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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에게는 AD 10세기 경의 고려의 건국 사건은 손에 잡히지 않는 먼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니 그 위로 올라가는 통일 신라 시대, 그리고 그 위의 삼국시대는 더욱 더 그러하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먼 신화의 이야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과 인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뿐 그것과 그 사람들을 둘러싼 이야기는 어떤 희뿌연한 안개와 같은 것에 감싸인 아른거리는 그런 것들일 뿐.
그런데 그보다 더 시간이 윗대로 흐른, 더욱이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닌 머나 먼 저 중동의 이스라엘의 역사 기록인 성경은 그렇지 않다. 이천년 전의 이야기인 예수의 이야기와 당시 유대사회의 역사와 문화는 마치 얼마 전 내가 눈으로 직접 본 것인 양 내 안에서 입체적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 기묘한 차이는 어디서 일어난 것일까? 이천 년전의 이국 땅의 생활과 역사가 일천년 전의 내 나라 문화와 역사 보다 더 친근하고 입체적으로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것은...
이것은 분명 성경이라는 상세한 그 시대와 인물에 대한 기록에 힘입은 바가 크지 않을까 싶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통해 들어 온 이천년 전의 이스라엘의 그 역사와 생활은 설교와 성경을 통한 수많은 접촉을 통해 우리의 역사보다 월등히 나에게 친근한 것으로 자리 잡은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정점으로 하는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조명과 소크라테스의 삶과 그를 둘러싼 사회 분위기등을 탁월한 필치로 살려낸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이제 소크라테스는 단편적인 몇 개 단어로 이루어진 죽은 지식으로서의 인물이 아니라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입체적인 인물로 친근하게 다가오게 되었다라는 점에서 이 책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단지 ‘악법도 법이다’라며 태연히 독배를 들었다고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둘러싸고 작가는 후손들로부터 위대한 철학자를 죽인 속좁은 사람들이라는 비난에 억울해하는 당시의 아테네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내릴 수 밖에 없었는지, 당시에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과연 어떤 당시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이다.
더불어 저자는 우리가 민주주의의 효시이며 전형으로 알고 있는 당시의 도시국가 아테네의 민주주의 제도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그 민낯을 철저히 드러내준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에 의해 확보된 노예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과연 현 시대가 그리워야 하는 이상적 사회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또한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젊은 날에서 장년에 이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일생을 담담히 알려주면서 우리에게도 그
렇게 이해되고 있는 당시의 미남 소년 알키비아데스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며 상세히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두가지 면에서 갑작스런 착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첫째는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그 어렵다는 인문학 고전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의 변명’, ‘국가론’등의 책들을 이제 손에 들면 술술 읽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라는 것과 또 하나는 기회가 되어 그리스를 여행하면 이 책에서 묘사된 그 길들을 따라가면서 지금은 현대적인 건물들과 전차가 다니는 그 길들위에서, 그리고 무너져 흔적만 남아 잇는 유적지들을 보면 금방이라도 소크라테스의 삶과 당시의 사회를 충분히 읽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쓴 소기의 목적을 적어도 나를 통해서 본다면 성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책들을 빨리 읽어 보고 싶다라는 강한 의욕이 들게 했으니 말이다. 500여 페이지를 넘는 그리 술술 읽히는 책은 비록 아닐지라도 인문학에 대한 막연한 공포 내지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먼저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감정은 적어도 고개를 들지는 않으리라는 점에서 일독을 권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