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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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끼리 오순도순 지내고 있는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 '이바노프스카야'에 끔찍한 독일군이 닥친 건 순식간이었다. 그들의 손에 마을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갔고, 자신의 곁에 있던 엄마마저 죽임을 당했다. 어린 소녀인 '세라피마'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나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아군이자 유능한 여성 저격수인 '이리나'에게 저격병 후보로 간택된다.



 이리나의 손에 이끌려 당도한 곳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잃은 어린 여자아이들이 모여있는 훈련소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이리나의 감독 아래 혹독한 저격 훈련을 받는다. 때로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오로지 눈앞의 표적에만 집중하라는 매서운 명령에 점점 살인 무기가 되어가는 아이들이었다.



 1년도 채 안 되는 훈련 기간을 마치고 그들은 본격적으로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전장으로 뛰어든다. 포탄과 총탄이 빗발치는 그 위험한 곳에서 지금까지 갈고닦아왔던 저격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지만 많은 전우들이 죽어 나갔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내던 어린 소녀 저격병들이 하나 둘 죽어갈 때마다 세라피마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결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바로 여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려는 것이었다. 전쟁 중에 여성의 위치는 남성들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저 전쟁에 나간 남자들을 멀리서 응원하거나 혹은 병사들의 노리갯감이 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세라피마는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들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죽을힘을 다해 그녀들을 지켜내고자 한다.




 전쟁의 참상을 바로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본 것만 같았다. 흑백 사진과 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독일과 소련의 치열한 전투가 눈앞에서 그려졌다. 역사책에 고작 몇 페이지로 응축되어 소개된 독소전쟁이 이렇게나 참혹했을 줄이야.



 게다가 남자들의 것이라고 여겨졌던 '전쟁'이라는 단어 속에 여성 병사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나 어린 소녀들로 이루어진 이 저격 부대가 남자들에게도 어려웠던 일을 기어이 해내는 것을 보며 경탄스럽기까지 했다.



 그와 동시에, 어린아이들 다운 천진난만한 시기를 보내야 했을 아이들이 어른들도 무서워 벌벌 떠는 전쟁에 징집되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 할 시기에 총을 잡고, 술래잡기 대신 적군과 쫓고 쫓기는 전투를 벌여야 했던 아이들. 최근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역시 이런 식으로 벌어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지만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처리되고 이용당하는 이 현실이 정말 끔찍했다. 결국 몇 백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세라피마의 입을 통해 쓰인 이 이야기는 어리석은 인간 정부들의 욕심과 패기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을 가져왔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또한 막강한 권력과 힘, 폭력 속에서 꿋꿋이 자신들만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비록 그녀들은 역사 속의 영웅이 되지는 못했지만 뜨거운 결속과 동료애를 느끼며 찬란한 삶을 살았다. 전쟁과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더라면 그들은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후기입니다.

적병을 죽인 게 떠올랐다면 지금 자랑스러워해라!
언젠가 흥분은 사라지고 실감만이 남는다. 그때 자긍심만 느낄 수 있도록 지금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너희가 죽인 적병은 이제 단 한 사람의 아군도 죽이지 못한다!
그래, 너희는 아군의 목숨을 구했다.
침략해 온 병사 하나를 죽이는 것은 무수한 아군을 구하는 거다. 그걸 지금 자랑스럽게 여겨라.
자랑스럽고, 자랑스럽고, 자랑스러워해라!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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