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원리로 널리 알려진 인기 강사 차동엽 신부가 또 한 권의 책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그동안 차 동엽 신부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희망에 관한 메시지를 집대성해 엮은 희망의 귀환이 그것이다. 먼저 제목이 주는 의미를 분석해 보자면 귀환이라 함은 어디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뜻할진대, 그렇다면 희망이 잠시 우리를 떠나 있었다는 말일 터.

 

우리 영악한 독자들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3포를 넘어 이제 4포로 일컬어지는 현 세대의 절망을 치유하기 위한 메시지임을 눈치 채었으리라. 차 신부는 책 전체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오직 희망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희망이 지금까지 인류에게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어가면서, 이렇게 절망이 에코(echo)되어 울려대는 시대에 부디 우리에게 희망 그 이름 자체가 주는 힘에 기대어 세상을 정면으로 부딪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차 동엽 신부의 책은 일기가 쉽다. 술술 넘어가는데 시쳇말로 넘어가도 너무 잘 넘어간다. 그래서 이 책을 손에 드는 사람들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애를 먹어야 했다. 이 책이 쉽게 넘어간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읽어버릴 책이 아니었기에 말이다. 한 순간 휙하니 저 넘어 가버린 눈길을 다시 돌려 일부러 아이들이 국어책 읽듯 한 단어 한 문장 또박 또박 정독하면서 눌러 읽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는지...

 

이 책이 단지 한 책상물림의 한가로운 예화 모음을 바탕으로 한 경구 모음에 그쳤다면 그 울림이 그리 크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차 동엽 신부 본인이 바로 어린 시절은 가난에 의해서, 또 나이 들면서는 건강 문제로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 본인을 오늘의 모습으로 있게끔 한 그 원동력이 바로 희망이었기에 저자가 줄기차게 외치는 희망의 멧세지는 우리에게 공허한 외침이 아닌 육중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빨간 펜으로 마음에 부딪쳐 오는 곳곳에 밑줄을 그었고 간직하고픈 예화와 일화들도 별도로 표기를 해두었다. 그리고는 책 읽기를 마친 후에는 그 부분들을 다시 모니터에 하나하나 찾아가며 갈무리를 해 두었다. 그 과정 속에 이 책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복기 할 수가 있었고 이렇게 갈무리한 내용들은 시간이 흘러 나에게 다시 절망의 어두움이 드리울 때마다 꺼내어 마음을 다잡는 역할들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갈무리 한 것들 중 몇 개를 적어본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spero, spera)

 

바라만 보지 마세요, 관찰하세요 (Don’t just look, OBSERVE)

삼키지만 마세요, 맛보세요 (Don’t just swallow, TASTE)

잠들지만 마세요, 꿈꾸세요 (Don’t just sleep, DREAM)

생각만 하지 마세요, 느껴보세요 (Don’t just think, FEEL)

존재하지만 마세요, 살아가세요 (Don’t just exist, LIVE)

 

트렌드라는 말은 참 매력적이지만 야속한 단어다. 트렌드는 간사하며 자주 바뀌고, 심지어 지구의 자전축처럼 자꾸 바뀌지만 브랜드는 바뀌지 않는다

- 브렌드화하여 그것으로 세계를 뒤흔드는 트렌드가 되게하라

 

단테의 <신곡> 첫머리 지옥의 입구에 적혀 있는 글귀

일체의 희망을 버리라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기에 희망자체가 지니는 힘을 빌려서 힘을 내라는 것이다.

 

절망의 유혹은 무섭게 집요하다. 이것으로 안 되면 저것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고요를 흔들어댄다. 절망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전형적인 수법 가운데 하나가 속단이다.

 

어플루엔자(affluenza) : 풍요로움(affluent) + 독감(influenza)

풍요의 욕망을 전염시키는 독감. 소비지상주의가 탐욕병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과중한 업무와 빚, 근심과 걱정을 떠안게 하는 한마디로 만들어진 절망이다.

반면에 부추겨진 절망도 잇으니 그것이 바로 비교이다.

 

세르반테스가 미치광이 돈키호테를 통해 이 희망가를 부른 곳은 감옥이었고, 그때 그의 나이는 50줄을 넘겼을 때였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가난, 결투와 도피생활, 전쟁 중에 입은 상처로 불구가 된 한쪽 팔, 5년에 걸친 노예생활, 4번에 걸친 탈출 실패. 말년에는 비리 혐으로 인해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는 이렇게 희망이 동난 막장의 상황에서 이상향에 대한 낭만으로 가득 찬 소설 돈키호테를 썼다.

보발것없는 재산보다 훌륭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 훨씬 낫다. 재산보다는 희망을 욕심내자.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사람들에게 배를 만들게 하려면, 바다를 보여주라!

 

젊음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 나이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본다”- 빅토르 위고

 

멋지게 생겨서 조경수로 가져다 사용하는 소나무는 하나같이 비정상적으로 발육한 나무인 것이다. 악조건을 무뤂쓰고 생존하기 위하여 뒤틀리며 성장한 나무들인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골앗의 싸움 법칙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창조적 전략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절대적 약자였기 까닭이다.

 

위험(danger)에서 한 치 모자라는 것이 화(anger)이다.

 

흔히 꿈의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는 이를 굳이 마다하지도 않지만 적극적으로 권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를 꿈의 계획 농법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이는 자신의 꿈에 농약도 주고 비료도 주고, 때 되면 인위적으로 전지도 하고 하면서 꿈의 결실을 보려는 접근법이다. 꿈이 이루어질 확률은 높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농법으로는 꿈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부작용이 남기 마련이다. 주위 환경의 피해, 잔류농약, 그리고 건강의 이상등.

이런 이유로 나는 꿈의 유기 농법내지 태평 농법을 권한다. 꿈이라는 나무를 파종만 하고 생태의 이치에 맡기는 것이다. 오로지 생태적으로 경합하고 상생하면서 결실을 맺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설령 소출이 적다 하더라도 그 꿈의 결실은 주위 환경과 농부 그리고 이웃들에게 자연의 환상적인 풍미로 기쁨을 주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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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의 바다에 빠져라 (특강DVD 포함) 인문의 바다 시리즈 2
최진기 지음 / 스마트북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주변에서 책 좀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치고 논어와 맹자를 비롯한 사기나 도덕경 정도 손에 한번 쥐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인문학에 대한 열풍과 함께 고전이 새로이 조명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터에 책에 관심있고 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논어나 맹자는 언제고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여기어 질 것이다.

 

나 역시 동양 고전에 대해서는 늘 그러한 의무감 비슷한 것이 있어서 언젠가는 반드시 독파해 보리라고 계획해 보지만 무엇보다 한자라는 벽과 함께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쉽게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평소 인문학 대중화에 힘써온 저자의 금번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저자의 나이가 아직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기존의 저작인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에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이 책은 동양고전에 특화해서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동양 고전의 세계에서 마음껏 그 맛을 느끼며 유람 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하면 먼저는 동양 고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먼저 중국의 역사적 시대상을 밝혀 준 후에 공자와 맹자, 노자,순자와 묵가 및 부처와 함께 조선 시대의 이황, 이이등까지 그들의 사상을 핵심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따라가기만 하면 우선적으로 각각의 성현들의 주장과 그 내용에 대하여 우선 커다란 틀로서 인식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틀에 맞추어 독자 각자가 향후 더 깊은 독서를 통하여 그 틀에 살을 덧붙여 나가면 되는 것이다. , 막연히 동양 고전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어도 섯불리 발을 디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방향을 제시해주는 입문서가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이 책의 특징은 기존의 고전 해설서들이 한문의 뜻풀이에 중점을 두었다면 저자는 현 시대 상황의 구체적 팩트 속에서 각 성현들의 가르침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예시를 들어 설명해 주고 있어서 고전이 단지 책 속의 죽은 지식으로서나, 아니면 현학적 지식의 자랑의 근거로서의 쓰임새가 아닌 살아서 펄떡이는 지식으로 독자가 고전을 접하도록 이끌고 잇다라는 점이 가장 큰 미덕이라 하겠다.

 

저자는 또한 각 장 마지막에는 각 성현들의 말씀들 중 핵심되는 부분의 원문을 해설과 함께 실어두고서 독자로 하여금 하루에 10여분 씩 투자하여 그 글을 읽게 함으로써 본문은 제쳐두고 그 해설만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원문의 깊이와 그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또한 배려해 주고 있다.

 

비록 학부 시절부터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나보다 10여년은 더 젊은 저자의 그 박학함과 유려한 글쓰기는 무심히 흘려 보낸 나의 지난날의 세월에 대해 혀를 차게 만들게 하고 또한 부끄럽게 한다. 하지만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했던가,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였듯이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받아든 부끄러움과 도전의식을 마음에 새기고 좀 더 깊은 동양고전 및 인문학의 세계로 덤벼들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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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 허준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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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1년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베스트 셀러 항목에 오르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가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독서 수준이 이런 종류의 책을 쉽게 읽어 낼 정도로 높다라기 보다는 사회 지도층과 사회 전반에 걸친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실망감 표출의 한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또한 금년 초에는 영화 ‘레미제라블’이 뮤지컬 이라는 형식의 낯섬과 긴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5백만을 넘어 선 것도, 영화에 힘입어 출판사들이 ‘레미제라블’의 완역본을 경쟁적으로 출판하고 있는 것도 노블리스 오를리제에 대한 사회의 갈망을 표출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정의에 대한 갈망은 바로 지난 대선의 시대 정신으로서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라는 구호에 함축적으로 담겨있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시대에 다시 한번 허준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공중파 TV에서 다시 일일 연속극으로 허준을 방영하기 시작했고 허준과 그의 저서인 ‘동의보감’에 관련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이는 아마도 허준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통하여 이 시대가 목말라하고 있는 정의와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또 다른 욕구의 표현이며 그렇게 정의롭게 살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엿보고 싶은 숨은 내면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전광열, 이순재씨와 함께 예진 아씨의 황수정이 열연했던 드라마 허준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MBC에서 다시 일일 연속극으로 ‘허준’이 상영되기 시작하는 이번 주에 이재운 작 ‘구암 허준’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을 보고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더욱이 저자의 전작 ‘소설 토정비결’을 읽어 본적이 있었기에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도 한몫하여 커다란 기대감을 가지고 책의 첫 장을 넘기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에게 다가온 느낌은 마치 달디 단 케이크를 먹은 후에 과일 한 조각을 먹은 기분이었다. 입에 넣은 과일이 단맛이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밍숭맹숭한 그런 순간처럼 말이다. 이은성 작가의 5권짜리 미완성 작품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 ‘허준’을 읽고 보면서 가졌었던 그 감동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가지고 책을 집어 들었던 내게 있어서 이 책 ‘구암 허준’이 바로 그러했다.

 

책 자체가 그리 짧지 않은 책이었건만 마치 요약본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저자에 대한 실례이려나... 아마도 앞의 책과 드라마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 책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누렸을 터이지만 앞의 두 작품의 아우라가 너무나 강했던 탓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을 거두어내고 책을 읽어낸다면 이 책은 서자라는 태생적 신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뜻을 세워 끝내 이 민족에 길이 남을 동의보감이라는 대작을 완성시킨 허준의 드라마틱한 일대기와 함께 시대적인 사회상도 같이 엿볼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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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치료, 나는 혈압약을 믿지 않는다 - 개정증보판
선재광 지음 / 전나무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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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거래처의 부도 소식을 듣고는 갑자기 치솟아 오른 혈압의 수치가 195mmHg였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방문한 병원의 의사로부터 혈압약을 조제받고는 이후 약 이년 여를 복용했다. 이후 ‘혈압약을 먹는 사람’이라는 어떠한 딱지가 내 의식 속에 달라붙게 되었고 이것은 무언가 모를 자괴감으로 나를 눌렀었다.

매일 혈압약을 먹으면서도 내 혈압의 상태는 보통 140~150mmHg 을 맴돌았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정상 혈압이라고 말하는 혈압의 수축기와 이완기의 정상 범위인 80~120mmHg에서 벗어나 있다라는 점에서 또 다른 스트레스로 나를 압박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나에게과연 혈압약을, 그것도 평생을 이렇게 먹어야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라는 회의감이 서서히 찾아오게 되었고, 수개월 전 어느 날 마침 약이 떨어져 다시 진료와 함께 약을 조제 받으러 가야 할 시점이 되었을 무렵, 한번 약을 먹지 말고 운동과 식생활로 혈압을 조절해 보자라는 마음이 들게 되어서 과감하게 약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주변에서는 큰일난다며 다들 염려하고 걱정해 주었고, 그러한 주변의 충고 아닌 충고들로 인해 나 역시도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벗어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끝내 마음을 가다듬고는 좀 더 혈압약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이후 오늘까지 나는 약을 먹기 전과 후가 별로 큰 변화 없이 잘 지내고 있다. 혈압의 상태도 약을 먹을 때와 별 차이가 없다. 살도 좀 빼었고 식사도 소식으로, 그리고 싱겁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비록 운동 습관을 들이는 면에서는 큰 진전이 없었지만 이제 날씨도 차츰 풀리고 있으니 활동양을 좀 더 늘려볼까 한다.

선재광의 ‘고혈압 치료, 나는 혈압약을 믿지 않는다’는 이런 나의 선택이 무식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참 반가운 책이었다. 저자는 현재 양학에서 주장하는 정상적인 혈압범위라는 것이 너무 작위적이고 또한 제약사들의 보이지 않는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혐의를 강하게 던진다. 또한 우리 몸은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하는 자연치유능력이 있으며 몸에 나타나는 이상 징후들은 바로 우리 몸의 어딘가가 고장이 났을 때 그 고장에 대한 경계 경보와 함께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치유의 과정 중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그 이상 증상들에 대해서 그 근원을 치유하는 것이 아닌 증상을 치유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약으로 인해 더 큰 병을 얻게 되는 악순환의 과정을 밟을 뿐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펼친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기존의 전작인 ‘서양의학이 밝혀내지 못한 고혈압의 원인’ 과 ‘네 가지 유형에 따라 살펴본 고혈압의 치료’라는 책들을 통해서 주장했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민들에게 알려지기도 전에 기존 의학계의 강력한 태클로 인해 고소까지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의 고혈압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신념은 전작들을 다시 집대성하여 이번에 ‘나는 혈압약을 믿지 않는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어 나온 것이다

나이가 차츰 들어가면서 책꽂이에 건강 관련 책이 한 권 두 권 늘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에 관한 책을 읽는다 하여도 그것이 내 몸에 익지 않는 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아니 오히려 그러한 책을 읽었고 정보를 안다라고 하는 사실이 외려 아편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선재광 저자가 전하는 내용은 바로 온 몸으로 실천하고 체득 하여야 하는 실천서일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하늘이 주신 소중한 육체를 잘 관리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다 하늘이 부르시는 날 깨끗한 몸으로 그곳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가를 사심 새롭게 깨닫고 있는 요즘, 좋은 책을 발간한 저자에게 새삼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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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한국사를 조작하고 은폐한 주류 역사학자를 고발한다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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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한의 글은 거칠다. 아니면 성난 아우성이라고나 할까. 그나마 이 책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목소리 톤은 전작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에 비하면 다소 그 목소리를 가다듬은 흔적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그 주장하는 바가 냉정한 음성으로 시시비비를 따질수가 없는 내용인지라 적어도 이 정도라도 눌러 앉힌 것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지레 그 뜨거움에 데여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하려는 최소한도의 이성이 발휘된 듯하다.

 

하기사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그것을 점쟎치 못하다고 나긋하게 “도둑님들 오셨네요. 이 집에는 그리 가져 갈 것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 주세요”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어딘가 모자른 사람이리라. 시시비비를 따져 옳고 그름을 가리는 차원이 있다면 때로는 먼저 야단부터 친 다음 그 잘못을 하나하나 들추어 바로 잡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마도 이주한에게 있어 한국 고대사부분에 관련한 일이 바로 그에 해당되지 않는가 싶다.

 

그동안 한국 고대사에 있어서, 특히나 단군 조선과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 시대에 대해 이것 저것 주워 들은 것이 많았지만 먼저는 전체를 꿰뚫는 공부라기 보다는 시간적으로도 단속적으로 책을 읽었었던 데다가 고대사를 밝히는 자료들이 귀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고 이해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제시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는 상태였다 보니 각각의 단어와 지식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데에 다소 혼란과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편린으로 존재하던 그것들이 한 줄에 꿰어지듯 머릿속에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도 그동안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읽어댔던 지식들이 그 밑바탕을 이루고 거기에 저자 이주한의 상세한 자료 설명이 큰 도움이 되었던 듯 하다.

 

이주한은 현재의 한국 고대사에 대한 중대 논점이 3가지라고 이야기 한다. 먼저는 단군 조선의 역사성과 둘째는 한산군의 위치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부식의 “삼국사”의 초기 위작론이 그것이다. 이주한은 이 3가지 문제를 대하는 태도, 즉 사관에 따라 민족주의 사관과 식 민주의 사관으로 나누어진다고 하고 현재 한국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제 통치 때 일제의 어용 학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조선사를 왜곡하여 일본의 조선 지배 통치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사상적 토대를 삼았던 식민 사관이며 그것에 기대어 기득권을 내려 놓지 않으려는 그 후예들이라고 일갈한다.

 

이주한은 역사의 연구 방법은 철저히 의문과 상상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 의문과 상상은 무엇보다 1차 사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일제에 의해서 장기간에 걸쳐 우리 역사에 관한 책들이 강제로 거두워져 불타버린 분서의 경험으로 그 1차 사료가 비록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래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중국과 국내의 1차 사료들을 통해 단군의 역사성과 한사군의 현 중국 지역의 존재, 그리고 삼국사의 진실성 여부가 충분히 검증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주장이 확인되면 일제에 의해 주장되어지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온 기존 식민사학자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누려왔던 모든 것을 잃을 위험에 처하자 이러한 주장들이 힘을 얻을 수 없도록 어떻게 왜곡하고 억압해 왔는가를 뜨거운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또하나의 흥미로운 점이라면 러시아 출신인 귀화 한국인인 박노자에 대하여 거침없이 일침을 가하고 있다라는 점이다.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 역사에 관하여 해박한 글쓰기를, 그것도 진보 진영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한겨레에 해 왔던 박노자에 대해 그의 주장이 진보의 탈을 쓴 철저한 식민 사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결기서린 비판에 이르러서는 한국 고대사에 대한 그의 애정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이주한이 속해 있는 한가람 역사 연구소는 이덕일씨가 소장으로 있는 곳이다. 이덕일의 책은 여러 권 읽어 본 적이 있기에 이주한이 주장하는 바가 전혀 낯선 바가 아니었지만 어찌 보면 그 동안 이덕일 혼자 외로이 이러한 주장을 펼치던 중 이제 그동안 가르치고 키워낸 제 3의 이덕일이라 할 수 있는 이주한 같은 저자에 의해 이런 주제의 책이 발간 될 수 있다라는 점에서 비록 해방 이후 상당히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나마 우리의 역사계를 놓고 볼때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년에 기회가 있어서 이주한씨와 간단히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막걸리 한잔 놓고서도 긴장감어린 목소리로 역사에 대한 애정을 울분으로 토해내던 그 모습이 생생하다. 이제 나이도 적지 않고, 본인 말마따나 이런 주장으로는 학계에서는 발 붙일 곳조차 없는 토양에서 어떻게 식솔들을 이끌고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그의 목소리와 결기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마음에 드는 것은, 마치 어려운 일을 타인에게 떠 넘기고 홀가분해 하는 어린애 같은 나의 이기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이런 찜찜함을 털어 버리는 최소한의 나의 책임은 이러한 이주한의 책을 한명이라도 더 읽히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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