이 다소 황당한 재미만 추구한다라는 생각을 여지없이 날려버렸다.

[멸종]이 선사한 흥미와 즐거움은 이 책을  단지 SF 소설의 하나로  한정할 수 없을 것이다.

SF소설적 즐거움과 재미, 과학적 상상력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궁금한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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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슬기 맑힘이다 사이의 사무침 1
구연상 지음 / 채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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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친구와 한가했던 시간에 했던 일을 이야기 하던 중에 그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자신은 어릴때 부터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했었다는 다소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 말이었다.

철학적인 생각이 어떤 생각이냐고 물을 기회가 없이 대화는 거기에서 끊어지고 말았는데, 대체 철학적인 생각은 어떤 생각을 말하는 거지?하는 궁금증이 꽤나 오래갔던 걸로 기억한다.

철학가, 사상가들의 사상이나 철학, 삶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살고 어찌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인지 자신의 생활이 철학의 한 면에 맞대어 놓고 생각을 했다는 말인지 당최 철학이란 범접하기 힘든 단어를 놓고 생각을 하자니 생각은 더 나아갈수가 없었다.

중고등학교의 학창시절이나 대학에서 까지 교양과목으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배웠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삶 속의 철학은 사상가들의 생각이요, 사상이자 말그대로 형이상학의 철학으로만 머물러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칸트, 공자, 맹자.......등등등 많은 철학가들과 사상을 배웠어도 그것이 나 자신의 삶과 생각에서는 어떻게도 날개를 펴지 못한채 단지 철학 이라는 두 두단어 만으로 정립되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철학이라는 두 음절이 지니는 의미는 차원이 다른 사고의 틀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머물러 있었으니 삶 속에서 철학적인 면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제목부터가 상큼한 슬기 맑힘이라 어렵고 멀기만 하던 철학과 삶속의 슬기 맑힘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두번의 강의를 담은 책은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첫번째 강의는 슬기 맑힘과 악이란 제목아래에 철학이 삶속에서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며 어떻게 이해되는지 이야기 하고 있다.

철학이라는 번역어에서 벗어나 슬기란 저마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살아낼 줄 아는 앎이나 힘이라 표현한다.

이 슬기는 모두에게 보다 나은 삶(고루두루 잘 사는 삶) 이자 고루 두루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 고루두루 살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고 이런 마음을 얻기위해 저마다 스스로 제 마음을 끊임없이 맑혀 나간다는 뜻의 슬기 맑힘이라는 말이 철학이라는 막연히 어려운 낱말 철학을 대신한다.

철학의 문제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 이야기 하는 데, 슬기 맑힘은 선과 악, 좋음과 나쁨,정치인, 민중과 세금, 광우병 등등의 과거로 부터 이어져온 일들과 현재 당면한 삶 속에서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맑힘이 저마다에게 필요한 슬기를 찾을 수 있도록 시야를 터주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는 일이며, 최근의 촛불문화제나 광우병등의 사례로 슬기를 맑힌다는 것이 이렇게 삶속에서도 가까이 느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라는 말이 가지지 못한 친근함을 슬기 맑힘이라는 말이 삶속의 철학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해준다.

내용중에 민중과 수사학적 지중에 대한 이야기는 두번째 강의 인 개인의 유래로 이어지는데 인디비듀얼(individul)을 개인이라는 낱말대신 못- 나누미로 설명하고 있다.

독립주체로 자유로운 못나누미라는 말은 자유라는 근본 의미를 가지며, 자유로운 독립의 중심에서  개인적인 못 나누미에서 한정되지 않고 서로의 우리가 함께 나누는 함께 나누미야 말로 평화와 지혜를 가져온다는 쉽고 명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는 고개가 끄덕여지고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으나 그간에 슬기를 맑히는 일이 얼마나 나에게서 뿌리 내리지 못한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철학이 단지 철학적 사고나 사상이 아닌 삶의 슬기를 맑히는 일이라는 삶속에서 가지는 넓은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언제라도 어느 한페이지를 펼쳐두고 읽다보면 슬기 맑힘을 다시금 일깨워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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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못 된 세자들 표정있는 역사 9
함규진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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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바탕, 국가의 근본이었던 세자.

조선왕조의 세자는 원칙적으로 적장자, 왕의 맏아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태종, 영친왕, 영조 처럼 왕의 동생이 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왕의 후계자인 세자를 세우는 일은 왕의 죽음이나 유고시에 혼란을 막고 전쟁등 국난을 당할시 정부 전체가 파멸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2인자라는 사실은 권력으로 인한 외척이나 당파의 개입으로 비극을 낳기도 했으니 세자의 자리가 갖는 권위는 왕만큼 중요하나 외척이나 당파가 개입하여 시쳇말로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세자로 세워 차기 왕이 되었을때 권력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포석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조선은 유학,성리학의 토대 위에 세워진 나라였고 마땅히 차기 왕이 될 세자는 성리학이 바탕이된 엄격한 교육으로 학문과 수양에 힘써야 했다.

기본 글 공부 이외에도 왕실 어른에 대한 문안, 부왕의 수라상과 약탕을 먼저 맛보는 시선.시탕, 각종 예식. 연회에 참석, 조회에 부왕을 배석하는 일, 대치청정으로 신료를 접견하고 정무를 보아햐하는 일 등을 해야만 했다.

 차기 국왕으로의 특별함을 부여받은 2인자로서의 즐거움이나 특권 보다는 바쁘고 늘 공부하고 조심해야하는 힘든 것이 세자의 삶이었을 것이다.

조선 왕조의 세자는 27명으로 그중 왕이 된 세자는 15명, 즉 반이 되지도 않는다.

태조,세조, 중종, 인조는 정변으로 왕위에 올랐고, 성종, 명종, 선조, 철정, 고종 은 세자가 공석인 상태에서 왕이 되었다.

영조, 정조, 헌종은 세자가 아닌 세제나 세손의 이름으로 있다가 즉위하였다.

살해되거나 폐위된 세자가 다섯, 병사한 세자가 여섯, 왕조의 멸망으로 왕이 될 수 없었던 세자가 하나이다. 이중 소현세자는 독살이라는 의견이 있다.

자손 몇대가 입신양명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가문에 왕이 나는것이 좋고, 자식이 왕이 되는것 보다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좋다 는 우스개 소리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태종처럼 자식에게 안정된 왕권을 물려주고자 애쓴 왕이 있고 인조처럼 자신이 반정으로 왕이 되었기에 끈임없이 자신의 왕위 보전을 근심한 왕이 있다.

물론 역사란 그 시대의 기록이긴 하지만 사관에 의해 쓰여졌고, 관점을 달리하는 사람마다 그 의미가 재평가되는 일이 많다.

왕이 못된 세자들에서는 조선 왕조의 기록된 27명의 세자중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의 기록과 이야기를 전한다.

동생 충녕에게 자발적으로 왕위를 양보한 형만한 아우없다의 표본인 양녕대군을 야심가로 해석하기도 하고, 정묘호란 후에 청나라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온지 두달만에 사망한 소현세자

에 대해 재기되는 독살설과 요즈음 재평가되는 새로운 혁명을 꿈꾸었던 세자라는 선상에서 좀더 나아가  조금 다른 시각으로 소현세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정조의 아버지이며 정쟁과 당파에 둘러쌓여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했던 사도세자- 드라마나 책으로도 많이 알려져 비교적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궁궐안에서 짜여진 대로 살아야했던 세자들이  어쩌면 우울증이나 울화증을 앓았던것은 아닐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며, 국가의 근본이자 한 나라의 2인자라고 하지만 왕이 있는 한 넘어서도 안되고 넘지도 못할 그 울타리가 오죽 답답했을까.

 

저자는 많은 세자들이 왕이 되기 위해 교육받았으나 왕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세자 제도의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건 아닐까 하는  그 의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이 쓰여졌다고 밝힌다.

왕이 못된 세자들 12인의 기록과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만약에 혹은 어쩌면 그러했다면 달라졌을 삶과 역사를 안타까워한다.

역사는 만약에라는 가정을 두지 않으니 사실을 제대로 아는게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과 의견은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듯 하여  왕이 못된 세자들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사족:

내용중 1.화완 옹주가 정휴겸과 혼인했었으므로...(P.155)라고 나와 있으나 찾아본 바 정후겸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서인 출본관 연일(). 자 백익(). 본시 인천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서인() 출신이었으나 화완옹주(:영조의 )의 양자가 되면서부터 자유로이 궁중에 출입,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네이버 백과사전

2. 명종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다음 왕위는 명종의 사촌동생 되는 하성군에게 돌아갔다. 그가 제 14대 왕 선조다.P.174 라고 나와 있어 찾아본바 다음과 같다.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아버지. 이름 초(岹). 제11대 왕 중종()의 일곱째 아들로, 중종의 후궁인 창빈안씨()의 소생이고, 부인은 중추부판사() 정세호()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6월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초의 셋째 아들 하성군() 균()이 명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는데, 그가 곧 선조이다. 1569년(선조 2) 왕의 생부로 대원군에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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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은행 통장
캐스린 포브즈 지음, 이혜영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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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에는  줄줄이 두살 터울인 육남매가 아웅다웅 하면서 옷이나 학용품에서 부터 군것질거리 과자까지도 경쟁을 해야만 가질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누구나가 그렇지 않았겠냐만은 다른 친구네들 보다 형제가 둘 정도는 더 많은 편이었으니 정말 지지고 복고 살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시골 살림은 늘 궁벽하기 마련이라 봄부터 부지런히 씨뿌리고 모를 심고 밭을 일구어도 수확철이 불과 몇달 지나지 않았는데도 집안엔 부모님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대식구 먹는것이야 농사 지은 것으로 살았어도 고만고만 하니 학교다니는 육남매에는 생활고를 피부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걱정이 없었던 것 같다. 땀흘려 농사짓는 부모님이 계시고 여타 우리들 부모님이 그러하듯 엄청난 교육열을 자랑하시던 분들이었으니, 두분의 정직한 땀의 노동과 희생은 가족의 기댈 언덕이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돈걱정하던 부모님의 한숨소리에 뒤란 한쪽 귀퉁이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던 열살 남짓의 내 모습이 흑백영화의 한장면처럼 떠오르기도 한다.

카트린 엄마의 은행통장- 생각만해도 우리 엄마의 은행통장이 있으니 최후의, 마지막의, 극한 상황이 오더라도 믿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음을 전해져온다.

나의  엄마는 은행통장이 없었지만 부엌 찬장 깊은 곳에 조그만 항아리를 기억한다.

꼬깃 꼬깃한 지폐나 동전 따위가 들어있던 그 항아리가 어린시절 믿는 구석이었고 희망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하겠다.

 

1900년대 초 노르웨이 이민 가족들인 카트린과 가족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

카트린의 가족들은  부유하지 않지만 가족들이 생활하는 크고 작은 비용을 담당하는 작은 은행이 있었고 '우리가 노력해서 안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에겐 큰 은행에 예금통장이 있다' 고 믿는 엄마의 은행통장이 있었다.

작은 기쁨에 행복해하고 만족을 느낄 줄 아는 카트린의 가족들은 엄마의 그 은행통장으로 마음이 든든했을 것이다.

 

"어린애들이 불안해하고 겁을 먹는 건 좋지 않잖니?"

엄마의 믿음대로 카트린과 그녀의 형제들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넉넉한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었을 것이다.

카트린의 엄마는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자녀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재치있고 유머러스 했다.

부도수표를 내고 하숙생이 떠났을 때나  병원에서 수술한 어린 동생 다그마르를 면회하지 못하게 하자 두팔 걷어부치고 묘안을 짜내는 엄마는 그야말로 재치가 넘친다. 

절망하거나 지레 포기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두려워 하지 않게끔 재치와 위트로 상황을 돌파해간다.

아빠가 수술을 해야만 했을때 탐욕스런 의사 부인을 대처하는 엄마는 탐욕스런 부인과의 한판 승부에서 통쾌하게 이긴다.

수완 좋고 사랑스런 카트린의 엄마는 가족을 위해 가족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면서도 최선의 방법을 찾아 늘 문제를 해결 하곤 했다.

어린 소녀 카트린의 눈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가족들의 이야기는 따로 따로 나뉘어 있지만 화해와 이해와 성장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귀중하게 여기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 엄마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늘 함께 하는 가족들은 카트린의 작은 다락방에 하늘을 향해 난 작은 창으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처럼 따뜻했다.

카트린의 눈과 귀를 통해 읽은 동안 내내 입가에 번지는 미소로 행복했다.

가슴이 따뜻해졌왔고 성장하는 카트린의 마음 처럼 내 마음도 성장하기를 바라고 바랐다.

카트린과 카트린의 엄마 그리고 은행통장이 안겨주는 평안함과 따뜻함에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다 좋았었어. 그 모든 것이말이야"

하고 카트린 엄마의 말을 따라해본다.

 

엄마의 은행통장을 읽으며 '참 좋다. 참 좋다'라고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중얼거렸다.

사랑과 따뜻함과 즐거움이 가득한 카트린의 집을 내 마음 속으로 옮겨다 놓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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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4대 사화 - 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
김인숙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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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파의 대립과 권력쟁탈, 대의와 명분으로 선비들이 화를 입은 조선의 士禍

 

조선시대에는 12가지의 큰 사화가 있었다.

학파의 대립과 권력쟁탈을 위해 대의와 명분의 옷을 입은 사화가 500여년 조선의 역사에 이토록이나 자주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대의와 명분이라는 것이 시발점이 되어 학파가 다르거나 뜻이 맞지 않는 이들을 죽이거나 유배시키는, 너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잘 살 수 있다는 비약이 담기긴 했으나 네가 망하지 않으면 내가 망한다는 논리에서 그 많으 사화가 일어난 것은 아닐까.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네 임금의 통치 시기인 1498년 부터 1545년 까지 50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네번의 큰 사화가 일어났다.

화를 입은 사람들이 넘쳐났고 살아 남은 자들에 의해 화을 입힌 자들이 다시 화를 입는 악순환이 생겨났다.

연산군때에 사초에 실린 조의제문이 화근이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나고 무오사화로 사림파가 제거 된 후 임사홍의 밀고로 시작된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생모 윤씨 복위 문제로 훈구파 까지 제거되었다.

중종때에 주초위왕의 함정에 빠진 급진 개혁가였던 조광조를 비롯 사림파들이 화를 입은 기묘사화가 일어나고, 왕실의 외숙인 대윤과 소윤의 반목으로 명종이 즉위하자 대윤 일파가 화를 입은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기록 역시 사관의 주관을 버렸다 할 수 없고 역사에 남은 기록은 여러가지 재 평가와 해석을 하게 마련이다.

현재와 가장 가까운 역사인 조선의 역사, 천년도 되지 않는 세월 속에 역사속의 사건과 인물들은 참 많이도 재평가가 되곤한다.

역사학을 공부하거나 관련 일을 하지 않는 대다수의 나같은 사람들은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책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티비 드라마를 통해 사건과 인물들을 재구성하고 재평가를 하기 쉽다. 연산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조광조와 폐비윤씨와 문정왕후 등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폭이 넓혀지기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대의와 명분이 한쪽에서는 정당성을 가지게 되면 그 반대편은 희생을 당하게 되기 마련인바 시간이 지나고 정반대의 희생을 낳기도 한다.

조선은 유교국가였고 지연, 학연, 사상등으로 파벌을 형성한 자들에겐 더욱이 대의와 명분이 중요시된 시기였을 것이다.

조선의 4대 사화를 읽으며 그것이 꼭 몇백년 전의 조선에만 국한 된 이야기 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지금도 파벌의 권력쟁취와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대의와 명분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닌가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저자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선비들의 기개를 기억하고 역사의 큰줄기를 따라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람을 전한다.

역사의 큰 줄기를 따라 읽어가다 보면 몇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디에선가는 화를 입는 이들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생각 할 수 있었다.

 

현재는 어떤 기록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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