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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전수일 감독, 안일강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란 해질 무렵을 의미한다. 개인지 늑대인지 사물을 정확히 분간하기 어려운, 낮의 밝음과 밤의 어두움이 혼재된 초현실적 느낌을 주는 시간이다.넓게 해석해보면 기억이 희미한 과거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깊은 충격을 받았을 때 그와 유사한 분위기만 조성되도 그 당시의 악몽이나 상황이 연상되어 많은 불안요인으로 다가온다.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쏱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도 있지않은가.
이 영화의 여주인공 영화 역시 해질 무렵 여동생을 잃어버린 아픈 기억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그 무렵만 되면 심리적 불안에 휩싸이는 그런 상처받은 여성인 모양이다.
은행의 빚 독촉 전화에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끊는 영화감독 김에게 삶은 탈출구 없는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평상시 왕래가 그리 많지않았던 사촌형 일규의 전화를 받고 현실도피적 의도를 가슴에 안고 고향인 속초로 내려가는 김감독에게 고향은 익숙함보다 낯설음이 더 많은 어찌보면 타향과 별다를 것이 없는 그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버스 안에서 만난 낯설지만 왠지 마음이 가는 한 여자와 우연히 민박집에서 재회하고 그 여자의 어린 시절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일에 동참하면서 예정에 없는 겨울 나그네의 여정을 시작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거의 모두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사는 사람들이라고 보아도 크게 빗나가는 추리는 아닐 것이다. 누구는 고향과 가족을 잃고, 누구는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또 누구는 자신감을 상실한 모두가 망각과 상실감 속에서 언젠가는 잃은 것을 되찾아 보겠다고 애쓰다가 한 웅큼의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관을 나서는데 초여름의 열기가 벌레처럼 엄습하여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놓는다.
아! 또 하루가 지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