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을유사상고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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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유토피아에서 살다 온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가 토머스 모어에게 유토피아의 생활상을 들려준다.


#배경지식

① 토머스 모어는 헨리 7~8세 시대 활동. 

② 당시 영국은 흑사병, 백년전쟁, 장미전쟁을 거친 후 중세→근대 사회 격동기

③ 유토피아 출간 1년 후 종교개혁 일어남

④ 에피쿠로스의 쾌락(행복) 주의 


#감상평

직전에 읽은 『면도날』은 등장인물이 각자의 이상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연이어 『유토피아』를 읽게 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근본 유토피아를 들여다보고 당대가 생각한 유토피아와 나의 유토피아를 찾아볼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들입다 읽기 시작했다. 얇은 책이라 얕봤다. 오랜만에 각주 폭격을 받았다. 일단 읽기 시작했으니 계속 읽고 완독 후 관련 영상과 다른 책들로 부족했던 배경지식을 채웠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적으로 알고 읽으면 좋을 것들을 위에 적어두었다. 당시 시대상과 작가에 대해 알고 읽으면 1부를 이해하는 데 있어 확실히 수월할 것이다. 해제를 먼저 읽는 것도 방법이다. 너무 깊이 있는 책이라 지금의 나는 반도 흡수하지 못했다. 내공을 더 쌓을 미래의 나에게 숙제로 남겨주고 싶은 책이다. 


책은 1부와 2부 그리고 모어가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작가 자신인 토머스 모어가 가상 인물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와 만나 현재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영국 사회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히슬로다에우스는 아메리고 베스푸치 아래서 일했다는 설정인데 함께 돌아오지 않고 항해를 이어가 유토피아에 5년을 살다 돌아왔다. 2부는 현실의 디스토피아적인 국가에 대한 대안으로 히슬로다에우스가 생각하는 이상 국가인 유토피아를 설명하는 것이다. 


1부에서 온갖 각주 파티와 실제 사건의 나열로 혼란스러울 수 있다. 수필인가? 싶을 정도로 당시 영국 사회를 그대로 묘사해 놓았다. 하지만 소설이다. 주요 화자인 히슬로다에우스는 그리스어로 '난센스'와 '나눔'의 합성어로 '허튼소리를 퍼뜨리는 사람'이란 뜻이고 유토피아 역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자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역설을 담고 있다. 유토피아와 함께 등장하는 다른 지명들도 난센스 같은 작명으로 우화 같은 느낌을 더한다. 은유로 점철된 영국식 지적 언어유희가 가득하다. 


2부에 돌입하면 본격적인 유토피아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제부터 각주는 줄어들고 놀라움은 늘어난다. 출간 연도가 거듭 의심된다.


∣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중 여섯 시간만 일에 할당합니다. (p.70)


21세기 법적 노동 시간이 8시간인 사람이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토피아는 거의 자급자족 사회라고 볼 수 있는데 노동에서 배제된 여성, 성직자, 귀족 등 모두가 노동을 함께하면 적게 일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논리다.  


∣ 이 병원들은 작은 마을로 보일 만큼 상당히 규모가 큽니다. 병원을 그렇게 크게 지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환자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번잡하고 비좁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전염성이 강한 질병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p.77)


∣ 어떤 사람이 불구라고 놀리면 불구인 사람이 아니라 놀리는 사람이 천박한 자로 간주됩니다. 그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사람을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p.111)


흑사병이 유럽을 쓸고 간 이후이니 전염병 예방과 관련한 설명은 그렇게 뒤집어지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응급실 침대가 모자라 응급실을 전전하다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리뷰를 작성하는 기준 오늘(26일)도 해당 뉴스가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환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병원을 크게 짓는다는 부분에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출간 연도를 알기 위해 읽는 도중 검색을 해봤다. 1516년. 16세기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한국으로 치면 중종 11년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때로 돌아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 모어가 지식인이자 고위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말을 한 건지 아니면 놀라운 발상인 건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은 현대에도 그다지 당연하지 않다. 정말 대단하고 존경심이 든다. 


당시 영국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격동하는 시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데 다방면으로  뛰어난 학자인 모어가 농담을 곁들여 새로운 시스템의 국가를 제시한다. 비슷한 시기 출간된 『군주론』이 생각 안 날 수 없었다. 그리고 서양서 답게 유토피아 섬은 플라톤 『국가』가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플라톤의 『국가』, 모어의 『유토피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베이컨의 『신 아틀란티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각자가 꿈꾸는 이상향이 있다. 철학자가 통치하는 국가, 공동생산 공동 분배의 국가, 참된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 학자가 주류가 되는 국가, 고도로 과학이 발달한 국가. 이들 중 정말 유토피아에 가까운 건 무엇이며 장단점을 잘 버무려 유토피아를 건설할 순 없을까. 유토피아는 진정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생각이 갖가지로 뻗었다. 


∣ 우토푸스는 원래 대륙과 연결되어 있던 곳에 폭 15마일의 해협을 파서 바다가 이 지역을 둘러싸게 만들었습니다. (p.60)


유토피아는 본래 반도의 모양이었는데 15마일의 해협을 파서 섬으로 만든 인공섬이다. 인력으로 일궈낸 땅인 것이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본성이 거세된 꽤 강압적인 사회다. 열려있으면서도 닫혀있고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적이다. 이런 사회가 잘 작동되려면 좋은 의미의 인간적인 국민들로만 구성이 되어야 한다. 해제를 보면 유토피아의 생활양식은 모어가 경험한 대학과 수도원의 삶이 많이 투영됐다고 한다. 모어 같은 점잖은 학자, 종교인들이 소수만 모여 생활한다면 유토피아적인 생활도 가능할 것 같다. 다만 소수가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소규모 농촌 사회여야 한다. 유토피아를 현대에 맞추어 보강해 계획도시로 만들고 합의한 사람들로 시민을 구성한다면 도시가 어떻게 작동할까? 분명 이런 실험이 있었을 것 같아 검색해 봤지만 책 『유토피아 실험』만 무더기로 나와 찾지 못했다. 아는 분 계신다면 저도 알려주세요... 


유토피아 세계는 이미 시대 속에 사멸해 가는 공산주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사유재산과 사유지가 없고 국민들은 공익을 위해 비슷한 생활을 영유해야 한다. 유토피아의 세계를 어떤 사상으로 바라볼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되는 모양이지만 지식이 얄팍한 나로서는 이 부분은 차치하고 현대와 비교해 보고 싶다. 지금 우리는 공유, 구독 사회를 살고 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는데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는 고도로 발달한 북유럽식 복지사회라고 생각해서이다. 이처럼 공유, 구독 사회가 계속 발전해 나가면 유토피아 세계관과 맞닿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내는 남편에게, 아이들은 부모에게, 연소자는 연장자에게 복종합니다. (p.76)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가 정말 유토피아라고 생각하거나 그의 생각에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 개척의 당위, 개인성 배제 등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사지 멀쩡한 백인 남성에 국한된 유토피아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그린 유토피아가 진짜 유토피아인가 아닌가 세세하게 따져 묻고 싶지 않다.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책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단순 소설로서의 유희도 충분하다. 역사, 문학, 철학 말 그대로 인문학의 3요소가 어우러지는 순간은 늘 짜릿하다.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뭐지? 어떻게 하면 이상 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하는 다양한 생각을 해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유토피아'라는 세계관을 만들어 내 현재까지 다양한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것.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학자 사이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는 것. 500년 전 좋은 국가, 알맞은 법, 다 같이 행복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한 생각과 시도가 멈추고 있지 않다는 건 텍스트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이상향이 아닐까. 토머스 모어가 쏘아 올린 공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빛나는 위업을 이루신 잉글랜드의 무적왕 헨리 8세는 최근 카스티야의 왕세자 카를로스와 상당히 중요한 문제에서 의견 차이를 보여, 이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기 위해 나를 플랑드르로 파견하셨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군주들은 평화보다는 전쟁술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라면 나는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대개 군주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영토를 잘 다스리기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새로운 영토를 얻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군주들을 보필하는 보좌관들은 다들 현명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실제 어떻든 자신들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요). 그 사람들은 기껏해야 국왕의 총신들이 내놓는 온갖 이상한 제안들을 승인할 뿐입니다. - P23

이제는 양들이 너무나도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들까지 잡아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양들은 논과 집, 마을까지 황폐화시켜 버립니다. - P28

내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사유 재산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돈이 모든 것의 척도로 남아 있는 한, 어떤 나라든 정의롭게 또 행복하게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 최악의 시민들 수중에 있는 한 정의는 불가능합니다. 재산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수는 불안해하고 다수는 완전히 비참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 P52

다른 나라에서 전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 인구 중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거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혹시 여자가 열심히 일하는 경우에는 남편이 빈둥거리곤 합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이라든지 소위 종교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습니다. 여기에 신사나 귀족이라고 불리는 지주들을 더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붙어 먹고살며 뻐기고 돌아다니는 깡패 같은 시종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 좋고 건장하면서도 병을 핑계로 일을 하지 않는 걸인들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생필품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72

이 사람들은 금과 은을 가능한 한 최대의 조롱거리로 만든 것입니다. - P84

유토피아인들은 덕이란 자연에 따라 사는 삶이라고 정의합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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