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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 여행기 - Izaka의 쿠바 자전거 일주
이창수 지음 / 시공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표지사진처럼 이를 앙다문 청년의 결연한 여행기.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에서
예전에 TV 에서 보았던 장면들과 재기발랄한 작가의 목소리를 기억해보려 애쓴다.
그가 마지막 덧붙인 에프터 노트에 내용처럼 쿠바가 궁금하여,
그 나라를 여행하는데 필요한 가이드를 받고자 한다면 이 책은 그리 썩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전거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 혹은 혼자 여행하길 원하는 사람은
작가가 느낀 소외감과 공포와 자기만족, 자기환멸을 적절히 가상체험 하게 되리라.
여행 중에 느낀 감상과 사색을 일기 쓰듯 담담하게 자신에게 고백하는
내용으로 짜여진 이 기행문은
젊은 청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생의 철학과 자신이 부딛히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매력을 가졌다.
"혼자 있을 때는 고독해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정신의 바닥까지 내려가 견딜 수 없이 고독하다면 가장 현명한 선택은 고독에 단단히 묶이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존재의 목동'이 되어 존재를 묻는 시간을 갖는다. 존재를 시간 위에 올려놓고, 죽음 앞에까지 생각하고, 삶으로 돌아온다.... 고독함을 사랑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다. 나의 부족한 부분 중 하나다."(p,086 파라다이스와 버뮤다)
문명으로 부터, 공공의 질서로 부터,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수많은 관계로 부터 벗어난
여행객의 실감나는 사색의 한 구절이다.
여행자의 솔직한 자기통찰에 눈시울 뜨거운 공감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으니...
작가는 그간의 불협화음의 협조자 방송국PD와 헤어질 시간이 닥치자 그가 탈 버스시간까지 기다려 배웅을
해 줄 것인가, 처음 목적한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출발할 것이가를 놓고 갈등한다.
아니, 헤어짐 후에 갈등한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돌려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나는 구도자의 자세를 흉내내고, 체 게바라를 따라하는 객기 청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확고한 가치관도 없이 영웅을 흉내낼 뿐, 그의 발뒷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런 인간이다........
나는 전혀 자라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고 있다. 다 좋은데 음식이 형편없는 레스토항, 모든 것을 다 갖췄는데 교양이 없는 여자, 그리고 즐겁기는 한데 생각은 없는 여행. 이 모든 것은 이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존재들이고, 나 역시 이 중 하나이다. 내가 죽여할 할 것들이 바로 이런 모습들이 아닌가.........
형은 대합실에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들고 대합실까지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형은 번쩍 손을 들고 나왔다. 우리는 얼싸안고, 얼마나 아쉬웠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곤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셨다. 따뜻한 맥주였지만, 더 없이 맛있었다."(p176 PD형과의 작별)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돌아갈 곳의 소중함을 아는 거라는 썰렁한 명제가 너무나 싫었던 나는
작가의 이러한 자기 반성과 곧 바로 과감히 자신의 잘못을 고쳐잡는 자세에 감동을 받았다.
자기성찰의 가장 좋은 방법은 한번쯤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성과 관성 속에 파묻힌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 시작하고 부딛쳐야만 하는 혼자만의 여행은
쉽게 묵인하고, 쉽게 성장시키던 부피로써의 자아를 알찬 돌맹이 하나로 만들어 낸다.
그는 이후로 지금까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행군하던 여행에서 도착점과 목표을 버리고
여행의 과정을 소중히 하자는 다짐으로 Restart한다.
그리고 내심 기대했던, 쿠바 연상작용 3순위쯤 되는 헤밍웨이 이야기도 마지막에 잠깐 나온다.
물론 멋진 이야기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헤밍웨이가 쿠바를 여행한 여행객의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 고마웠다.
작가는 바보가 될지언정 의미없는 평생을 살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도전했고
그의 인생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내 안에 있는 돌아보지 못한 나에게 노크해 보고 싶은 분,
들어 보지 못한 나의 목소리를 찾아 떠나고 싶은 분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정직한 청년의 고백을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