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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 여행에서 만나다
시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모임 지음 / 작가와비평 / 2012년 12월
평점 :
시라는 단어 앞에만 서면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지난 세월 내가 행해 온 책 읽기에 대한 회의감이 무럭 무럭 자라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시라고 하는 영역은 나에게는 신성 불가침 그 자체이다. 나이도 이제는 40대 후반을 넘어서고 있는 시점에 이제는 펼치기 보다는 하나씩 다지고 뭉쳐서 무언가 건실하게 하나의 구성체를 내 놓아야 할 초입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럴 때 시라고 하는 형식이 주는 그 압축성과 단단한 내적 구조가 더욱 나에게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역시나 나로서는 전혀 건드려 볼래야 볼 수 없는 장벽 그 자체로 다가온다.
지인들은 그냥 편하게 즐기라고 한다. 손 가는대로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그냥 펼치고 읽고 또 쓰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안된다. 나름 시를 읽어 보겠노라고 시집을 손에 들었어도 며칠 간 일뿐 어느덧 내 눈과 손은 압축보다는 풀어진 것을, 은근 보다는 노출을 더 편안해 하며 그 쪽으로 내 몸을 이끌어 가곤 했다.
그런 나의 시에 대한 열등감의 장벽에 균열을 만들어 줄 그 무엇이 필요한 시점에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에 대한 소개의 글이 먼저 내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할까... 시 그 자체만 붙잡고 씨름하기 전에 먼저 그 시를 쓴 시인에 대하여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알아가는 과정이 조급하지 않고 내 호흡으로 쫓아 갈 수 있다면, 거기에 친절하고도 능숙한 안내자가 곁에 있어 준다면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시인들에 의한 시인들의 추적 르뽀라고나 할까? 이미 앞에 2권의 책을 발간한 바 있고 이번이 세 번째 책이라고 한다. 시인들을 출생 지역별로 나누어서 그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남겨 놓은 흔적들을 따라가며 더불어 그의 시상의 근원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의도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이 서울 근교이다 보니 먼저 이 책의 저자들의 출생지가 서울, 경기,강원 지역의 시인들이라는 점에서 한 수 마음 편하게 접고 들어가게 된다. 처음 이름을 듣는 시인도 있고 이상, 김수영, 기형도, 변영로, 조병화 등 그나마 이름 석 자라도 들어서 알고 있는 시인들도 있다. 모두 12명의 시인들이 다시 살아서 담배 연기 뿜어내며 시를 낭송해준다.
대부분 시간의 흐름 속에 이제는 그 자취마저도 거의 사라져 버린 시인의 흔적을 찾아 거리 곳곳을 무더운 여름 태양 아래, 빗줄기 속에, 혹은 서릿발 같은 추위 속을 헤치며 후배 시인들은 헤매인다. 그리고 그것들을 사진에 담아낸다. 시인들이 활동 할 당시의 대부분의 무대는 이제 그 흔적조차도 남아 잇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문학관의 형태로 아니면 조그마한 기념비나 산소로서만 시인들의 흔적을 더듬을 뿐이다. 그러한 추적의 동선에 추적하는 후배시인들의 감성이 더불어 같이 일어나면서 이 책은 기록된다. 추적하고자 하는 시인의 시에 대한 추적하는 후배 시인이 해석은, 그리고 시인을 쫓아가는 여정에 대한 시인들의 기록은 또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편하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본디 속독이 체질화 되어 잇는 나이지만 식사 후 마실 산보 하듯이 여유롭게 한 장 한 장 지긋이 눌러 가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어라..그렇게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났더니 어느 사이 시란 놈이 옆에서 해말갛게 웃고 있네. 아직은 좀 어색하지만 무언가 친밀하고 기분 좋은 느낌으로 수줍게 악수하는 손을 내밀고 있다. 이번 기회로 이 녀석하고 친해 질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