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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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그림을 여러 장 이어 붙인 것이 현대의 영화와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다. 미디어는 수많은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다. 단 한 장으로 표현해야 했던 그림은 좀 더 은밀한 방식을 차용했다. 그렇기에 비교적 전문적인 해설자가 따로 있다. 그렇기에 아는 만큼 보이고 미술을 해설하는 책은 다양하다. 이 책은 단순히 정물화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정물들이 담고 있는 의미가 처음 시작한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파리의 신문과 소설책들은 그것들이 이 시골 농가로 전송된 경로를 말해 주고, 부인이 하고 있는 로켓 목걸이와 식기들은 장인과 상점들이 이 가정에 물건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p.47)


저자 가이 대븐포트는 『상상력의 지리학』에서 "인간은 처음에 사냥꾼이었고, 그리고 예술가였다"라고 했다. 문명이 싹을 틔우던 때 인간은 수렵채집과 사냥을 했다. 그렇게 구해온 식량은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캔버스로 옮겨갔다. 인간은 수많은 문명을 건설했다. 정물의 의미는 문명사와 함께 태동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마치 수수께끼를 보는 듯하다. 그리는 이는 문제를 내고 보는 이는 문제를 맞힌다. 정답은 우리에게 있다.



∣ 진실을 보는 한 가지 방법은 대상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익숙한 것을 에니그마처럼 보는 것이다. (p.171)


정물화를 평면적인 2D의 형태로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조형물처럼 전시해 360도로 빙 둘러보며 보는 느낌이다. 저자가 정물화를 바라보는 시각엔 미적, 사적, 철학적, 문학적 소양이 뒷받침한다. 그렇기에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저자의 지식이 폭넓고 깊은 만큼 심도 있는 해석을 낳는다. 나는 그 깊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바빴지만 조금이라도 더 미술적 조예를 쌓은 훗날 다시 톺아보고 더 많이 이해하고 싶은 책이다.



∣ 정물화라는 예술은 큰 밝음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먹을 수 있는 적절한 음식, 이를 먹는 적절한 방법은 모든 정물화 속에 내재해 있으며, 빵과 와인이 입체파 정물화에서 지속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p.179)


까끌까끌한 천 재질의 새하얀 표지는 정물을 그리기 전 캔버스를 연상시킨다. 본문 구성 또한 독특하다. 읽기에 큰 도움이 되는 도판과 본문 그리고 빽빽한 각주까지. 덕지덕지 콜라주적으로 편집된 이 책도 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다가온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음식을 구하고 구한 음식을 먹기까지 그 사이에 시간이 있다.

우리는 식사 전에 손과 식기를 깨끗하게 하고, 식탁 중앙에는 꽃장식을 놓고, 식사가 대화를 수반하는 사교 모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유지해 온 것이다. 정물화는 그런 맥락에서 문명의 장으로서의 식탁을 지켜 왔다. - P41

이 그림이 사과와 배를 그린 다른 정물화들ㅡ사과가 추락이고 배가 구원의 상징인ㅡ처럼 상실과 구원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면 우리는 이 그림 속 요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156

양파는 구원의 의미를 가진 배의 유사체이자 사과와 배가 결합된 존재로서, 그림 속 모든 것을 하나의 복합적인 상징으로 엮는 역할을 한다. - P157

상징적인 정물의 장면들이 서사 구조와 맞물리고, 더 나아가서는 건축적 개념으로 엮인다. 건축과 음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 P171

샤르댕의 조화로움에서 세잔으로, 세잔에서 브라크와 피카소로, 그리고 그들에서 데 키리코의 기하학적 에니그마로 이동하듯, 아모스의 비전은 여름 과일 광주리에서 신이 다림줄로 벽을 만드는 비전으로 이동한다. 정물화는 이런 비전들 중 둘 중 하나의 상징일 듯하다. 하나는 가을의 수확을 꿈꾸고, 우리가 거기까지 관리해 가는 과정과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다른 하나는 자연이라는 기반에 따른 건축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 시대에 따라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한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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