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 이동시 총서 1
정혜윤 외 지음, 이동시 엮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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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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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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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딸에게 결코 공집합을 이해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존재하되 보이지 않으며 결코 발음될 수 없는 것. 우리는 공집합이고 그것은 모든 것입니다. 딸은 울면서 수학 문제를 풀고 당신은 애써 화를 누그러뜨리며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 침착하게 말합니다. 다시 풀어보렴. 지금 알지 못한다면 영원히 배울 수 없단다.”

13p

 

그날, 그 시절에 곁에 없던 아버지. 눈앞에 앉아 있었지만 가정환경조사서에는 그에 대해서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고 거짓된 진심을 써내야 했다. 존재하고 보이되, 발음될 수 없는 것. 유년의 에게 아버지란 육신과 이름을 가진 공집합이었을지도 모른다.

 

없는 것을 마주할 수 있을까. 부재는 눈에 보이질 않아서 그 울림이나 파장으로만 부재에 더듬더듬 다가갈 수 있다. 현재의 는 지금은 없는, 그 시절의 아버지를 찾아가려 한다. 지금 있는 아버지를 통해, 변해버린 시대를 통해, 아버지가 속해 있을 거대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서사를 통해. 무엇보다 아버지의 부재의 가장 가까이 있던 나와 어머니의 삶을 통해.

 

그를 기억할수록 그의 부재는, 그의 현재는 부당하다는 생각뿐이다.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다.” 그런데 왜 그는 이곳에 없는가. “아버지는 나라를 위한 봉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왜 그는 경찰에 쫓겨다니는가. “개인적인 삶을 이어나갈 몸과 마음과 물질을 포기하고 민주화라는 정의에 몸을 바쳤던 그는 왜 친구들의 부정을 목격하고 환멸하기를 반복해야 하는가. 병든 아내 앞에서 무기력해야 하는가.

 

개인적인 삶.

개인을 위한 삶이란, 자신의 입에 밥을 넣는 것뿐 아니라 다른 식구들 입에 밥을 떠넣는 것을 포함하는 개인적인 삶이란, 당신은 이제부터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당신에게 더없고 낯설고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혼자였던 적 없이 언제나 함께 투쟁했고 그래서 우리는 형제였고 겨레였고 민중이었으며 바로 그런 우리 자신이 우리 나라였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제 당신 동지들로부터, 벗들로부터, 민족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우리였던 당신은 한겨울 옷을 빼앗긴 맨몸으로 차가운 거리에 내던져진 듯하다.”

48p

 

우리가 부재하는 지금 이곳에 아버지의 자리 역시 없다. “우리였던 당신당신으로 살아가는 일에는 너무 서툴다. 당신은 전기 배선 기술을, 영어 급수를, 엑셀 함수를, 한글 프로그램을, 전산 자격증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워야 한다. 일찍이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선량한 사람부터 선량하지 않았던 사람까지 모두가 발버둥치면서 익혔던 것들을, 당신은 뒤늦게 따라가고 있다. 우리에 속했던 다른 이들은 이미 국회의원으로, 출판사 사장으로 개인적인 삶을 이뤘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바랐던 염원이 이뤄졌음에도 말이다.

 

당신이 우리에 모든 것을 바치는 동안, ‘와 어머니는 당신의 부재 속에서 우리와 개인적인 삶을 모두 생각해야 했다. 돈이라곤 한푼 벌지 못했을 당신을 대신해 어머니는 날마다 낡은 수선집을 열어야 했다. 우리라는 이름이 동지들이 물을 달라 술을 달라 부탁을 하면”(52p) 술상을 봤고, 술 취한 그들을 재워야 했다. “아버지의 동지”(108p)로서 아버지의 비밀 문서들과 문안들을 관리해야 했고, 어린아이였던 를 국가로부터 지켜야 했다. 당신이 얘기하지 못하는 삶을 에게 이야기해야 했고, ‘가 받은 상처를 곁에서 어루만져야 했다. 감내해야 했다.

아버지의 부재를 이해하는 여정은 그렇게, 어머니와 로 이어진다. 시대로 나아간다.

 

어머니.

나는 지금 작은 방에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시간.

 

우리는 저마다 작은 독방 하나를 얻기 위해

평생 개처럼 싸우고

그 속에서 마지막날을 헤아리며 천천히 늙어갑니까.”

64p

 

이제 어리지 않은 는 아버지와는 다른 시대에서 개인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가 없는 시대, ‘저마다의 독방을 가져야만 하는 시대에서 개처럼 싸우고” “마지막날을 헤아린다. 우리여서 목소리를 높였던 시대에서, “완전히 각자였기에 침묵”(182p)하고, “각자라는 고독을 철저히견딘다(181p). 아버지가 평생 꿈꿔 온 민주화가 이룩되었다는 지금에, 아버지의 삶의 방식이나 이상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아버지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아빠처럼 그렇게 분노하다가는 평생 월세살이를 전전하고야 말 것임을 알고, 아빠처럼 누군가를 돕다가는 평생 새카맣게 어린 상사들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날만 올 것임을 알고, 아빠처럼 제 몫을 챙기는 데 소홀하다가는 평생 연금은커녕 죽을 때까지 일을 구하러 다녀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아빠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것이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178-179

 

아버지를 부정하는 삶은 행복할까. 분노하지 않는다면 평생 월세살이에서 벗어나고, “고개를 조아리는 일 없이, 존엄을 포기하고 굴욕을 견디는 날을 겪지 않아도 될까. 현실은 제 몫을 챙기려 아등바등해도 죽을 때까지 일을 구하려 다녀야하는 것에 가깝다. 아버지와 완전히 다른 삶을 결심했지만, 다르게 살고 있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평범한 삶을 위해 나는 먼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눈감아야 하고 입다물어야 하고 고래를 처박고 견뎌야 하고 자신이 견딘다는 사실마저 깨끗이 잊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잊어야 하는가."

180p.

 

잊고 또 잊을 때, 우리여도 안 되고 각자여도 안 된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잊을 때 평범한 삶은 가능하다. 건물 지하의 더럽고 습한 방에서 우두커니 삶을 살아내는 노인을 보지 않으려 할 때, 승마 학교를 다니는 사장의 손주 이야기를 애써 무시할 때,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에 오른 각자가 다른 각자를 짓밟는 것을 외면할 때 내 삶이 평범하다고 믿을 수 있다. 잊을 줄도 모르고 각자의 비명도 외면하지 못하는 화자는, 이미 우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기억하는, ‘민주주의 사명과 신념을 더 잘 이해하던 열 살의 여자아이가 아닌 , 회사를 그만둔다. 진주로 향한다. 아버지에게로, 그 시절 그곳에 있던 어머니와 에게로.

 

빛은 잘 듭니까.

바람은 잘 불어옵니까.”

268p.

 

사방이 어둠이었던 반지하 방에서 물었던 그 말을, 아버지에게 전한다. 민주화라는 대의에 한몸을 바치는 이에게도, 개인의 삶을 손에 쥐려 발버둥치는 이에게도 빛이, 바람이 있어야 한다. ‘는 자신의 안부를 묻듯, 삶과 세상의 안부를 묻듯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당신이 지금 있는 그곳은, 내가 있는 이곳과 다릅니까.

 

붙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붙잡을 수 없는 뒷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272p.

 

붙잡을 수 없는 뒷모습을 한 사람을, ‘는 알고 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를 그릴 수 있다. 그릴 수 있도록 오래 생각해왔다. 오래, 보이지 않는 그를 바라봤다.

 

다만 나는 붙잡을 수 없는 뒷모습을 한 그의 이야기보다, 아버지와 아버지들의 이야기보다 그 뒷모습을 알아보는 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보였다. 그의 뒤를 묵묵히 지키고 서서 하염없이 그의 등을 바라보는 애처롭지만, 꿋꿋한 이야기를. ‘와 그녀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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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뭘 만들까 과자점
사이조 나카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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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처럼 따뜻하고 애틋한 책. 등장 인물들이 서로를 아껴 주는 모습이 따스하고 맛있는 과자가 줄줄이 나와 야금야금 편안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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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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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절반을 이해하기 위해 조금 시간을 내는 일


82년생 김지영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담담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다른 여자의 인생을 살아본 듯 이야기했으며,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돌아보았다. 그녀가 느꼈을 울분과 분노가 담백한 문체를 너머 마음속에 하나씩 쌓였다.

 

82년생 김지영은 음미하며 읽어도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나라의 2500만에 가까운 여성, 혹은 전 세계에 35억 명에 가까운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내는 시간으로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에 터무니없이 많은 이야기를 담겨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느낀 감정을 정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읽고, 또 읽었다. 세 번을 읽고, 829일에 조남주 작가님을 만나고 또 한 번 읽고서야 글을 쓸 수 있었다. 네 번을 읽으며 포스트잇을 붙이고, 다시 읽으면서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했다. 결국 네 번째 김지영씨를 만났을 때 모두 떼어버렸다. 어느 장면도 덜 중요하지 않고, 어느 장면도 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특별하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은 여아낙태(페미사이드)가 가장 심했던 80년대에 태어난, 그 시대의 여자아이에게 가장 많이 붙인 한자인 자를 붙인 김지영씨의 이야기이다. 82년생인 그녀는 자라면서 고등학생 즈음에 IMF의 영향으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게 되고, 30대가 되어 아이를 낳는다면 2012년 무상보육 정책과 함께 아이 엄마를 혐오하는 용어인 맘충을 마주하게 되는 세대다. 그 질곡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삶은 여자’, 역사의 그늘에서 살아온 2등 시민이자 영원한 타자의 이야기를 잘 보여준다.

 

82년생 김지영은 특별한 주인공의 특별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모든 내용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쉽게 듣고 경험했을 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20만 부가 넘게 팔리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으며, 모두가 읽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사회는 여성이면 누구나 알 법한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여성의 이름과 이야기가 항상 지워져왔기 때문에, 여성의 평범한 일생이 기록되거나 이야기된 적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사회의 절반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읽고, 바로 곁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타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조금씩 이해해나가는 사회는 분명 병들어 있다.

 

곪아 터진 여성혐오의 사회

여성혐오라는 말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쓴 지 2~3년 정도 된 거 같다. 문민정부 10년도, 광우병에 대항하던 촛불도, 2011년의 희망버스도, 그리고 세월호에서도 아무도 여성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광장이 열리고 많은 이야기가 남았지만, 여성의 이야기는 항상 닫혔다.

 

2014년 메르스 갤러리를 계기로 여성혐오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나는 놀랐다. 페미니즘을 외치고 또 외쳐도 묵묵부답이던 사회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대답해주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때서야 온갖 혐오와 폭력의 역사가 드러났다. 데이트 성폭력, 디지털 성폭력, 문단내 성폭력, 시선 강간, 한남() ...... 공포와 공감, 혐오와 적대, 연대와 치유가 한 시대에 엇갈렸다.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나날이 밝혀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이야기가 뒤늦게 시작된 사회에서 여성의 일상사를 세밀하게 기록했다. 소설이 마치 사회학 보고서나 역사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안타깝게도, 다른 어떤 매체에서도 왜곡되지 않은 한국 여성을, 혐오, 멸시, 성애화, 그러니까 무수히 많은 타자화와 억압을 벗어난 여성의 맨 얼굴을 보기 힘든 것이, 이미 곪아버린 여성혐오의 사회다.


남성이, 특히 남성 페미니스트가 곱씹어야할 책

2011년은 잊지 못할 해다. 대학에 입학한 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처음 만난 페미니즘은 혁명이었다. 삶을 보는 눈이 180도 뒤집혔다. 이게 맞는 건가, 이래도 되는 걸까, 싶었던 것들이 180도 눈을 돌리니 명백해 보였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먼발치에서나마 조금씩 이해해 나갔다.

 

남성 페미니스트로 살며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고 고민에 허덕였다. 동료 여성 페미니스트이자 친구에게 신뢰를 얻으며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에 조금씩 다가갔으며 페미니즘적 관계, 공동체, 사고방식을 오래 고민했으며 내 안에 깊게 박혀 있는 여성혐오적 사고방식을 걷어내고 또 걷어내며 수 년을 보냈다. 생각을 병적으로 검열하며 말을 잘 하지 않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면서 차츰 깨달았다. 여성으로 살아온, 그리고 여성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그녀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에 부딪혀 왔을까.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나도 이런데.

 

페미니즘을 만난 지 7년 째, 솔직히 82년생 김지영씨의 이야기 속에 낯선 에피소드는 없었다. 그런데도 읽을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전해준 것은 여성으로 일생을 산다는 것이었다.

 

모든 여성의 삶에 비하면 정말 작은 부분이고 짧디 짧은 김지영 씨의 일생으로 조금이나마 들여다 본 여성의 일생앞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흘리고 분노했던 것이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일상에서 수없이 분노하고 공감해왔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페미니스트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들, 나는 단 한 순간도 여성으로 살아갈 수 없다. 어떤 페미니즘 세미나에서도, 학술 서적에서도, 소설에서도 알려주지 못한 이야기. 버지니아 울프의 어떤 작품도 나에게 안겨주지 못한 강렬한 순간을 안겨준 82년생 김지영은 남성, 그 중에서도 남성 페미니스트라면 몇 번이고 곱씹어야 한다.

 

82년생 김지영의 미래를 그리며

고마네치를 위하여에서 본 마니의 미래는 어쩐지 어둡지 않았다. 실패한 삶, 성공한 삶도 아닌 마니의 삶을 조용하고 꿋꿋이 지켜나갈 거라 믿으며 책장을 덮었다. 그러나 책장을 덮으며 한 번도 김지영 씨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떠올린 적이 없다.

 

김지영 씨는 주변 여성의 얼굴을 하나씩 갖고 있다. 반대로 주변 여성 역시 김지영 씨의 얼굴을 갖고 있다. 김지영 씨가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가질 수 있고, 우리 역시 김지영 씨의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무섭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한 성별의 절반이 하나의 직업을 가지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조남주 작가님의 말처럼, 우리가 모두 김지영 씨의 삶을 체험했다는 것 역시 어딘가 잘못되었다.

 

쉽게 그려지는 김지영 씨의 미래는 오미숙 여사님이 겪어온 삶의 현대판이다. 지금의 중년 여성이 겪고 있는 현재가 가장 쉽게 떠오르는 미래다. 지금 떠오르는 미래를 김지영 씨의 미래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것은 희망을 놓아버리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오미숙 씨를 이해하고, 92년생, 2002년생의 어떤 여성이 김지영 씨를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그리는데 어색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들이 고군분투 해왔듯이, 누군가 82년생 김지영을 쓰고 페미니즘 서적이 서점 매대에 즐비하기까지 누군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듯이, 우리는 가슴아픈 김지영 씨의 기록에서 희망찬 미래를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어딘가에 92년생, 2002년생 김지영 소설이 출간된다면 그 책은 눈물없이 읽을 수 있어야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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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헤어졌을까
대니얼 핸들러 지음, 노지양 옮김, 마이라 칼만 그림 / 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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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별은 없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이 분다, 이소라

 

이별은 나의 일이다. 나만 달라지는 일. 세상은 달라 보이지만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다. 무엇보다 곁에 남은 추억이 담긴 물건을 보며 이별을 실감한다. 추억을 떠올릴 때 아픔이 먼저 다가올 때, 헤어졌다는 사실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이별을 묻는 순간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순간이다. 그리고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이 이별하는 순간이다. 그 이야기는 확인이다. 우리가 지난 물건을 들여다보는 일도 하나의 확인이다. 행복한 순간이 존재했었고, 그리고 지나간시간임을 가만히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자기에게 들려준다.

 

우리는 정말 헤어졌을까에서 이별을 겪은 어떤 소녀는 추억이 담긴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작은 물건 하나하나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은 그 조그마한 것들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사랑에 빠진 순간 상대방의 웃음이 그냥 웃음이 아니듯, 그 물건들 역시 그저 물건이 아니게 된다.

 

덩그러니 남은 물건은 이별의 증거이자 사랑의 상징이다. 물건은 이별을 말하지만 나는 사랑을 떠올린다. 결국 지난 물건 앞에서 모질지 못한 것은 아직 는 이별하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정말 헤어졌을까라는 제목은 어떤 사랑의 추억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이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남긴다. 당신은 정말 사랑과 이별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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