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
헬레네 플루드 지음, 권도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제껏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별안간 송두리째 흔들리고, 가까운 친구와 이웃들까지도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잠재울 수 없는 혼란 때문에 여러 날 잠을 설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모든 길을 되돌아보며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헬레네 플루드'의 《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는 어느 날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인해 한 여성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을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의 플롯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되어 점점 치고 올라오는 불안과 의심의 파도를 온몸으로 겪게 된다.

주인공인 '리케'는 가정에 충실하며 한없이 다정한 남편 '오스먼드'와 사랑스러운 두 아이, '엠마'와 '루카스'와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카스타녜스빈겐'의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아파트에는 그들을 포함해 총 4가족이 살고 있는데, 방음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에 여러 의미에서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리케의 삶은, 위층에 사는 유부남인 '요르겐'을 만나면서부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엔 단순한 호감이었던 것이 점점 크기를 키워가 나중에는 불륜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리케는 가족과 이웃의 눈을 피해 용의주도하게 그와의 만남을 이어갔고, 남편에게서는 얻을 수 없었던 진정한 평온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가 자신의 가족 모두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점을 직시한 리케는 요르겐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끝이 나게 된다. 바로 요르겐이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즈음 죽은 고양이들의 사체가 목이 매달린 채 발견되는 잔인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기 때문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경찰들의 수사는 빠르게 진행된다. 경찰들이 요르겐의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리케는 자신과 요르겐의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시시각각으로 조여오는 경찰들의 의심의 눈초리에, 리케는 그와의 일을 수사 담당자에게만 알리기로 하는데….
워낙 심리 묘사가 세밀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좋든 싫든 주인공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기는 한다. 하지만 불륜을 저지른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는, 논리적으로 허점 투성이인 생각들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 방법 또한 남편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책 속의 말에 십분 공감했다. 그중에서도 불륜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늙기 전에 일탈을 꿈꿔보고 싶었다는 식의 변명은, 리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전혀 동정심이 일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사건의 핵심으로 다가가며 리케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은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고, 각기 다른 인물들이 유력 용의자 선상에 올랐을 때 여러 가지 방면에서 추리할 수 있는 즐거움 또한 느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리케가 과연 남편에게 떳떳하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고백할 수 있을지 역시 《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