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가 얼음이라면 모성애는 햇볕이었다.

열혈남아 (2disc)
이정범 감독, 나문희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2월

동료의 죽음을 외면하고 등돌린 죄책감에 시달리다 조직의 명령없이 독단적인 복수를 결심하고, 병든 어머니 때문에 태권도를 접고 조직원이 된 수하를 대동하고 표적의 고향인 벌교로 향한다.
그곳에서 항상 자식의 앞날만 걱정하는 전형적인 우리네 어머니의 분신인 국밥집을 하는 놈의 어머니를 먼저 만나지만 의도적인 접근임을 알게 되고서도 변함없이 아들처럼 대하는 그녀의 순수한 마음에 복수가 살아가는 목적이 돠다시피한 그에게서도 복수의 칼날은 차츰 무뎌져간다.
이야기의 줄거리야 폭력영화의 정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것을 연기하는 연기자는 우리 영화의 수준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설경구, 나문희 그들은 진정 앞날없는 건달과 오직 자식만을 위해서 생존하는 어머니 그 자체였으니까.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비정한 스무장의 세계를 펼친다.

타짜 SE (2disc) - 아웃케이스 있음
최동훈 감독, 김혜수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2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전문도박사를 일컫는 은어 <타짜>. 은혜와 원한, 복수 그리고 최고 고수들의 생사를 건 대회전, 이 모든 것이 중국의 무협소설을 방불케하는 현대판 심리전 화투의 승부세계다. 2시간여를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한 감독의 솜씨도 나무랄데 없거니와 각각의 특징있는 캐릭터를 살아 숨쉬는 듯 연기한 출연자들의 움직임은 손이 눈보다 빨라야 한다는 그들 세계를 멋지게 재현하고 있다. 다만 도박판의 꽃이요 설계자인 정마담이 왜 전설의 타짜인 평경장을 제거해야만 했는가 하는 대목에서 본인이 밝히는 이유만으로는 약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떻든 이 영화를 계기로 출연자인 유해진을 포함한 주연급 연기자들이 우리 영화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 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위장된 신분, 그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틴다.

디파티드 SE (2disc) - [할인행사]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12월

익히 알려진대로 홍콩 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이 헐리우드 액션 누아르는 무대를 보스턴으로 옮겨 어두운 가계를 지닌 경찰학교를 갓 졸업한 신참을 범죄 조직에 잠입시키는 경찰과 어릴 적부터 키워 온 영리한 청년을 신분을 세탁해 경찰학교에 입학시켜 그들의 끄나풀로 만드는 범죄 조직 모두 같은 속성을 지닌 부패한 집단으로 대비시킨다.
<무간도>가 스스로의 신분을 속여야했던 내면에 집중하면서 단순히 첩자들의 이중성을 그려낸데 반해 <디파티드>는 살아남기 위해 보다 비열하고 교활해진 측면이 강조되지만 자신을 위장하는 조직문화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어쩔 수없는 인간적인 측면도 그리고있다. 한 마디로 범죄집단과 경찰조직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악마의 화신인 듯한 잭 니콜슨이나 자기의 정체와 위장된 신분 사이에서 갈등하는 레오나드 디카프리오는 그들이 왜 명불허전인가를 확실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재난이 닥친다해도 우리는 가야만한다.

가디언
앤드류 데이비스 감독, 케빈 코스트너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7년 2월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보아왔던 특수요원 활동소재중 상대적으로 등한시해온 해안경비대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으로, 자신의 과욕으로 조난자 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모두 잃은 전설적인 영웅이 구조대원을 양성하는 사관학교의 교관으로 부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밖에 모르는 남편을 떠날 수밖에 없는 부인, 인근 여교사와 젊은 생도의 가벼운 로맨스, 늙었지만 경험많은 과거의 영웅과 젊고 유능하지만 아직은 미숙한 미래의 영웅과의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등 특수요원 교육을 다루는 영화에서 익히 보아온 상투적인 스토리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촬영하기 정말 힘들 것으로 생각되는 최악의 기상조건하에서 벌어지는 구조활동의 생동감과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조난자의 그것을 우선하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된 요원들의 결연한 의지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일깨워주면서 음지에서 조용히 일한다는 그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초심을 택한 용기있는 아가씨 이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세기폭스 / 2007년 2월

패션잡지 엘르의 한 담당자는 패션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패션계 사람들이 어떨 것이라는 편견에 입각해 만든 작품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영화라는 것은 꼭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실을 원한다면 백화점 쇼 윈도우나 동대문시장 패션상가를 배회하면 될 일이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패션 문턱에도 못간 아가씨가 우연히 일류 패션잡지사 편집장의 보조비서가 되면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상상을 초월하는 괴퍅한 성격의 상사를 뒷바라지 하면서 자기의 꿈을 변질시키면서까지 적응해가는 과정을 숨가쁘게 엮어나가는 솜씨는 조금이나마 지루함을 느낄 여지도 주지않는다. 따라서 세계 명품브랜드와 화려한 패션 쇼에서 잠시 눈을 돌려 현대 조직사회의 냉혹함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과정을 직시함으로써 가면무도회같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감각을 재빨리 회복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키 포인트다. 끝으로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막상 프라다에 대한 어떤 언질도 찾을 수 없었으며 나같은 문외한은 어떤 것이 프라다 제품인지 도저히 구별할 수도 없었고 오직 메릴이 맨 핸드백에서 문제의 상표를 얼핏 보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