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2월
평점 :
줄거리
주인공 벤 브래드포드는 사진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월가의 유명 로펌 변호사가 된다. 아내 베스와 가정을 꾸려 두 아이의 아빠다. 남들이 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인생. 벤은 늘 사진에 대한 갈망이 있다. 아내와의 사이도 소원하다. 어느 날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게 되고 내연남이자 사진가인 게리를 우발적으로 죽이게 된다. 벤은 사건은 은폐하고 게리의 신분으로 살아가는데...
10년인가 15년 전에 이 책이 한참 유행이었던 것 같다. 사진기를 들고 있는 표지를 자주 봤었다. 입소문도 돌았고 그때부터 언젠가 봐야지 했던 책이다. 개정되어 새옷을 입고 나온 김에 보게 됐다. 확실히 언제고 입소문이 도는 책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재밌다. 뒤 내용이 궁금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500p에 육박하는 분량으로 두께가 상당한 데도 체감으로는 300p짜리 소설 한 권을 뚝딱 읽은 느낌이다. 그만큼 속도감있었다.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 도망자가 되어 심리적으로 늘 쫓기는 주인공을 좇다 보면 장르를 스릴러라고 해도 될 정도로 쫄깃하다.
‘재밌다. 술술 읽힌다.’로 감상을 마치기엔 뭔가 다르다. 보통 내게 ‘재밌다’는 감상은 주인공에 이입된다, 이해 내지 공감이 간다는 게 내포되어 있다. 스토리 전개는 흥미로우나 도통 주인공과 감정적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며 이 주인공이 어떻게 될는지… 하는 심정으로 다음 장을 팍팍 넘겼다.
∣그래. 나는 죽어야 해. 다른 출구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죽은 뒤에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태어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p.165)
내가 지금껏 이룬 사회적 지위, 명성, 가족 다 버려야 한다. 내가 죽어야 원하는 삶으로 살 수 있다. 남의 신분, 남의 과거로 이룬 나의 꿈. 그렇다면 그건 내 인생인가? ‘나’라는 정체성과 ‘꿈’이라는 갈망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
∣이제부터 내 이름은 게리 서머스다. 나는 사진가다.(p.267)
이 소설의 키포인트는 내가 원하는 삶으로 살 수 있다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면? 이다. 가정이 제법 솔깃하다. 그래서일까 많은 독자가 도망자 신세가 된 주인공 벤을 응원한다. 잘 도망쳐 원하던, 새로운 삶을 잘 살아내기를…!
∣프리지데어 사에 박수를! 시체를 냉동 보관해야 할 때에는 프리지데어 사의 냉동고가 세계 최고입니다.(p.228)
그는 명백한 살인자다. 사고가 아니라 살해다. 계획된 범죄는 아니었지만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이 꽤 구체적이고 본격적이다. 게리의 시신을 토막 내 냉동고에 얼린 후 처리하는데 위의 문장은 물론 소설적 위트겠지만 그 과정을 하나하나 본 나로서는 어라? 싶었다. 이 사람의 여생을 응원할 수… 있다고…? 게리의 시신을 몇 날 며칠에 걸쳐 숨기고 신분을 도용하는 과정에서 미국이라서 가능하겠단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한국이 아니니까 가능하겠다. 20살이 넘은 성인이면 정부차원에서 얼굴과 지문을 수집하는 한국에선 어림도 없지. 주변에 이 책을 읽고 주인공에 감정 이입한 친구가 있다면 같이 얘기 나누고 싶다. 이런데..? 이런데도…? 이렇다니까…?? 주인공 편에 서든 아니든 이런 감상을 야기하는 건 소설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우발적인 사고가 일어났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다. 나라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누군가의 편이 되어 응원하지 않은 까닭에 제목처럼 넓은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책이 영화 한 편을 본 거 같은 느낌을 줘서인지 후속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왕이면 같은 타임라인으로 아내 베스의 시점이 궁금하다. 벤은 자신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서 어쩌면 베스에게도 새 인생, 새출발의 기회를 안겼다. 주인공 벤은 정작 평생 좌불안석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 소설 최후의 승자는 베스가 아닐까.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돈이 곧 자유야. 그렇죠, 아버지. 하지만 그 자유를 얻으려면 일에 몰두 해야 하죠. - P36
네가 알던 삶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 P137
애덤, 나를 빨리 잊어야 한다. 슬퍼하지 마라. 이 길은 이 아빠가 선택한 것이야. 끔찍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 끔찍하지만 이 길을 다른 삶의 기회로 여기기로 했어. - P2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