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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ㅣ 환상문학전집 10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안정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4월
평점 :
내가 스트레스 받거나 우울할 때 찾는 책이 바로 하인라인의 책이다. 뭔가 고민이 있을 때 조언을 구하고 싶은 사람, 해결책은 아니어도 같이 분노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나의 해결 방법은 술도 아니고 쇼핑도 아니다. 맛있는 걸 먹고 수다 떠는 건 효과가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내 방법은,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가능한 해결방법을 생각해보고, 그리고 당장 내가 해야 할 일과 포기할 일을 구분해서, 전자는 하고 후자는 잊는 것이다. 하인라인도 비슷한 거 같다.
이 책의 소재는 '혁명'이다. 지구의 준식민지인 달에 사는 사람들이 지구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혁명. 하지만 이 혁명은 과격하고 순진한 정치 투쟁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정교한 구성으로 틀린 동작 없이 수행되는 하나의 오페라다. 그리고 그 무대감독은 --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우리의 주인공이다.
'세계관'이라고 할 만한 것에 대해, 나는 하인라인과 가장 가깝다. 그는 그것을 '합리적 무정부주의'라고 표현했는데, 지금 사회에서는 당연히 이상론이다. '프라이데이'에서 제가한, '가족이란 무엇인가'의 문제, '스타쉽 트루퍼즈'에서의 체벌에 대한 내용, '낯선 땅 이방인'에서 다룬 종교란 무엇인가의 문제, '더블 스타'에서 물은 정치란, 정치가란 무엇인가의 문제에 대해, 그는 전폭적으로 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세계관을 떠나서도 하인라인을 좋아하는 큰 이유는, 그가 '떠벌이'를 엄청 싫어한다는 점이다.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하는 사람들, 무슨 무슨 추상적 이념과 개념만 들먹이는 사람들, 나도 싫다.
이 책이 다만 혁명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하인라인이 실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하드SF를 쓰는 작가임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의 작품 중 가장 과학적 내용이 많이 들어있는 것도 이 책인 거 같다. 화자가 엔지니어이자 달세계의 가장 큰 무기가 물리학을 이용한 무기이고, 달과 지구의 중력의 차이도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과학선생으로서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물리 시간에 재미있는 예로 들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대가 달이어서 지구보다 상상력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된다는 점에서도 또한 매우 재밌는 책이다.
모든 책이 다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아까 마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두께(투자한 시간)에 비해 주는 재미가 적어 아쉬웠던 참에, 마침 며칠 전에 다시 읽은 이 책의 독후감을 쓰며 아쉬움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