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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뇌 - 뇌를 치료하는 의사 러너가 20년 동안 달리면서 알게 된 것들
정세희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평점 :
길 위의 뇌 - 정세희
달리기는 온전히 내 몸으로 하는 운동이다. 달리기에 있어 몸과 정신이 거의 다라는 사실을 달릴 때마다 새삼 배운다. 달리면 달릴수록 겉에 걸치거나 지니는 것에는 가치를 두지 않게 된다. 오히려 제아무리 가벼워도 걸치는 것은 무엇이든 달리기에 거추장스럽고 무겁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딱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지니게 된다. 무엇을 가지기 보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 경험에서 무엇을 느꼈느냐가 훨씬 값지고 기쁘다는 것도 알게 된다. 210p
20년 전, 달리기를 뭣하러 해요?와 부단히도 싸워 온 저자의 직업은 의사다. 그것도 재활.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은 ‘뇌’에 문제가 있어 수술 후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이다. 최근 연이어 읽은 건강 또는 노화와 관련된 책들에서 심심찮게 읽어낼 수 있었다. ‘유산소 운동’의 유용성과 특히 ‘달리기’라는 운동과 뇌의 직접적 연관성까지. 책은 건강학적 측면보다 달리기 그 자체의 유용성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 더 좋았다.
달리기, 하고 싶은 말이 앞다투어 튀어나오려고 한다. 1년 전, 체지방을 빼볼 요량으로 뭐도 모르고 새벽아침에 나가 달렸다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피 냄새와 구역질을 느끼고는 곧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이건 아닌데?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친절한 런데이 앱 음성 속 “대단합니다!” 였고, 최초로 30분을 연속해서 달렸던 날의 뿌듯함이었다. 처음에는 체지방 감량이 목적이었지만 달린 후 맞닥뜨린 세상은 이전과는 전연 다른 세상이었다. 체지방이라니, 그 무슨 가소로운! 체지방이 아닌 삶 전반의 불필요한 것들이 하루 이틀, 왼발 오른발 나아갈 때마다 훌훌 털어졌다.
명상록을 필사하고, 모닝 페이지를 쓰고, 틈 없이 사람들을 마주하며 온갖 지성적 내숭을 펼치고 있어도 투둘투둘한 삶은 쉬이 깎이지 않았다. 다듬어야 아프지 않게 나아갈 수 있을 텐데 매번 쓸리고, 베여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포처럼 두 다리가 나의 앞길을 매끄럽게 다듬어주었다. 한번은 누가 물었다. “달리기가 도대체 뭐가 좋은 거죠?” 망설임 없이 내가 말하길, “그걸 대체할 운동이 없어요.” 단순히 운동의 영역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달리기를 대체할 움직임과 장치, 매개가 과연 있을까?
좋은 약과 의사, 병원과 진료는 한계가 있다. 내 병을 제멋대로 판단해 어설프게 간과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체는 나이고, 그 외의 것들은 그저 보조와 조력일 뿐이다. 주체인 나의 몸과 정신은 온전히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수술 후 뒤늦게 재활을 위해 운동을 하기 보다 몸이 안 좋아지기 전 예방 차원에서 운동을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 이야기하는 러너 의사의 이야기들이 유난히 와닿는다.
얼마 전, 김응숙 저자님 북강연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인간은 몸을 벗어날 수 없다고. 지금 여기 자신이 와 있기에, 우리가 그곳에 와 앉아 있기에 마주할 수 있다는 말씀에 지난 1년간 스스로 돌보고 아끼고, 사랑했던 나의 몸에게 고마움 마음이 일었다. 앞으로의 나도 같은 마음으로 돌보고 사랑해야지. 울퉁 불퉁 근육질을 자랑하기 보다, 평균 페이스와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로 능력을 판단하기보다, 가꿀 몸이 존재하고 거짓 없이 노력의 궤적을 여실히 내보이는 착한 이 몸뚱어리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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