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와 마고의 백 년
매리언 크로닌 지음, 조경실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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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약간의 모험이었다. 긴 호흡이 필요하고 김장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표지에서 자꾸만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서평단에 신청했다. 책이 배송되어 오고 나서는 마음이 바빠졌다. 500페이지의 소설을 별을 보는 심정으로 펼친다.


저자 매리언 크로닌은 1990년 워릭셔에서 태어나 자랐다. 랭커스터 대학교에서 영어와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버밍엄 대학교에서 응용언어학을 연구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 장편 소설인 <레니와 마고의 백 년>을 통해 ‘알렉스 어워드’를 수상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옮긴이 조경실은 성신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후 산업 전시와 미술 전시기획자로 일했다. 현재는 번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이제 나가서 사람 좀 만나려고요>, <오래된 지혜>, <일상이 예술이 되는 곳, 메인>등이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메이 병동(시한부)의 환자 레니와 다른 환자 할머니 마고의 만남이 이어진다. 만남으로 인한 두 사람의 거대한 프로젝트도 시대와 이야기별로 이어진다. 2부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어 두 사람 사이에 나눈 이야기들이 제법 많아지고, 나눈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깊이 알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3부는 남편을 보낸 마고의 이야기와 프로젝트를 끝내고 친구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레니의 이야기, 그 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미 죽은 별이 우리 눈에는 빛나 보이는 것처럼 가장 어두운 밤에 별을 보는 심정으로 레니와 마고의 로즈룸으로 들어가 본다.


‘레니와 마고가 여기 있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한 해 한 해를 손으로 꼽아가며 우리의 이야기를 해나갈 것이다.(p102)

메이 병동은 시한부 병동이다. 그곳의 17살 여자아이 레니. 분홍색 파자마와 슬리퍼를 신고, 늘 허락받은 곳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하지만 레니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다. 재미있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병동에서 우연히 만난 마고 할머니. 계약직으로 있던 직원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 미술실을 만들었다. 그 미술 수업에서 마고와 다시 만난 레니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한 해 한 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일을 시작한다. 레니 17세, 마고 83세. 두 사람의 나이를 합하면 100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미 다가온 죽음을 부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레니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삶과 죽음. 그것은 완전한 죽음이다. 그 완전한 죽음의 두려움을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기는 것으로 극복한다. 그 간절함이 뚝뚝 묻어나는 한 해 한 해 손으로 꼽아가며 이어 간다. 두 사람의 첫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첫 그림, 첫 이야기. 지금 현재에서 내 이야기를 남기려면 어떤 장면으로 가야 할까? 어떤 장면으로 남기는 것이 좋을까 잠깐 고민해 보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 감사함으로 간절함으로 하루하루 레니의 심정으로 일상을 찬찬히 둘러본다. 매일이 똑같아도 살아 있음이 감사하다.


“전혀요. 마고. 밤을 두려워하기에는 나는 별을 너무도 깊이 사랑하는걸요.”(P344)

마고와 남편 험프리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깜깜한 도로 한가운데 검은 옷을 입고 꼼짝 않고 하늘을 쳐다보는 험프리를 마고는 차로 칠 뻔한다. 아슬아슬하게 멈추었지만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는 20분 동안 식혀주면 된다고 하면서 험프리는 마고에게 차에서 내려 별을 보자고 한다. 마고는 미심쩍었지만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 차에서 내려 밤하늘을 바라보고 도시에서 보지 못한 무수한 별들을 본다. 처음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마고. 그런 마고를 향해 험프리는 별에 관한 이야기를 묻지 않아도 계속한다. 그런 험프리에게 마고는 어두운 곳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 험프리는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하면서 별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사라 윌리엄스의 <늙은 천문학자가 그의 제자에게>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별을 너무 사랑해서 밤이 두렵지 않다는 말. 무언가를 너무 사랑해서 그 위험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남은 인생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는 결혼도 사랑이 작동한 것이리라. 부모가 된다는 것도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고통도 잊고 뛰어넘게 된다. 생활에서 불이 꺼진 듯 밋밋하고 생기가 없는 나날들 속에서 모든 것들을 걸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일상을 단정하게 관리하며 운동을 쉬지 않는 것도 가족들을 향한 내 나름대로 사랑의 표현이겠지. 크게 대단한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을 작은 것들로 쪼개어 손에 잡히게 만들고 싶다. 아침마다 무거운 눈을 밀어 올려 몸을 일으키고 아침밥을 준비하는 것도 사랑이다. 퇴근시간을 맞추어서 저녁을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장을 보는 것도 사랑이다. 상대가 모두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너무 사랑함으로 그 서운함을 이길 수 있기를. 험프리의 말이 내게도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녀는 내 팔짱을 끼며 부드럽게 말했다. “슬픈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거야. 별들이 얼마나 오래전에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별들을 볼 수 있잖아. 별들은 그렇게 계속 살아있는 거야.” 별들은 그렇게 계속 살아있는 거였다.(P410)

레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안 마고는 병원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마고와 레니 모두가 처음 시도한 일이었다. 쌀쌀한 겨울날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깜깜한 비상구 앞에서 레니와 마고는 이야기 속 마고와 험프리가 보았던 대로 별을 쳐다본다. 그러면서 마고는 험프리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해준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은 이미 죽은 별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레니는 슬프다고 말한다. 그러자 마고는 위의 대사를 말한다. 어쩌면 마고는 별들이 그렇게 살아 있듯이 레니도 사람들 마음속에 그렇게 살아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17세 소녀를 향한 마고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레니도 알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추억을 공유하고 남들보다 짧고 소중한 시간을 공유하면서 사랑을 나누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어떤 의식도 호들갑도 없이 자연스럽고 조용히 레니와의 이별은 다가온다. 이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이었지 않을까? 죽음이 자연스럽고, 누구도 비켜갈 수 없듯이 그렇게 두려운 것도 아니다. 삶과 죽음을 특별한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별처럼 살아내는 것. 혹은 누군가의 별이 되어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지 않을까? 밤하늘의 별을 무심히 쳐다본다. 그 별 속에 아버지도 계실 것이라 믿으면서.

책은 열일곱 살 레니와 여든세 살 마고의 이야기이다. 왜 두 사람의 나이가 열일곱과 여든셋일까를 생각하면서 읽기도 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병원에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는 레니를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기도 했다. 별처럼 발랄하고 엉뚱하지만 사랑이 넘치던 마고의 남편 험프리의 모습에 혼자 미소 짓기도 했다.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은 마지막 욕심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해낸 험프리. 마초가 장례식 후에 남편의 연기를 알아차리고 오열하는 부분은 큰 감동으로 남았다. 요양원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당연하게 거쳐야 하는 과정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 안에서의 삶의 모습은 우리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 간혹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힘없고 아프고 나이 많은 사람들을 사람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모습이 많다. 평온한 듯하지만 영국의 요양원도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모습이다. 우연히 만난 전 남편의 동생과 마고의 대화에서 보듯이.

소설은 잔잔하게 흘러간다. 어떤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이어지지도 않고, 시한부 환자인 레니의 고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듯 말한다. 그게 또 마음이 아프고, 그럼에도 담담한 레니의 마음이 단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미 죽은 별이 눈에 빛나 보이듯이 누군가에게 빛나는 별로 기억된다면 그 삶은 참 아름다울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겐 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으로 오늘을 더 잘 살아야지 다짐을 했다. 별이 되어 기억되는 나를 있게 한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래 더 열심히 마음과 사랑을 다해 주위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살아가자.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할지라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감사하면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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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글쓰기로 배웠어요
이만교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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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문장을 통한 대화로 사랑을 실천하고 가꾸어 가는데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 생각문장을 창조하여 권력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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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글쓰기로 배웠어요
이만교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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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꽂혀 있는 단어는 글쓰기와 사랑이다. 글쓰기는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은 오랜 열망이 낳은 것이고, 사랑은 사랑을 잘 모르겠다는 마음에서다. 그 두 단어의 만남. 사랑을 글쓰기로 배웠다는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읽어야 할 책과 서평을 써야 할 책들이 밀리고 있고, 김장도 해야 하지만 이 책을 선택했다. 어쩔 수 없었다. 자석이 서로 끌어당기듯이 책을 선택했다. 글 쓰는 사람의 사랑을 위한 글쓰기 대화법이 생소하면서도 기대가 된다.


저자 이만교는 자칭 생각 문장 마니아. 음악이나 영상이나 패션이나 뉴스보다 생각 문장에 민감하다. 생각 문장의 세계는 언제나 좋은 만큼 좋고, 그렇지 못한 만큼 그렇지 못한 더없이 공정한 세계인 좋은 문장과 생각 문장에 편애를 앓고 있다. 여섯 권의 소설과 세 권의 ‘글쓰기 공작소’책을 출간했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고, 2부는 대화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4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3부는 대화를 즐기는 법을 4부에서는 몰입을 통한 대화의 즐거움과 깊이를 말하고 있다.

사랑을 배워야 하는 것으로 인지하지 못한 나는 글쓰기를 통해 사랑을 배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기대치가 높아진다. 글쓰기를 배우듯 사랑도 배워야 한다. 그 사랑을 지키는 대화법도 배워야 한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모두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사건 속으로 필기도구를 챙겨 들어가 본다.

(한 주제가 끝나면 짧게 요약된 페이지가 있어 실천에 참고하기 쉽게 되어 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내가 말하려 한 내용’만이 아니라 ‘상대가 해석한 내용’까지 책임져야 한다. 혹은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p38)

얼마 전에 읽은 <어른의 문장력>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자신의 글과 문장에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이라고. 단순히 내가 말하려 한 내용만이 아니라 상대가 해석한 내용까지 책임지고 대화를 이어가야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화는 단순히 말의 나눔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나의 말과 너의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대화이다.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하고 상대가 해석한 내용까지 책임지는 대화. 이런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이어간다면 정말 없던 사랑도 생기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상대가 어떻게 해석하던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했으니 그만이라는 태도와 마음이 얼마나 많은가? 이해하고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이 다 달라서 같은 단어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데, 우리는 얼마나 상대가 알고 있다고 가정하며 말을 하는가? 내가 말하는 나무는 소나무인데, 상대가 생각하는 나무는 은행나무일 수 있다. 이때 상대가 이해한 은행나무와 내가 말한 소나무가 다름을 인지하고 책임지는 노력을 해야 한다. 확인을 통해서 같은 단어와 의미를 찾아가고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위한 노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아... 갑자기 말을 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고 책임지고 집중해서 대화라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인가? 변화를 싫어하는 뇌가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그럴수록 더 노력해야 한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대화를 통해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고 넓혀가야 하므로.


부탁할 때는 온몸으로 부탁하고, 사과할 때는 온몸으로 사과한다. 심드렁한 어조로 부탁하거나, 차가운 말투로 사과하고 나서, 상대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순 없다.(p68)

가끔씩 딸아이가 불만을 표할 때가 있다. 자신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최선을 다해 실감 나게 말하고 있는데, 나는 자판을 두드리거나 책을 읽으면서 건성건성 대답을 하면 섭섭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대화에 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표면적으로는 읽는 책을 내려놓거나, 자판을 잠시 멈추지만 머릿속으로는 아직 거기에 머물고 있다. 그러면 딸아이는 이야기 하기를 멈춘다.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그 모습이 생각났다. “됐어요. 엄마랑 말 안 해요.”라고 돌아서는 아이를 향해 미안하다고 뒤늦은 사과를 하지만 방문이 닫힌다. 마음이 닫히는 것은 아닌지 약간 염려가 되어 노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딸아이를 찾아간다. 하던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온몸으로 사과하고 온몸으로 부탁해야 한다. 온몸으로 들어주고 반응하고 마음을 열어 너의 말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마음까지 나누는 대화가 된다. 자주 자존심을 세우며 대충대충 사과하고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현했던가? 남편은 자주 말했다.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고. 그랬을지 모른다. 입으로는 사과를 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표정에서, 눈빛에서 사소한 손짓에서도 드러났을 것이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 같은 남편과의 관계를 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 유독 남편에게만 사과를 하기 싫은지 모르겠다. 책을 조금 더 읽어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온몸으로 읽고, 온몸으로 느껴보자.


적잖은 사람들이 남이 쓰는 말을 자신도 그대로 사용한다. 마치 남이 사용한 숟가락을 쓰듯, 이제까지 써오던 말 그대로 다시 사용한다. 하지만 남이 쓰는 생각 문장을 그대로 쓰면 남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겠다는 뜻이다. 자신이 써오던 말을 그대로 쓰면 살던 대로 계속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p145)

남이 쓰던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아무런 거부감이나 문제의식이 없었다. 공부하지 않는 아이를 보고는 뭐가 되려고 하느냐고 별생각 없이 말했다. 반찬 투정을 하는 아이에게 먹기 싶으면 먹지 말라는 말도 스스럼 없이 던졌다. 좋지 않은 예로 등장하는 예시들이 거의 내 모습임을 깨달았다. 생각 문장을, 대화를 자신의 생각으로 더 좋은 쪽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도 못 하고 남이 하던 말들을 마치 내 말인양하고 살았다. 그랬으니 관계는 늘 어렵고 오해를 불렀으며, 마음은 늘 뾰족하게 솟아 몸을 피곤하게 했다. 써오던 말을 그대로 쓰면 살던 대로 계속 살아가겠다는 뜻이라는 말이 아프다. 아무 생각도 없이 습관적으로 걸러지지 않는 말들을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쏟아놓고 살았다. 그런 엄마일지라도 사랑으로 참고 견디며 사랑을 간절히 원하고 바란 아이들이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며 관심을 구하는 강아지 마냥 안됐다. 그 사랑의 마음들이 오랜 거절과 좌절로 무디어지지 않았기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저자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없어 입술을 깨물고 생각 문장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가족들에게, 지난날의 나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된다.


생각 문장을 가진 사람이 권력자라는 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더 사랑으로 말하고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상처를 주며 관계를 멀어지게 했던가 하는 뒤늦은 자각과 후회가 범벅이 된다. 또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말. 상대의 말이 어떠하든지 간에 더 좋은 문장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나인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해서 나만의 생각 문장을 말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읽어주어야 한다. 상대가 정확하게 내가 한 말을 이해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질문을 통해 물어보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말로는 아주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꽤 까다롭고 쉽지 않은 일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나를 겸손히 만드는 대화를 통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글쓰기를 하듯이 생각 문장을 고르고 상대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상대에 따라 주고받는 대화라고 하더라도 말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임을 잊지 말고 더 나은 문장들을 창조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 대화는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나은 생각 문장을 풍요롭게 갖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옳고 그름에 갇혀서 대화의 위대함을 놓치고 살았던 지난 시간에 보상을 주는 느낌이었다.

생각 문장을 통해 사랑을 키우고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생각 문장을 통해 배려하는 법을, 사랑을, 자연스러운 권력을 갖는 법을 자세하게 배우는 시간을 선사해 줄 것이다. 간혹 지난 자신의 대화들이 부끄러움으로 목덜미를 잡게 할지라도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용기를 내 보자. 당신을 위해 마음을 나누는 대화로, 생각 문장으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문을 열고 얼른 들어오시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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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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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으로 보는 나무와 꽃들이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받는 시집. 개기장풀처럼 당당하게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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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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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선택한 것은 익숙한 이름 하나 때문이었다. 띠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름. 문학평론가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어서 그의 이름이 익숙했고, 그가 추천하는 시집은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송된 책을 받아 보고는 고민했다. 잘한 선택인지를.

시집과 함께 작품 해설집이 온 것이다. 시를 너무 만만히 보았던 것은 아닌지, 우리말로 쓰인 시도 아니고 번역된 시를 온전히 즐기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 고민과 두려움은 넣어두고 무작정 그림 앞에서 그림이 말을 걸어올 때까지 감상을 포기하지 않는 심정으로 시 앞에 선다. 질문하는 시라는데 어떤 질문들을 던질까 기대와 두려움으로.


루이즈 글릭은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1943년에 태어났으며 202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68년에 시집 <맏이>로 등단했고, 1993년 시집<야생 붓꽃>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현재는 예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이 정은귀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미문학 문화학과 교수로 우리 시를 영어로, 영시를 우리말로 옮겨 알리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시와 우리 시를 영어로 옮긴 시집이 다수 있다. 옮긴이의 정성은 작품 해설에 실린 글로 인해 충분히 느껴진다.

시집은 제목이기도 한 야생 붓꽃을 시작으로 전체 54편의 시가 실려 있다. 꽃, 꽃나무, 풀 등의 목소리가 18편,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라는 제목으로 17편, 그 외 19편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주관하는 신의 목소리가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 실린 야생 붓꽃의 시를 읽고 잠깐 고민한다. 해설을 먼저 읽고 올까? 하지만 고지식한 원칙 주의자인 나는 시 그대로 읽어보기로 결정한다. 설마 읽다가 포기하기야 하겠어. 조금 뻔뻔함으로 보랏빛이 선명한 야생 붓꽃 앞에 서본다.


야생 붓꽃

그 고통의 끝자락에/ 문이 하나 있었어.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그대가 죽음이라 부르는걸/ 나 기억하고 있다고.

머리 위, 소음들,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들,/그리곤 아무것 없어. 힘없는 태양은/ 메마른 땅 표면에 어른거리네.

끔찍해. 어두운 대지에 파묻힌/ 의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그러고는 끝이 났지: 네가 두려워하는 것, 영혼으로/ 있으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갑자기 끝나고, 딱딱한 대지가/ 살짝 휘어졌어.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내가 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빠르게 날고.

다른 세상에서 오는 길을 / 기억하지 못하는 너.

네게 말하네, 나 다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망각에서/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목소리를 찾으러 돌아오는 거라고:

내 생명의 한가운데서 거대한/ 물 줄기가 솟아났네, 하늘빛 바닷물에/ 깊고 푸른 그림자들이.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묘하다. 혹은 알 것 같은데 모르겠다’라는 독자들의 평가가 많다고 한다. 이 문장을 읽은 후 마음속이 시원해졌다. 그렇다 문장이나 단어가 어렵지는 않은데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시를 읽으면서 혹시나 붓꽃의 생김새를 놓치고 있나 싶어서 네이버 검색을 해본다. 특별한 것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붓꽃이다. 자 다음으로 넘어가서 이 단어들을 어찌할지 고민에 빠진다. 읽는 데 채 2분이 걸리지 않는 시를 이해하기 위해 오래 들여다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말을 한다면서? 너는 누구고 나는 또 누구인 거지? 그럼 여기서 특기를 발휘해 본다.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읽어 보기에 도전한다. 고통의 끝자락에 있는 문 하나는 무엇일까? 그것이 희망의 출구인지, 아님 또 다른 고통으로 들어가는 분인지 들어가 보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언뜻 시의 분위기로는 죽음의 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기억하는 나는 누구인 거지? 붓꽃인가? 붓꽃을 가장한 다른 어떤 것인가? 시의 다음을 읽어보면 천지 창조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머리 위 소음들, 흔들리는 나무 가지들, 그리고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은 왠지 창세기 1장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말과 비슷한 이미지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자 이후로는 태초의 창조로 시를 읽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혼자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이 시가 처음에 실린 것은 천지창조처럼 모든 것의 시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시의 매력은 하나의 시선으로 끝까지 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어렵게 천지창조로 읽었다고 해도 다음 연에서는 그 시선이 유지되지 않는다. 천지를 창조한 이후에 식물이 말을 하는 건가? 그다음엔 인간이 말을 하는 것이고? 루이즈 그러 락의 시가 어려운 것은 질문하는 시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옮긴이의 말을 백 퍼센트 이해한다. 머리가 뱅글뱅글 돈다. 하지만,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름다운 야생 붓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시인도 있고, 그걸 읽고 좋은 비유고 문장이군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


개기장풀

뭔가가/ 엉망이야, 엉망이야 외치며/ 반갑지 않은 세계로 들어오네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나 끔찍이 싫어한다면/ 내게 애써 이름 붙여 주시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언어에/ 비방하는 말이 하나 더/ 필요한가요.

한 부류에도 모든 책임을/ 돌리는 또 다른 방식-

당신이나 나나 알잖아요./ 하나의 신을 섬기려면/ 하나의 적만 있으면/ 된다는 걸

내가 그 적은 아닙니다./ 이 화단 바로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외면하기 위한

하나의 핑곗거리일 뿐,/ 실패의 작은/ 모범 사례죠. 당신은 소중한 꽃들 중 하나가

여기서 거의 매일 죽고 있어서,/ 당신은 쉴 짬이 없는걸요.

그 원인을 처리해야 하니, 이 말은/ 뭐가 남든지, 그 어떤 것도/ 당신 개인의 열정보다

더 질길 거라는 뜻이지요-

세상에서 그게/ 영원히 계속될 것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왜 그걸 허락하는지, 당신은/ 늘 하는 걸 계속해 나갈 수 있는데,

애도하면서 동시에 탓하는 일./ 늘 함께 가는 그 두 가지요.

살아남기 위해서 당신의 찬사는/ 필요 없습니다. 내가 여기 먼저 있었으니,

당신이 여기 있기 전부터, 당신이/ 정원을 만들기 전부터 말이지요

그리고 나는 태양과 달만 남게 되어도/ 또 바다, 그리고 이 드넓은 들판만 있어도

여기 있을 겁니다.

내가 그 들판을 만들 것입니다.

개기장풀로 번역된 이 풀은 정원 가꾸기가 일반적인 미국에서 잡초라고 한다. 키가 크고 빨리 자라기 때문에 정원에서 주인에게 속히 뽑히고 마는 잡초. 그 잡초라는 것이 지극히 인간 편의 분류임을 개기장풀은 말하고 있다. 그렇게도 끔찍이 싫어한다면 이름을 굳이 붙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끔찍이 싫어하는 것에 굳이 이름을 붙어 부르며 끔찍함을 상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싫어하는 것들에도 이름을 붙여서 자신이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이름을 부르며 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부류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또 다른 방식’이 문장에 왜 지금의 정치가 생각나는 것인가? 상대를 향한 미움과 혐오, 싦어함을 이름 붙여 매일 매 순간 모든 책임을 돌리며 비난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가. 그 정치가 단순한 정치인들만의 문제는 아님을 본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상대를 향한 내 마음 또한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풀의 목소리를 빌려서 내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한 번도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단단한 다짐과 마음으로 읽혔다. 얼마나 자주 애도하면서 동시에 탓하는 일을 해왔던가? 안타까운 참사 가운데서도 애도하면서 동시에 탓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특성을 뛰어넘는 개기장 풀의 말을 듣는다. 살아남기 위해 당신의 찬사는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래 내가 살아가기 위해, 좀 더 잘 살기 위해 누군가의 찬사는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인정에 목메는 어리석음을 또 한 번 깨닫고 개기장풀 처럼 당당히 버리고 설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다짐과도 같은 말. 태양과 달만 남게 되어도 여기에 있겠다는 선언. 자신이 들판을 만들 것이라는 굳은 다짐. 그래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찬사와 인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나만의 인생으로 나만의 들판을 만들자!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는 내가 늘 드리는 기도를 생각하며 읽었고, 양귀 꽃의 아름다운 자태를 생각하며 시를 곱씹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 일상이라고 한다. 거의 일반적으로 집에 정원이 있고 철을 따라 꽃들이 피고 진다고 한다. 그 정원 가꾸기가 아직 우리에게는 낯설어 우리 식으로 바꾸면 텃밭 가꾸기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원과 텃밭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정원은 온전히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텃밭은 생존에 좀 더 가깝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즐기는 것, 삶의 여유를 느끼는 것은 아직도 낯설고 생소하다. 그 생소함으로 인해 시가 더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시에서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고 해설에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해설을 보지 않고, 내 느낌과 생각만으로 읽은 후 해설을 읽으며 내 감상과 느낌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전혀 엉뚱하게 이해한 시도 있었고, 정확하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느낌을 느낀 시도 있었다. 왜 출판사에서 해설집을 함께 만들어서 세트로 구성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문학평론가의 말은 시인의 시처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보는 사물들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시인의 탁월함은 조금 느꼈다. 예술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것을 다르게 만들고 뛰어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늘 보던 하늘과 계절과 꽃들, 정원에서의 일들이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읽은 후 어떻게 소화할지를 고민하는 시간도 괜찮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일상적인 나무와 꽃들이 어떤 말들을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권한다. 그럼 화단의 볼품없는 잡초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애씀으로 굳건히 지켜가는 자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익숙하지 않는 꽃들이 약간의 이질감을 주지만 데이지와 산사나무를 볼 때 시인이 떠오를 것 같다. 낙엽을 모두 떨 구고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을 새로운 마음과 눈으로 보는 경험을 줄 것 같다. 작은 잡초 하나에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힘이 들어가는 마음가짐을 갖는 멋진 시간을 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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