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그림을 여러 장 이어 붙인 것이 현대의 영화와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다. 미디어는 수많은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다. 단 한 장으로 표현해야 했던 그림은 좀 더 은밀한 방식을 차용했다. 그렇기에 비교적 전문적인 해설자가 따로 있다. 그렇기에 아는 만큼 보이고 미술을 해설하는 책은 다양하다. 이 책은 단순히 정물화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정물들이 담고 있는 의미가 처음 시작한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파리의 신문과 소설책들은 그것들이 이 시골 농가로 전송된 경로를 말해 주고, 부인이 하고 있는 로켓 목걸이와 식기들은 장인과 상점들이 이 가정에 물건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p.47)


저자 가이 대븐포트는 『상상력의 지리학』에서 "인간은 처음에 사냥꾼이었고, 그리고 예술가였다"라고 했다. 문명이 싹을 틔우던 때 인간은 수렵채집과 사냥을 했다. 그렇게 구해온 식량은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캔버스로 옮겨갔다. 인간은 수많은 문명을 건설했다. 정물의 의미는 문명사와 함께 태동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마치 수수께끼를 보는 듯하다. 그리는 이는 문제를 내고 보는 이는 문제를 맞힌다. 정답은 우리에게 있다.



∣ 진실을 보는 한 가지 방법은 대상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익숙한 것을 에니그마처럼 보는 것이다. (p.171)


정물화를 평면적인 2D의 형태로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조형물처럼 전시해 360도로 빙 둘러보며 보는 느낌이다. 저자가 정물화를 바라보는 시각엔 미적, 사적, 철학적, 문학적 소양이 뒷받침한다. 그렇기에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저자의 지식이 폭넓고 깊은 만큼 심도 있는 해석을 낳는다. 나는 그 깊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바빴지만 조금이라도 더 미술적 조예를 쌓은 훗날 다시 톺아보고 더 많이 이해하고 싶은 책이다.



∣ 정물화라는 예술은 큰 밝음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먹을 수 있는 적절한 음식, 이를 먹는 적절한 방법은 모든 정물화 속에 내재해 있으며, 빵과 와인이 입체파 정물화에서 지속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p.179)


까끌까끌한 천 재질의 새하얀 표지는 정물을 그리기 전 캔버스를 연상시킨다. 본문 구성 또한 독특하다. 읽기에 큰 도움이 되는 도판과 본문 그리고 빽빽한 각주까지. 덕지덕지 콜라주적으로 편집된 이 책도 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다가온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음식을 구하고 구한 음식을 먹기까지 그 사이에 시간이 있다.

우리는 식사 전에 손과 식기를 깨끗하게 하고, 식탁 중앙에는 꽃장식을 놓고, 식사가 대화를 수반하는 사교 모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유지해 온 것이다. 정물화는 그런 맥락에서 문명의 장으로서의 식탁을 지켜 왔다. - P41

이 그림이 사과와 배를 그린 다른 정물화들ㅡ사과가 추락이고 배가 구원의 상징인ㅡ처럼 상실과 구원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면 우리는 이 그림 속 요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156

양파는 구원의 의미를 가진 배의 유사체이자 사과와 배가 결합된 존재로서, 그림 속 모든 것을 하나의 복합적인 상징으로 엮는 역할을 한다. - P157

상징적인 정물의 장면들이 서사 구조와 맞물리고, 더 나아가서는 건축적 개념으로 엮인다. 건축과 음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 P171

샤르댕의 조화로움에서 세잔으로, 세잔에서 브라크와 피카소로, 그리고 그들에서 데 키리코의 기하학적 에니그마로 이동하듯, 아모스의 비전은 여름 과일 광주리에서 신이 다림줄로 벽을 만드는 비전으로 이동한다. 정물화는 이런 비전들 중 둘 중 하나의 상징일 듯하다. 하나는 가을의 수확을 꿈꾸고, 우리가 거기까지 관리해 가는 과정과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다른 하나는 자연이라는 기반에 따른 건축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 시대에 따라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한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 P2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라테이아 - 매들린 밀러 짧은 소설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새의노래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들린 밀러의 전작을 재밌게 읽어 빨리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기다려온 신작이다.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책을 집어 들고 놀란 것은 너무도 새하얀 책의 물성. 빳빳한 도화지 재질의 종이로만 이루어진 이 책은 사람이 되기 전, 아니 어쩌면 피그말리온의 손을 거치기도 전인 상아색을 띤 돌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신생 출판사의 첫 책이기에 출판사의 시그니처 디자인인지 『갈라테이아』만을 위한 디자인인지 모르겠다.





작가 매들린 밀러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신화를 익숙하지 않은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탁월하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흐릿했던 이름이 뇌에 새겨진다. 그저 아킬레우스를 분노하게 할 장치에 불가했던 파트로클로스. 오디세우스의 스쳐 지나가는 에피소드인 키르케. 이제 로맨스로 포장되어 온 피그말리온 아내의 이름 갈라테이아를 새길 차례다.


재작년(작년인 줄 알았는데...)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와 그의 후궁 의빈 성씨를 다룬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좋아한다. 의빈이 죽은 후 정조가 직접 쓴 비문이 아주 가슴 먹먹하기 때문이다. 정조의 찐사랑이 역사에 박제된 것을 그리 좋아하면서도 과연 의빈도 정조를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드라마는 주체적인 궁녀였던 덕임이 폐쇄적인 궁 생활을 하면서 시들어 가는 모습을 그렸다. 로맨스만 부각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포인트에 놀랐고 더 좋았던 기억이 있다. 


피그말리온의 신화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피그말리온은 마을의 여자들이 성에 안 차 직접 여성을 만들고자 조각한다. 만들고 보니 너무 완벽해 조각상을 사랑하고 만다. 반응이 없는 사랑에 지친 피그말리온은 신께 기도한다. 아프로디테가 그 열망을 들어줘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둘은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 신화인데, 그 어디에서도 갈라테이아의 선택은 없다. 창조자를 무조건 사랑할 이유는 없다.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피그말리온은 그녀를 소유한다. 여기서부터 갈라테이아의 비극은 시작된다. 애초에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을 사랑한 것이지,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갈라테이아에게 할애된 대사는 없다. 심지어 이름도 부여되지 않고 그냥 '여자'라고 불린다. (p.53, 작가의 말)


피그말리온은 아내가 돌이었을 때처럼 대한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그저 아름답게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딸은 점점 성장하지만 갈라테이아는 글자를 배우지 못해 직접 가르칠 수도 없다. 소설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볼 때 원전인 『변신 이야기』에서 갈라테이아에게 대사가 없다는 설명에 놀랐다. 『갈라테이아』에서 쓰기의 능력을 거세해 표현에 한계를 둬 원전에서 대사가 없는 부조리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당신은 내 남편이자 아버지이니까요."

"어머니이기도 하고."

"맞아요, 어머니이기도 하죠. 그리고 오라버니이기도 하고. 애인이기도 하고. 이 모든 거예요." (p.23-24)


갈라테이아는 이미 한 번의 도망으로 인해 병원에 속박되어 의사와 간호사의 감시를 받는다.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은 갈라테이아가 아니라 피그말리온이다. 위의 대사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 창조자로서 그녀를 억압한다. 또는 아버지, 어머니, 오빠, 애인, 남편 등 모든 역할이 되어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이라는 구도를 보자 나의 제1 피조물인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창조자의 일방적인 욕망으로 빚어올린 피조물이 나온다. 한쪽은 너무 못생겨서 버림받고, 다른 한쪽은 너무 아름다워서 집착 받는다. 미(美)의 유무로 두 피조물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린다. 유기와 집착. 어느 쪽도 행복하진 않다. 






∣ 여신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존재한다면 저 조각달은 여신이 나를 내려다보며 짓는 미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p.39)


문득 그의 소원을 들어준 신이 왜 아프로디테였을까? 궁금했다. 보통 사랑에 관한 소원은 에로스나 가정의 신 헤라가 관장한다. 원전을 다시 펼쳤다. 공간 배경이 아프로디테가 탄생한 키프로스 섬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아프로디테 축젯날 피그말리온이 기도 해 아프로디테에 닿았다는 걸 알게 됐지만 오직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을 탐했던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미(美)의 신 아프로디테가 들어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변신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둘 사이의 아이인 파포스(심지어 아이 이름도 피그말리온 지 고향에서 따옴)의 이름도 나오는데 갈라테이아의 이름은 각주로만 등장한다. 그런 갈라테이아의 이름을 자료를 샅샅이 뒤적여 길어 올리고 서사를 부여하고 목소리를 낼 기회를 줬다. 매들린 밀러는 올림포스의 13번째 신이다. 갈라테이아를 향한 달의 미소는 아무래도 아르테미스겠지. 조각달이 신의 미소라니. 표현력에 한번 놀라고 내포된 의미에 두 번 놀란다. 그로신 키즈로서 짧은 이야기에 담긴 수많은 상징성에 두근거렸다. 신화 다시 쓰기는 언제나 짜릿하고 재밌다. 제발 신화의 소재만큼 다채로운 차기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토피아 을유사상고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줄거리

유토피아에서 살다 온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가 토머스 모어에게 유토피아의 생활상을 들려준다.


#배경지식

① 토머스 모어는 헨리 7~8세 시대 활동. 

② 당시 영국은 흑사병, 백년전쟁, 장미전쟁을 거친 후 중세→근대 사회 격동기

③ 유토피아 출간 1년 후 종교개혁 일어남

④ 에피쿠로스의 쾌락(행복) 주의 


#감상평

직전에 읽은 『면도날』은 등장인물이 각자의 이상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연이어 『유토피아』를 읽게 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근본 유토피아를 들여다보고 당대가 생각한 유토피아와 나의 유토피아를 찾아볼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들입다 읽기 시작했다. 얇은 책이라 얕봤다. 오랜만에 각주 폭격을 받았다. 일단 읽기 시작했으니 계속 읽고 완독 후 관련 영상과 다른 책들로 부족했던 배경지식을 채웠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적으로 알고 읽으면 좋을 것들을 위에 적어두었다. 당시 시대상과 작가에 대해 알고 읽으면 1부를 이해하는 데 있어 확실히 수월할 것이다. 해제를 먼저 읽는 것도 방법이다. 너무 깊이 있는 책이라 지금의 나는 반도 흡수하지 못했다. 내공을 더 쌓을 미래의 나에게 숙제로 남겨주고 싶은 책이다. 


책은 1부와 2부 그리고 모어가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작가 자신인 토머스 모어가 가상 인물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와 만나 현재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영국 사회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히슬로다에우스는 아메리고 베스푸치 아래서 일했다는 설정인데 함께 돌아오지 않고 항해를 이어가 유토피아에 5년을 살다 돌아왔다. 2부는 현실의 디스토피아적인 국가에 대한 대안으로 히슬로다에우스가 생각하는 이상 국가인 유토피아를 설명하는 것이다. 


1부에서 온갖 각주 파티와 실제 사건의 나열로 혼란스러울 수 있다. 수필인가? 싶을 정도로 당시 영국 사회를 그대로 묘사해 놓았다. 하지만 소설이다. 주요 화자인 히슬로다에우스는 그리스어로 '난센스'와 '나눔'의 합성어로 '허튼소리를 퍼뜨리는 사람'이란 뜻이고 유토피아 역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자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역설을 담고 있다. 유토피아와 함께 등장하는 다른 지명들도 난센스 같은 작명으로 우화 같은 느낌을 더한다. 은유로 점철된 영국식 지적 언어유희가 가득하다. 


2부에 돌입하면 본격적인 유토피아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제부터 각주는 줄어들고 놀라움은 늘어난다. 출간 연도가 거듭 의심된다.


∣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중 여섯 시간만 일에 할당합니다. (p.70)


21세기 법적 노동 시간이 8시간인 사람이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토피아는 거의 자급자족 사회라고 볼 수 있는데 노동에서 배제된 여성, 성직자, 귀족 등 모두가 노동을 함께하면 적게 일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논리다.  


∣ 이 병원들은 작은 마을로 보일 만큼 상당히 규모가 큽니다. 병원을 그렇게 크게 지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환자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번잡하고 비좁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전염성이 강한 질병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p.77)


∣ 어떤 사람이 불구라고 놀리면 불구인 사람이 아니라 놀리는 사람이 천박한 자로 간주됩니다. 그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사람을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p.111)


흑사병이 유럽을 쓸고 간 이후이니 전염병 예방과 관련한 설명은 그렇게 뒤집어지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응급실 침대가 모자라 응급실을 전전하다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리뷰를 작성하는 기준 오늘(26일)도 해당 뉴스가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환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병원을 크게 짓는다는 부분에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출간 연도를 알기 위해 읽는 도중 검색을 해봤다. 1516년. 16세기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한국으로 치면 중종 11년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때로 돌아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 모어가 지식인이자 고위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말을 한 건지 아니면 놀라운 발상인 건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은 현대에도 그다지 당연하지 않다. 정말 대단하고 존경심이 든다. 


당시 영국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격동하는 시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데 다방면으로  뛰어난 학자인 모어가 농담을 곁들여 새로운 시스템의 국가를 제시한다. 비슷한 시기 출간된 『군주론』이 생각 안 날 수 없었다. 그리고 서양서 답게 유토피아 섬은 플라톤 『국가』가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플라톤의 『국가』, 모어의 『유토피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베이컨의 『신 아틀란티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각자가 꿈꾸는 이상향이 있다. 철학자가 통치하는 국가, 공동생산 공동 분배의 국가, 참된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 학자가 주류가 되는 국가, 고도로 과학이 발달한 국가. 이들 중 정말 유토피아에 가까운 건 무엇이며 장단점을 잘 버무려 유토피아를 건설할 순 없을까. 유토피아는 진정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생각이 갖가지로 뻗었다. 


∣ 우토푸스는 원래 대륙과 연결되어 있던 곳에 폭 15마일의 해협을 파서 바다가 이 지역을 둘러싸게 만들었습니다. (p.60)


유토피아는 본래 반도의 모양이었는데 15마일의 해협을 파서 섬으로 만든 인공섬이다. 인력으로 일궈낸 땅인 것이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본성이 거세된 꽤 강압적인 사회다. 열려있으면서도 닫혀있고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적이다. 이런 사회가 잘 작동되려면 좋은 의미의 인간적인 국민들로만 구성이 되어야 한다. 해제를 보면 유토피아의 생활양식은 모어가 경험한 대학과 수도원의 삶이 많이 투영됐다고 한다. 모어 같은 점잖은 학자, 종교인들이 소수만 모여 생활한다면 유토피아적인 생활도 가능할 것 같다. 다만 소수가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소규모 농촌 사회여야 한다. 유토피아를 현대에 맞추어 보강해 계획도시로 만들고 합의한 사람들로 시민을 구성한다면 도시가 어떻게 작동할까? 분명 이런 실험이 있었을 것 같아 검색해 봤지만 책 『유토피아 실험』만 무더기로 나와 찾지 못했다. 아는 분 계신다면 저도 알려주세요... 


유토피아 세계는 이미 시대 속에 사멸해 가는 공산주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사유재산과 사유지가 없고 국민들은 공익을 위해 비슷한 생활을 영유해야 한다. 유토피아의 세계를 어떤 사상으로 바라볼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되는 모양이지만 지식이 얄팍한 나로서는 이 부분은 차치하고 현대와 비교해 보고 싶다. 지금 우리는 공유, 구독 사회를 살고 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는데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는 고도로 발달한 북유럽식 복지사회라고 생각해서이다. 이처럼 공유, 구독 사회가 계속 발전해 나가면 유토피아 세계관과 맞닿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내는 남편에게, 아이들은 부모에게, 연소자는 연장자에게 복종합니다. (p.76)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가 정말 유토피아라고 생각하거나 그의 생각에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 개척의 당위, 개인성 배제 등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사지 멀쩡한 백인 남성에 국한된 유토피아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그린 유토피아가 진짜 유토피아인가 아닌가 세세하게 따져 묻고 싶지 않다.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책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단순 소설로서의 유희도 충분하다. 역사, 문학, 철학 말 그대로 인문학의 3요소가 어우러지는 순간은 늘 짜릿하다.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뭐지? 어떻게 하면 이상 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하는 다양한 생각을 해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유토피아'라는 세계관을 만들어 내 현재까지 다양한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것.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학자 사이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는 것. 500년 전 좋은 국가, 알맞은 법, 다 같이 행복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한 생각과 시도가 멈추고 있지 않다는 건 텍스트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이상향이 아닐까. 토머스 모어가 쏘아 올린 공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빛나는 위업을 이루신 잉글랜드의 무적왕 헨리 8세는 최근 카스티야의 왕세자 카를로스와 상당히 중요한 문제에서 의견 차이를 보여, 이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기 위해 나를 플랑드르로 파견하셨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군주들은 평화보다는 전쟁술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라면 나는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대개 군주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영토를 잘 다스리기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새로운 영토를 얻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군주들을 보필하는 보좌관들은 다들 현명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실제 어떻든 자신들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요). 그 사람들은 기껏해야 국왕의 총신들이 내놓는 온갖 이상한 제안들을 승인할 뿐입니다. - P23

이제는 양들이 너무나도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들까지 잡아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양들은 논과 집, 마을까지 황폐화시켜 버립니다. - P28

내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사유 재산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돈이 모든 것의 척도로 남아 있는 한, 어떤 나라든 정의롭게 또 행복하게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 최악의 시민들 수중에 있는 한 정의는 불가능합니다. 재산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수는 불안해하고 다수는 완전히 비참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 P52

다른 나라에서 전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 인구 중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거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혹시 여자가 열심히 일하는 경우에는 남편이 빈둥거리곤 합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이라든지 소위 종교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습니다. 여기에 신사나 귀족이라고 불리는 지주들을 더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붙어 먹고살며 뻐기고 돌아다니는 깡패 같은 시종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 좋고 건장하면서도 병을 핑계로 일을 하지 않는 걸인들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생필품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72

이 사람들은 금과 은을 가능한 한 최대의 조롱거리로 만든 것입니다. - P84

유토피아인들은 덕이란 자연에 따라 사는 삶이라고 정의합니다. - P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이다. 줄거리를 쓸 수 없는 소설이다. 처음엔 스무고개 같은 느낌이었다. 화자가 무엇일까? 누구일까? 스무고개는 이내 수수께끼로 변주한다. 내겐 의식의 흐름 기법 작가로 울프와 뒤라스가 양대 산맥이었다. 오늘부로 독보적인 원탑 작가가 갱신되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호그와트 마법 주문 같다. 그의 글도 방금과 같은 식이다. 지금 현재 바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







∣ 내가 여기서 당신에게 쓰는 것은 하나의 회로도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 그저 지금인 것. (p.15)


∣ 하지만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두 글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있다. 있다. (p.41)


'현재, 지금, 있음' 세 가지 키워드가 얇지만 절대 술술 읽히지 않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둥둥 떠다녔다. 읽음과 동시에 살아 움직이는 문장들. 이미 쓰여진 글에서 느껴지는 동시성. 문장이 살아 일렁거린다. 심리적인 깊이가 수심처럼 아득하다. 물 같은 글은 흘러간다.


∣ 나는 당신에게 자유를 주고 있다. 먼저 양수 주머니를 찢는다. 그다음엔 탯줄을 끊는다. 그러면 당신은 혼자서 살아 있게 된다. 나는 태어날 때 자유로워진다. 그것이 내 비극의 원천이다. (p.54)


흘러서 양수까지 거슬러 오른다. 살아 있는 글에선 생명력이 느껴진다. 자유를 얻어 탄생하고 비극과 같은 삶을 견딘다. 마치 죽기 직전 살아있음으로 남기는 생명력을 쥐어짠 유서 같은 글이다. 다채로운 심상을 담고 있어 결코 어둡거나 우울하지만은 않다. 문학에 재즈가 있다면 이 책과 같을까. 소외된 소수가 만들어낸 재즈처럼 저자만의 리듬을 가지고 오직 흐른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거기엔 몹시도 심원한 행복이 있다.

내가 여기서 당신에게 쓰는 것은 하나의 회로도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 그저 지금인 것. - P15

하지만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두 글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있다. 있다. - P41

나는 당신에게 자유를 주고 있다. 먼저 양수 주머니를 찢는다. 그다음엔 탯줄을 끊는다. 그러면 당신은 혼자서 살아 있게 된다. 나는 태어날 때 자유로워진다. 그것이 내 비극의 원천이다. - P54

나는 말들 너머에 뒤엉켜 있는 관능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문구들 속에서 나 자신을 구현한다. 문구들이 조용히 노크하면 거기서 침묵이 뿌옇게 솟아난다. - P31

나는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안다: 즉흥적으로 지어내고 있다.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음악을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재즈, 청중 앞에서 즉흥을 풀어 내는 재즈, 격정에 빠진 재즈처럼 하는 것뿐인데. - P33

내가 하는 말은 피상적으로만 들으라. 그러면 의미의 결여에서 하나의 의미가 탄생할 것이다. 내게서 높고 밝은 삶이 불가사의하게 탄생하는 것처럼. 말들의 무성한 밀림은 내 느낌과 삶을 빽빽하게 뒤덮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내 바깥에 남아 있는 내 것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 P37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때면 익명이 된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나의 깊디깊은 익명성. - P53

나는 말들의 흐름으로 글을 쓴다. - P55

당신은 나를 이해하는가? 하지만 너무도 너무도 지친 나는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 이 피로에서 나를 해방해 줄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니까. 나는 떠난다. 돌아왔다. 다시금 나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모든 것을 마주한다 ㅡ 이것이 나 자신을 창조하게 될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 P137

설령 당신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말하기는 곧 구원이 되기에 나는 말을 해야만 한다. - P138

자연의 부조리함. 침묵이라고 하는 것. ‘신‘은 너무도 거대한 침묵이라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 P139

당신이 무언가를 볼 때, 본다는 행위 자체는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ㅡ당신이 보는 대상은 형태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 보는 행위는 말로 표현될 수 없다. 또한 당신이 보는 대상 역시 어떤 때는 말로 표현될 수 없다. - P145

아, 삶은 너무도 불편하다. 모든 게 죄어온다: 몸은 요구하고, 정신은 멈추지 않는다. 삶이란 피곤한데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와 같다ㅡ삶은 성가시다. 당신은 몸과 정신 그 어느 것도 벗어 둔 채 걸어 다닐 수 없다. - P1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 앞에 선 인간 - 중세의 위대한 유산, 철학과 종교의 첫 만남 역사의 시그니처 3
박승찬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부터 집대성한 철학 개론서에 중세 시기는 보통 '암흑기'로 표현되며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정도 언급하는 게 보통이다. 표지에서 검은 바탕에 빛나는 형상은 암흑기라 표현하지만 그 안에서 사고하고 철학 한 빛나는 지성을 표현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론서에서만 접한 중세철학에 대한 이미지는 기승전'신'이었다. 무신론인 내겐 와닿지 않고 이성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신 앞에 선 인간』에는 종교의 탄생과 발전, 철학과 종교의 결합, 신학의 탄생이 담겨있다.  이 과정을 몸소 겪는 비교적 생소한 인물들을 접하면서 중세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중세 철학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성경의 모순을 논리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설득이 되냐 안되냐를 떠나서 다양한 관점을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고대 그리스 시대는 다양한 신들을 모시며 철학이 태동하고 빛난 시기다. 많은 신과 지혜를 숭배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정신을 계승한 로마에서 초기 그리스도가 제창되었을 땐 박해받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새 역사는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흐리기 시작했다. 역사를 글로 배우는 우리들에겐 그 엄청난 변화가 '그리스도교의 유행'이라는 짤막한 문장으로 퉁쳐진다. 그 후로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종교는 서양을 받치고 있어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영향이 지대하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깊게 찾아보지 않으면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그리스도교 문화로 넘어가는 과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을 수 없는 두 문화의 간극을 붙여준 건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종교에 그대로 차용했다. 이미 플라톤을 시대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로마 시민들에겐 최적의 접근방식이었다. 이걸 알게 되자 초기 그리스도교의 유행도, 서양 문화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는 수식어도 한방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와 오리게네스 파트에 그 과정이 담겨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모든 면은 양면이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이성의 암흑기로만 표현되던 중세가 종교철학 입장에선 빛과 같은 전성기였음을 깨달았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