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은행 통장
캐스린 포브즈 지음, 이혜영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나의 어린 시절에는  줄줄이 두살 터울인 육남매가 아웅다웅 하면서 옷이나 학용품에서 부터 군것질거리 과자까지도 경쟁을 해야만 가질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누구나가 그렇지 않았겠냐만은 다른 친구네들 보다 형제가 둘 정도는 더 많은 편이었으니 정말 지지고 복고 살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시골 살림은 늘 궁벽하기 마련이라 봄부터 부지런히 씨뿌리고 모를 심고 밭을 일구어도 수확철이 불과 몇달 지나지 않았는데도 집안엔 부모님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대식구 먹는것이야 농사 지은 것으로 살았어도 고만고만 하니 학교다니는 육남매에는 생활고를 피부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걱정이 없었던 것 같다. 땀흘려 농사짓는 부모님이 계시고 여타 우리들 부모님이 그러하듯 엄청난 교육열을 자랑하시던 분들이었으니, 두분의 정직한 땀의 노동과 희생은 가족의 기댈 언덕이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돈걱정하던 부모님의 한숨소리에 뒤란 한쪽 귀퉁이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던 열살 남짓의 내 모습이 흑백영화의 한장면처럼 떠오르기도 한다.

카트린 엄마의 은행통장- 생각만해도 우리 엄마의 은행통장이 있으니 최후의, 마지막의, 극한 상황이 오더라도 믿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음을 전해져온다.

나의  엄마는 은행통장이 없었지만 부엌 찬장 깊은 곳에 조그만 항아리를 기억한다.

꼬깃 꼬깃한 지폐나 동전 따위가 들어있던 그 항아리가 어린시절 믿는 구석이었고 희망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하겠다.

 

1900년대 초 노르웨이 이민 가족들인 카트린과 가족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

카트린의 가족들은  부유하지 않지만 가족들이 생활하는 크고 작은 비용을 담당하는 작은 은행이 있었고 '우리가 노력해서 안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에겐 큰 은행에 예금통장이 있다' 고 믿는 엄마의 은행통장이 있었다.

작은 기쁨에 행복해하고 만족을 느낄 줄 아는 카트린의 가족들은 엄마의 그 은행통장으로 마음이 든든했을 것이다.

 

"어린애들이 불안해하고 겁을 먹는 건 좋지 않잖니?"

엄마의 믿음대로 카트린과 그녀의 형제들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넉넉한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었을 것이다.

카트린의 엄마는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자녀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재치있고 유머러스 했다.

부도수표를 내고 하숙생이 떠났을 때나  병원에서 수술한 어린 동생 다그마르를 면회하지 못하게 하자 두팔 걷어부치고 묘안을 짜내는 엄마는 그야말로 재치가 넘친다. 

절망하거나 지레 포기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두려워 하지 않게끔 재치와 위트로 상황을 돌파해간다.

아빠가 수술을 해야만 했을때 탐욕스런 의사 부인을 대처하는 엄마는 탐욕스런 부인과의 한판 승부에서 통쾌하게 이긴다.

수완 좋고 사랑스런 카트린의 엄마는 가족을 위해 가족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면서도 최선의 방법을 찾아 늘 문제를 해결 하곤 했다.

어린 소녀 카트린의 눈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가족들의 이야기는 따로 따로 나뉘어 있지만 화해와 이해와 성장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귀중하게 여기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 엄마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늘 함께 하는 가족들은 카트린의 작은 다락방에 하늘을 향해 난 작은 창으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처럼 따뜻했다.

카트린의 눈과 귀를 통해 읽은 동안 내내 입가에 번지는 미소로 행복했다.

가슴이 따뜻해졌왔고 성장하는 카트린의 마음 처럼 내 마음도 성장하기를 바라고 바랐다.

카트린과 카트린의 엄마 그리고 은행통장이 안겨주는 평안함과 따뜻함에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다 좋았었어. 그 모든 것이말이야"

하고 카트린 엄마의 말을 따라해본다.

 

엄마의 은행통장을 읽으며 '참 좋다. 참 좋다'라고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중얼거렸다.

사랑과 따뜻함과 즐거움이 가득한 카트린의 집을 내 마음 속으로 옮겨다 놓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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