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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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포장을 풀어 본 순간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예쁜 편지에 내 이름이 쓰여있었고, 내용도 따뜻하고 좋았어요. 생각을 해보게 하는 제목도 좋았고, 무엇보다 박완서라는 작가님이 좋았습니다. 띠지의 함박웃음 짓고 있는 작가님처럼 나도 웃으면서 책을 펼쳐요.


박완서 작가님은 1931년 개풍군에서 태어나 소학교 입학하기 전 서울로 상경했어요.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1953년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었고,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어요. 이후 2011년 1월 담낭 암으로 타계하기까지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며 40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이ㅣ 장편소설을 포함,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각종 문학상을 받았고, 2011년 타계 후에는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어요.

책은 미출간 원고 포함해서 46편의 에세이가 3장으로 나뉘어 실려 있습니다. 미출간 원고는 님은 가시고 김치만 남았네라는 제목으로 박경리 작가님을 그리워한 작가님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어요. 오래전 원고라 시대 상황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의 마지막에 글 쓴 연도가 쓰여있어요. 3부로 나눠있지만 46편의 에세이가 그냥 박완서라는 사람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자녀들을 키웠고, 주위 사람들과는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왔는지를 모두 알 수 있어요. 미출간 원고라는 강력한 이끌림으로 책을 마중 나갑니다.


어둠은 탄(炭) 가루처럼 호흡을 압박하고 스며들어 깊이 모를 절망을 만들었다. (p45)

산속을 걸으면 겨울에도 쿠션을 밟는 것처럼 탄력이 있었고 봄에는 산이 아기처럼 새근새근 숨 쉬는 것을 닳아빠진 고무신 바닥을 통해 분명히 느낄 수가 있었다. (p67)

가끔씩 책을 읽을 때면 착각을 하게 됩니다. 문장이 너무 쉽고 잘 읽혀서 나도 써볼까 하는 착각이죠. 적확한 표현, 쉬운 문장과 흐름은 뛰어나게 글을 잘 쓰는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건데, 잘 알지 못하는 아마추어는 쉽게 생각하고 덤비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런 문장들을 읽게 되면 감탄하면서 좌절하죠. 어둠을 한 문장으로 표현했는데, 감정까지 느껴지다니. 그리고 심지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어둠이 생생하게 잡힙니다. 말로만 듣던 내용을 실제로 발견해요. 좋은 글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쓰는 글이라는 말을요. 그리고 두 번째 문장도 느낌까지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닳아빠진 고무신 바닥을 통해서 느끼는 흙의 생명력이 마치 지금 내 발에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 검정 고무신을 딱 한 번 신었던 기억이 있어요. 가난한 산골의 아버지 없는 살림이었으니 고무신은 바닥이 구멍 난 채였습니다. 구멍 난 고무신을 신고서도 산골을 뛰어다니며 놀았고, 신발을 신었지만, 땅의 모든 것들이 맨발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나 어느 날 물컹한 것을 밟았는데, 지나가던 뱀이었죠. 엄지발가락 쪽이 구멍 나 있어서 뱀을 밟았던 섬뜩한 기억이 떠올랐어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산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의 한 장편 같은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글을 통해서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나도 나만의 언어와 글로 어린 시절을 그려낼 수 있기를 욕심내면서 밑줄을 세게 그어요.


우선 일과의 싸움, 어제의 노고를 무(無)로 돌리고 밤사이 정확하게 제자리로 돌아와 쌓여 있는 여자의 일, 또 일. (p250)

작가님이 살았던 시대에는 더 가부장적이었겠죠. 결혼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남편 뒷바라지와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에만 평생을 보낸 작가님입니다. 시어머니와 남편, 자녀들까지 식구가 모두 일곱입니다. 일곱 명을 먹이고 입히고 하려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길까요? 그러면서 밤잠을 아껴 글까지 쓰시다니, 존경스러워요. 글도 그냥 대충 쓴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다작하는 부지런함이 부러움은 감히 갖지도 못할 정도로 대단해 보입니다. 어제의 노고를 무로 돌리고 정확하게 제자리로 돌아와 쌓이는 일들. 집안일이라는 것이 그래요. 분명 분주하게 매일매일 하지만 티는 나지 않고 바쁘기만 하죠. 그러다가 하루라도 건너뛸라치면 어김없이 존재를 드러냅니다. 오늘 치의 일을 하지 않았다고요. 이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날은 언제일까요? 아이들이 모두 결혼하고 난 후? 그때도 일은 줄어들 뿐 없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해방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보다는 적당히 일과의 싸움을 무승부로라도 만들 수 있게 타협하는 것이 좋겠어요. 너무 깔끔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 끼 정도는 가볍게 먹어도 된다고, 빨래는 다른 가족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타협을 시도해 봅니다. 물론 혼자만의 타협이지만. 이 문장을 고른 것은 무릎을 칠 정도의 탁월한 표현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가에게도 집안은 똑같이 주어지는구나 싶은 위로를 느껴서입니다. 처음에는 위로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좌절이 되는. 가족도 많고, 가전제품도 지금보다 많지 않고, 좋지도 않았는데 아이들도 잘 키우고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이라는 현타가 왔기 때문이죠. 하! 탁월하고 뛰어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좋지만 좋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책은 일단 제목이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염두에 두고 편집된 것 같은 구성도 좋아요. 작가님이 직접 살아계셔서 지금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작가님 생존의 최근 것에서부터 과거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처음 부분에서는 작가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고,(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후에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시대 상황을 잘 알 수 있어요. 연도를 표기한 것도 좋습니다. 50년 정도 과거의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때도 부자들의 모습은 지금이나 비슷하고, 먹고사는 이야기는 시대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죠. 다만 김장을 담그기 위해 며칠을 시장에서 발품을 팔아 배추를 사 오는 얘기는 시대를 느끼게 했어요. 장발족과 미니스커트 단속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도 좋아요. 자녀들에 대한 교육 철학도 좋습니다. 과정을 생략하고 모두 이루어 주고 싶은 과한 혼수 얘기도 지금 들어도 맞는 말씀이죠. 작가님이 싫어하는 여자의 유형이 나올 때는 바짝 긴장하면서 읽었습니다. 혹시나 제가 해당되는 것이 있을까 봐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자기 연민적인 내용이 없이 어른인 여성들이 조금 더 성숙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성이라서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서 더 당당히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멋져요. 페미니즘을 부르짖지는 않지만,(결국 페미니즘은 남녀의 구분을 두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간으로 동등한 것이죠)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생각하게 되죠.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에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읽어보고 싶다고요. 그래서 독서 모임에 추천할 생각입니다. 작가님의 생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요. 좋은 책입니다. 좋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여러분 모두 함께 읽어요. 그리고 느껴보고 생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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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재의 철학 - 21세기의 삶을 위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EBS CLASS ⓔ
조대호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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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토스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철학의 주요 사상과 개념을 쉽게 정리한 책이다.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지만 시대 상황이 전혀 달랐던 탓에 사상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시작에서 설명한다.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이유와 그들의 핵심 철학이 잘 정리 되어 있어 유익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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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재의 철학 - 21세기의 삶을 위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EBS CLASS ⓔ
조대호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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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지만 무익해 보이는 철학이 일상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모든 조건이 비슷하다면 철학이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할 것이라고 믿어요. 모르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른다면 조금씩 알아가면 될 일이죠. 소크라테스부터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미로 같은 철학 속으로 떠나 봐요.


지은이 조대호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입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서양 고전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마인츠 대학교 연구 교수, 연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장, 한국 서양 고전 철학 학회장, 한국 서양 고전한 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저자는 각종 매체를 통해 철학, 문학, 역사의 고전 속에 담긴 더 나은 삶을 위한 통찰들을 찾아 소개하고 있지요.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위대한 유산>-공저, <일리아스, 호메로스의 상상 세계>등이 있으며 역사서로 <파이드로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선집>-공역 등이 있습니다.

책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서양 고전 철학의 중심을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서 설명하고 있어요. 스승과 제자의 삶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각각의 시간차로 인해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사상을 간략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아고라에서부터 시작해요. 맨발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고라 광장에서 질문을 통해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며 타인의 생각을 이끌어 내는 산파술을 통해 알려지는 과정이 나옵니다. 이후 질문을 받은 권력자들과의 대립으로 재판을 받게 되고, 선택에 가까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나와요. 2부는 그의 제자 플라톤의 이야기입니다.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시간에 전성기를 누렸던 아테나이는 플라톤이 활동하는 시대에 점점 타락하고 쇠락해 가요. 그런 시대 상황 속에서 지배계층이었던 플라톤은 병든 세상을 구원할 정의와 철학을 찾게 됩니다. 수학의 세계에서 구원을 찾고 이데아를 설명하며 동굴 비유를 통해 형이상학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설명하죠. 인간의 본성을 영혼과 육체가 다르다는 것과 세 가지 마음을 통해 체계화합니다.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는 법적인 정의보다 도덕적 정의가 더 상위에 있다고 해요. 그래서 민주정의 많은 문제점을 극복하고 해결할 대안으로 철인 통치론을 펼칩니다. 마지막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져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생부터 플라톤과 다릅니다. 플라톤이 지배 계급층에 속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피지배계층에 가깝고, 아테나이 사람도 아니죠. 또 그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시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자의 눈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그의 철학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다른 점이죠. 관찰자의 눈으로 살아있는 것들을 통해 세상을 보고 다시 인간을 보면서 인간의 실존과 이성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의 스승 플라톤이 지배계급으로서 정치력을 철학자의 눈으로 설명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자의 눈으로 실천적 지혜와 좋은 민주정과 나쁜 민주정에 대해 말하죠. 그는 개인이 행복한 삶이 국가의 행복한 삶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했고,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실천적 지혜에 골몰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철학이 왜 현재에도 영원한 것인지 찬찬히 살펴볼까요?


철학은 정치도, 예술도, 기술도 하지 않는 것을 합니다. 바로 ‘질문하는 일’입니다.(P28)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의 맨발의 철학자였습니다. 맨발로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퍼부었죠. 가볍게 날씨 얘기부터 시작해서 그 사람의 일, 가치까지 나가면서 질문했어요. 캐묻지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요. 사람들은 그의 질문에 처음에는 가볍게 대답을 하다가 나중에는 당황하게 되고, 짜증을 내면서 소크라테스에게 답을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죠. 질문하지 않는 일상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오래되기도 했고, 바쁘다고 생각을 뒤로 미뤄두기도 했어요. 책을 한 권씩 읽으면서 질문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죠. 질문하지 않던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불편하기도 하고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검색창을 열고 검색하기만 하면 됩니다.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답이 없는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령 가치 같은 것들 말이죠. 사랑이라든가, 정직, 용기라는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들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것 말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합니다. 철학을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것부터 시작하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일단 질문하는 것부터! 지금 이 책을 왜 읽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지혜를 갖는다는 것은 플라톤에게는 이데아에 대해서 아는 것을 뜻하고, 통치자가 이데아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배의 키잡이가 별과 항로에 대한 앎을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뜻에서 이데아를 아는 사람은 바로 철학자이고 이러한 철학자가 곧 통치자여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 철인 통치론의 핵심입니다. (p125)

참 멋진 말입니다. 실제로 플라톤의 이론대로 실현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데아를 아는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각각의 국민들은 자신의 욕망과 능력에 맞게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 나라! 환상적입니다. 그러나 철인 통치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인 철학자에게는 사적인 욕구를 배제시키기 위해 가족도 만들지 말라고 해요. 그 시대의 제사장들에 가까운 엄격한 통제를 요구합니다. 가족이 없다고 해서 사적인 욕망이 사라질까요? 명예욕이나 승부욕은 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욕망이죠. 가족이 없이 처음에는 순수하게 이데아를 알고 공적인 질서를 유지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타락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사상으로서는 아주 매력적이고 환상적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시대에 철학자의 위치를 높이 평가했더라도 철학자도 인간이니까요. 인간은 어떠한 경우라도 완벽하지 않죠. 완벽하지 않은 인간에게 기대어 보다 나은 삶을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일까요? 대통령 직선제도 이제는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뛰어난 한 사람의 철인 통지 론도 좋은 정치가 될 수 없는데, 별과 항로에 대해 모르는 키잡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좋은 습관을 통해 형성된 습성에 따라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실현하는 삶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p182)

관찰자로서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라는 거대 조직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더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입니다. 동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던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인간으로 옮겨지고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로고스를 가진 인간의 차이점을 발견해요. 도구를 사용하는 침팬지는 있을 수 있지만 그 도구를 통해 다른 도구를 만들고, 만들어진 도구를 가지고 다른 도구를 만드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죠. 추리하는 능력을 통해 한계를 넘어서고, 창의력을 발휘하지만 그 때문에 동시에 인간은 위험합니다. 동물들이 절대 할 수 없는 위험하고 악한 일들도 할 수 있는 인간이죠.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사는 것에 대해 말해요. 즐거움, 욕망, 관습, 덕을 말하면서 행복한 삶이 되려면 좋은 습관을 통해 형성된 습성에 따라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실현하는 삶이라고 하죠.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를 조금 더 깊이 읽어보면 알게 될까요?


책은 쉽습니다. 그리고 한눈에 보이듯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심 사상을 보여줘요. 질문하는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지나 이상적이고 강력한 나라를 꿈꿨던 플라톤을 지나 관찰자의 시선으로 행복과 탁월함, 실천적 지혜를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첫 시작이었던 소크라테스의 질문하는 철학이 약간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라면 마지막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 현재에도 영원한 느낌이죠. 행복과 실천적 지혜, 탁월함이 윤리학의 핵심이니까요. 실천적 지혜를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숙고를 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숙고는 느린 생각을 말하죠.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생각마저 없는 사람처럼 사는 요즘 우리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느린 생각을 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머리로 느리게 고민하고 생각한 것으로 선택하고 움직이라고요. 또 플라톤의 철인 통치론을 통해 현대 대통령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정치제도나 사회 제도에 관해서는 높으신 분들이 혹은 전공하신 똑똑한 분들이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리에 휩쓸리듯 실천적 지혜 없이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요. 고대의 철학이 현재에도 영원한 이유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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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 - 우울증 환자를 살리는 올바른 대처법
최의종 지음 / 라디오북(Radio boo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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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7년간 공부와 돌봄을 함께 한 저자의 경험과 노하우가 친절하고 자세히 실려 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책의 곳곳에 넘치고, 그 사랑으로 아내는 우울증으로부터 탈출할 힘을 낸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곁에 두고 참고 할 만한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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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 - 우울증 환자를 살리는 올바른 대처법
최의종 지음 / 라디오북(Radio boo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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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갖는 편견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걸리는 것이고, 열심히 움직이면 낫는다는 편견이죠. 소중한 사람의 우울증을 지켜보면서, 혹은 가볍게 제가 우울증을 앓아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아주 심각하고 외로운 병이라는 것을요. 누구도 자신의 통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빌립니다.


저자 최의종은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후 현재 국내 유수의 게임회사 기술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어요. 우울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7년 전 우울증에 걸린 아내가 병원을 다녀도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보고 우울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각종 논문과 사례를 닥치는 대로 찾아 검토했고, 운동과 식단, 생활 환경 등을 아내 상태에 맞게 적용해 큰 효과를 거두었죠. 치료 과정에서 우울증은 가족이 돕지 않으면 낫기 힘들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고,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책의 앞 부부인 1~3장까지는 최초 진단받은 시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담았고, 이어서 어떻게 우울증 공부를 시작했는지, 인터넷에서 논문 찾는 방법 등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4장부터는 실제 시도한 여러 치료법 중 효과가 있었던 것들을 자세히 썼습니다. 특히 습식, 수면, 운동을 통해 건강을 되찾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중 가장 효과가 컸던 운동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요. 5장에서부터는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양제를 추천하며 그 효과를 설명했고, 책 말미에는 병원 치료와 병행하면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비약물적인 치료법을 다뤘습니다. 특히 10장에서는 효과가 좋았던 tDCS에 대해 강조하면서 사용법과 효과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요. 11장과 12장은 우울증을 이기기 위한 소비법과 우울증과 싸우며 알게 된 삶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고 있죠. 마지막 13장은 직접 우울증을 앓았던 아내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병원에서 말하는 것처럼 희망을 품다가 재발해서 더 고통 가운데 있는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며 책을 넘기는 손길이 빨라져요.


실제로 우울증에 걸린 상태 자체가 감정이나 기분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병적인 상태이고, 항우울제를 먹어서 회복되면 원래 감정을 되찾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 주고, 그것이 환자 본인의 ‘진짜 감정’이지 항우울제로 만들어진 가짜 감정이 아니라고 알려줘야 합니다. (P75)

우울증 약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습니다. 약을 오래 먹어서 중독되거나 약을 평생 먹는 나약한 사람이 될까 봐 우울증 환자들은 두려워하죠. 처음 약을 먹으면 효과가 바로 나타나서 금방이라도 완치가 될 것 같은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 희망 사이로도 자신의 감정과 상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의식이 이어지고, 약을 먹어서 나아진 기분이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가짜 감정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돼요. 이럴 때 보호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약을 먹어서 나타나는 부작용 및 효과에 대해서도 자세히 공부해서 알고 있어야 하고, 환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자세히 알려 줘야 하죠. 우울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말로써 환자를 힘들게 하지 않도록 만남을 통제하거나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우울증이 어떤 병인지를 분명히 알려줘서 이해를 돕습니다. 감정이나 기분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병적인 상태이며, 움직이는 것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해야 합니다. 심지어 환자 본인에게도요. 그래야만 환자가 자신의 병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불안해하지 않게 되죠. 약을 먹어서 일시적으로 나아진 기분이 약으로 인한 것이라고,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가짜 감정이라고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저자가 한 말은 인상적입니다. 또 책에서는 이렇게 실전 예를 들어 환자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 대화법이 쉽고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요. 대화들을 읽으면서 혹시나 제가 모르고 소중한 사람에게 힘든 말을 한 것은 아닌지 돌아봤습니다.


병원은 의료진의 자세, 대기실 분위기, 진료 대기 시간이나 병원 위치, 처방약을 받는 동선 같은 세세한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현재 다니는 곳이 여의치 않으면 과감하게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 환자들의 진료 후기 등을 참고하고 그래도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면 상급 병원을 선택합니다. (p158)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남편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아픈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배려하고 먼저 실천해 보는 모습이 그냥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극진한 사랑이죠.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듣는 부정적인 피드백은 치명적일 수 있어서 진료를 늘 함께 따라다니며 상처가 되는 말들을 차단했다고 해요. 그래도 100% 차단하기는 어려워 아내도 의사의 말에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을 바꿔보기 위해 먼저 병원을 방문해서 대기실의 분위기와 진료 대기 시간 등을 알아봤다고 해요. 그냥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먼저 경험하고 아내를 위한 최적의 선택을 해 나갑니다. 의료진의 자세와 처방약을 받는 동선까지도 생각하고 고려해서 병원을 선택했죠.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진료실에서는 몇 마디 말도 나누지 못하고, 혼자 진료 보고 약을 받아 돌아오는 소중한 사람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가까이 살지 않으니 매번 도와줄 수도 없고, 병원을 다녀왔느냐고 전화로만 묻는 형편이 생각나서요. 그래도 소중한 사람은 씩씩하게 버텨내고 있습니다. 혼자 많이 외로웠겠다는 말 한마디에도 힘이 난다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면서요. 역지사지가 어려운 것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왠지 의사 선생님들께는 높은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만큼 절박하기도 하고,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한 사람의 환자, 내 수입으로만 보지 말고(물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지만) 한 사람으로, 그것도 마음이 많이 아픈 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족 중 누군가라고 생각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진심을 담았으면 좋겠어요. 우울증 환자들도 병원을 신뢰하고, 의사 선생님을 신뢰하고, 긴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은 이게 가능하다고 싶을 정도로 자세하고 정성이 넘칩니다. 아픈 아내를 향한 세심하고 다정한 배려가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져요. 아픈 아내가 신경 쓰지 않게 하려고 로봇 청소기를 2대나 사서 돌리고,(소음을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2대를 동시에 돌려 시간을 짧게 하기 위해) 음식물을 버려주고, 생필품이 떨어지지 않게 늘 채워둡니다. 아이들의 숙제나 준비물도 꼼꼼히 챙겨주고, 아내가 대충 먹지 않도록 식단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요. 체온조절이 힘든 아내를 위해 여름에는 에어컨과 보일러를 동시에 돌려 항상 실내 온도를 26도에 맞춥니다. 전기 요금이 60만 원이나 나왔다고 하지만, 아내가 조금은 편안히 여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고 해요. 온갖 통증에 시달리는 아내를 위해 안마 의자를 사고, 집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홈트레이닝 기구들을 장만합니다.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아내를 위해 영양제를 먼저 먹고 안전성을 검토하고, 식단도 먼저 먹어보고 아내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천천히 바꿔 나가요. 또 tDCS를 직구로 구입해서 실제로 자신의 이마에 머리에 붙여 효과를 검증합니다. 이런 노력이 아내가 우울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싸울 수 있는 힘을 줬어요. 말 한마디도 아내를 생각해서 조심하고 어떤 의심이나 불안을 조성할 수 있는 환경들은 차단하기 위해 애씁니다. 부정적인 뉴스가 많았던 시절에는 미담 기사만을 뽑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고, 약 먹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아내를 위해 약이 나오는 기구를 직구로 주문해서 사용하게 했죠. 그런 지극 정성에도 아내는 쉽게 약을 끊었다가 재발해서 더 힘든 시간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서 빈 베드 하나를 달라고 무릎 꿇고 울면서 빌었던 적도 있다고 해요. 꾸준한 운동과 식습관과 생활 습관 관리로 아내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섣부르게 끊었던 약의 부작용과 재발을 알게 되어 항우울제를 보약처럼 먹고 있다고 해요. 마음의 감기라고 우울증을 얘기했던 사람들은, 우울증을 심각하게 여겨 병을 키우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이겠지만, 우울증은 감기 정도가 아닙니다. 수시로 자살 충동과 공황, 무기력, 전신 통증까지 동반하는 무서운 병이죠. 피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외상이 없다고 해서 가벼운 것이 절대 아닙니다. 소중한 사람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책의 저자처럼 모든 것을 환자 중심으로 세심하게, 다정하게 관리하며 이겨내야 해요. 어떠한 상황에도 환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도록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면서, 약물치료든, 운동이든, 식습관과 생활 습관 관리를 해야 합니다. 이 책이 그 길에 다정한 길라잡이가 되어 줄 거예요. 비록 경제적인 부분이 약간(많이) 동떨어진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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