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류기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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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 그래디 헨드릭스 #도서제공

📙파이널 걸은 슬래셔 영화에서 살인마를 처치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를 가리킨다. 이 그룹은 말 그대로 파이널 걸 6명이 모여 캐롤 박사의 주도 하에 서로를 서포트 하려고 모인 모임이다. 하지만 16년이나 이어진 이 모임도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로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다투며 모임을 나가겠다는 사람까지 나온다. 그러던 와중에 모임의 리더격이던 에이드리언이 살해 당하고, 뒤이어 리넷과 줄리아, 헤더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누가 다시 파이널 걸들을 노리는 것일까?

🏷슬래셔 영화는 살인마가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걸 보여주는 공포 영화의 하위장르이다. 대개 그 살해장면이라는 게 마체테, 칼 등의 날이 있는 도구로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라.. 중간중간 파이널 걸들이 경험했던 사건에 대한 묘사들이 나오는데 아주 잠깐이라도 읽기 힘들었다. 작가가 슬래셔 영화에 대한 지식이 어찌나 많은지! 어떤 페이지에서는 파이널 걸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순위도 나온다. 나는 이게 진짜 있는 영화인가 싶어 검색해 봤는데 소설 속 주인공인 파이널 걸 6명을 소재로 만든 가상의 영화였다.🥲

하지만 이런 잔혹한 범죄들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영화로 만들어서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것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특히 미국은 연쇄살인마에다 별명을 짓고 그들을 우상화하는데 정말 미친짓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참혹한 일들을 겪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리넷은 일가족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걸 지켜봤고 본인 또한 죽음의 문턱에서 두 번이나 살아 돌아왔다. 생존 강박을 가진 리넷은 현관문에 철창을 설치하고, 자신의 집이 밝혀지지 않도록 1시간도 안되는 거리를 지하철과 버스를 바꿔타며 3시간을 돌아 집에 온다. 그래서 리넷이 누군가가 파이널 걸을 노리고 있다 주장해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심리학자인 캐럴을 비롯해서 다른 파이널걸 모두가 리넷이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심지어 헤더는 리넷에게 파이널 걸도 아니고 그저 우연히 살아남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리넷은 처음엔 도망치기에 급급한,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끊임없이 "자매를 지켜줘야지"라고 되새기며 음모를 파헤치고, 눈 앞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여 모두를 구하고자 노력한다.

파이널 걸을 노리는 범인이 누구일지 리넷이 하나하나 추척해가는 과정도 재밌었지만, 가장 좋았던 건 소설의 메시지이다.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이라는 제목 답게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조한다. 리넷은 아무런 일면식이 없는 소녀인 스테퍼니를 그저 파이널 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키고자 노력한다. 같은 아픔을 겪었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름이란 계절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서늘한 반전까지 있다. 반전의 반전이랄까. 애초에 범인이 누구일지에 대해 리넷이 보고 들은 것 수준에서만 추리가 되어 짐작하기가 어려웠다.(나만 추측 못할 수 있음)

스릴러 소설 다운 재미와 강력한 메세지, 그리고 여성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범죄와 이를 가볍게 다루는 미디어에 대한 비판의식이 골고루 담긴 책이다. 소설적으로도 재밌지만 그저 킬링타임으로 끝나는 소설이 아니라 좋았다. 특히 챕터 사이마다 진짜처럼 쓰인 칼럼, 영화 소개, 경찰 보고서 등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남자들은 우리처럼 주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남자들은 자기들 실수로 죽는다. 그럼 여자는? 우리는 여자라서 죽는다.(p.43)

🔖나는 무기를 든 남자에게서 도망쳐야 했던 모든 소녀였다. 목숨을 구하려 안전하게 지내 마땅했던 장소들을 도망쳐야 했던 그 모든 소녀였다. 나는 다음 스튜디오로 재빨리 이동했다. 나는 기숙사에서 도망치던 줄리아였고, 고등학교 복도를 내달리던 헤더이자, 오후의 텍사스를 가로지르던 매릴린이자, 병원을 뛰어다니던 대니이자, 여자아이 하나가 언제고 뛰어다니며 소리를 내지를 이 캠핑장을 도망다니던 에이드리엔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내달리는 리넷이었다. (p.443)

⭐️출판사 문학동네(@munhakdongne )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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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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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모도(@knitting79books )서평단 자격으로 다산책방(@dasanbooks )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와 어린 동생 이다를 돌보아야만 하는 주인공 틸다. 그녀는 매일 수영장에서 스물 두번의 레인을 돌고, 수학문제를 풀고,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어느날 베를린에서 박사과정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틸다의 마음에 자그마한 틈이 생긴다. 이 작은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과 이다를 엄마와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불안.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빅토르의 존재는 그동안 틸다가 포기하고 체념했던 것들을 욕심내게 만든다.

 🏷틸다는 여타 다른 또래들처럼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버리거나, 마음이 가는대로 사랑에 빠질 수 없다. 틸다가 너무 어린 나이에 책임감을 느끼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 또래들이 모두 자신의 삶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날 때 이 곳에 남아있어야만 하는 틸다의 마음을 생각하면 슬프다. 그래서 틸다는 매일 수영장에 가서 스물 두번의 레인을 돈다. 물 속에 잠수하면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동떨어진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틸다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소설 속 세계와 수영장 물 속으로 떠나 잠시나마 자신을 되찾는다.

  그런데 베를린에서 온 박사 제안은, 틸다에게 처음으로 삶에 대한 욕심을 내게 만들었다. 틸다는 자신이 없는 미래에 이다가 엄마를 감당할 수 있도록 대비시키려고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엄마는 수도 없이 망가지고, 틸다가 베를린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은 더 많아진다.

  그리고 빅토르가 있다. 틸다가 무너질 때 그 순간을 함께 한 빅토르. 그의 가족들은 5년 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 중 한 명인 이반은 틸다의 소중한 친구였다. 빅토르가 어릴 때 살던 고층건물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볼 때, 틸다와 빅토르는 작별이 아니라 서로에게 향하는 도착으로 그 순간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틸다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다의 이야기, 그리고 두 자매의 느리지만 단단한 성장 소설 이야기이다. 가족은 반쪽일 수 있지만 자매로선 100%인. 이다는 틸다의 예상보다 더 강한 아이이다. 이제 이다는 식당에서 주문을 걸고, 수영강습을 받고, 엄마를 챙겨 식사와 집안일도 야무지게 해낼 수 있다. (여담이지만 틸다가 써온 분홍색 선글라스를 끼고 틸다의 제안에 제안 수락함, 제안 거절함으로 대답하는 이다가 너무 귀엽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걸 보는 느낌🥹)

  평범하개 흘러가는 쳇바퀴 같은 일상은, 소도시의 자연풍경과 어우러져 이따금씩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틸다가 빅토르를 뒤에 두고 시골길을 걸을 때 느껴지는 밤의 정취, 해가 쨍한 여름날 수영튜브에 늘어져 하늘을 보는 것들이 그렇다. 그리고 틸다가 감내해야만 했던 감정들이나 마찬가지로 조숙하게 큰 이다가 속으로 삼켰던 감정들은 세차게 내리는 비와 폭풍우로 더욱 더 극대화된다. 또 빅토르와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을 나비에서 살찐 잠자리로 표현하는 것도 좋다!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이 모든 것과 어우러져 더 묵직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처음엔 결말이 여기서 끝난다고? 싶었는데, 여운을 곱씹다 보니 지금은 이 결말도 마음에 든다. 왜냐면 이다는 앞으로도 잘 해낼거고, 틸다가 자신의 꿈을 찾아 가리란 걸 아니까. 엄마는 나아질 가능성이 없지만 두 자매가 이젠 희망이란 감정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걸 생각하니 결말도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작별에 익숙한 내가 느끼기에 이것은 진짜 마지막
이다. 나는 작별하기의 진정한 전문가다. 자녀들이 넓은 세상으로 나가 그곳에서 성장하는 동안 고향에 남은 엄마, 할머니가 되었는데 손주들이 어느 도시에 사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여인처럼.(p.104)

🔖대학 도서관 유리창 너머로 잔디밭에 눕거나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볼 때면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들의 감정을 나도 아주 잠깐이라도 느껴보고 싶다. 어쨌든 우리사이에 놓인 것이 유리창만은 아니다.(p.137)

🔖안전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책은 남는다는 것, 아무도 이 이야기를, 다시 말해서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이 세계를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키고 상처 입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빌어먹을 일들이 아무리 많이 닥쳐와도 얼마간의 이 행복은 아무도 빼앗아 갈수 없다는 사실은 알았다.(p.149)

🔖나는 슬프면서도 행복해서, 행복보다 슬픔이 더 큰지 아니면 슬픔보다 행복이 더 큰지 모른다. 두 가지 감정이 아름답고, 고통스럽고, 도수가 높은 각테일처럼 뒤섞여 내 몸 전체를 꽉 채워서 분간할 수 없다.(p.167)

🔖모든 것이 지금처럼 조용하고 온 세상이 잠든 듯한 오늘 같은 밤을 위해 살아야 할 텐데. 모두가 입을 다문 밤, 귀뚤귀뚤 소리를 내는 귀뚜라미밖에 없는 밤, 그리고 공기 중에 아주 많은 약속이 떠 있는 밤.(p.187)

🔖나는 잠자리를 세어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지만 불가능하다. 너무 많다. 이렇게 충격적이면서도 놀랍도록 아름다운 느낌은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다.(p.257)

🔖나: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고 내가 말했잖아.
이다: 그건 살인 피해자가 범행 현장에서 "이건 범죄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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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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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도서협찬

🏷이게 말로만 듣던 프리더 맥파든의 매력일까. 바쁜 현생에 지쳐 자기전에 한 시간만 읽어보려던 것이 마지막 장까지 기어코 다 보게 만들었다. 서로 다른 진술들이 엇갈리며 이어져 도저히 중간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마지막 한 장 까지도 반전이 있다..! 책 리뷰를 절대 찾아보지 말고 읽을 것을 추천한다🤭

📙영양제 보충 회사 "빅스드"의 최고 영업사원인 내털리. 미인에 성격 좋고 똑똑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환심을 산다. 그에 비해 회사의 회계 담당자인 "돈"은 거북이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걸 어려워 한다. 그녀는 한 가지 색으로만 밥을 먹어야 하고, 출근시간은 물론 화장실 가는 시간마저 정해져 있다. 어느날 내털리는 돈이 출근하지 않는 걸 보고 이상하게 여겨 돈의 집을 찾아갔다가 다량의 피를 발견하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부는 내털리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과 돈이 친한 친구 미아에게 보낸 메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개의 글은 매우 상반된 것이어서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털리는 모든 사람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돈에게 자신이 친절했다고 생각하지만 순식간에 살인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왜냐면 돈이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내털리의 괴롭힘이 구구절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지 너무 궁금해서 조금만 봐야지 봐야지 하다보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대개 페이지 터너, 킬링타임으로 유명한 소설을 읽고 나면 결말이 좀 허무할 때가 많다. 빠른 전개와 반전으로 끝까지 달리고 나면 마지막에 좀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가. 하지만 <더코워커>는 절대 그렇지 않다.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반전이 있다.

  나는 적어도 내털리와 돈 중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는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마지막 트릭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놀랍다. 아마 트릭을 다 파악했다, 어떻게 전개될지 다 안다라고 자부하는 사람도 이건 예상 못했을 것이다.

  또 자극적이고 도파민 터지는 소재들이 듬뿍 담겨 있다. 사내모함, 괴롭힘, 불륜, 그리고 거짓말들.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쉽게 진실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더 이상은 스포가 될까봐 여기까지만 적어야겠다. 가볍지만 존잼인 책을 읽고 싶다면 추천! 네버라이랑 하우스 메이드도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출판사 해피북스투유(@happybooks2u )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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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님 바통 7
이종산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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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같은 제목과 추억의 윈도우를 연상케 하는 힙한 표지. 인스타에 올린 적은 없지만 카카오페이지의 열렬한 독자인 나로선 드디어 문학판 빙의물을 보는 것인가, 이게 은행나무에서 출판이 되다니 무슨일인가 하는 그런 생각들을 했더랬다. 정말 사전적의미로 쓰인 "빙의"부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몸체에 영혼이 "빙의"하는 것, 몸은 하나지만 여러 개의 정체성으로 "빙의"하는 것까지. 7인의 작가들이 다양하게 해석한 빙의물들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론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과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이 제일 좋았다. 현호정 작가님의 단편은 얼마전 읽었던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것인데 또 읽어도 역시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조시현
어느 날 AI 안젤리카에 의해 모든 인간들이 컴퓨터에 다운로드 당한다. 몸이 없어진 인간들은 단 열대뿐인 휴먼슈트에 영혼이 주입될 때만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화자인 나진은 공용슈트에 주입되는 날엔 옛 집을 찾아가 슈크림빵을 굽고 연인 '마디'를 위해 편지를 남긴다.

이 휴먼슈트에 영혼이 쫘악 주입되는 순간은 '슈크림' 같기도 하고, 누런 콧물 같기도 하다고 표현된다. 이 독특한 세계관에 더해, 인간됨과 영혼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이야말로 이 단편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영혼은 슈크림이기도 하고, 그건 마디에 대한 나진의 사랑이기도 하다. '나'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마디이고,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마디에 대한 생각과 추억이다. 내가 생각으로만 존재한다면 그건 나라고 할 수 있을지, 나는 이 무의미한 생각이 흐르는 시간들을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언젠가 수억분의 일의 확률을 거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리라는 소망으로 버티는 거겠지. 다시 생각해도 감동😭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몸. 실리콘의, 균질한. 차이도 차별도 없는 몸.
그러나 마디, 내 인간됨의 증거.(p.93)


📖<두 사람>, 이종산
오랜만에 만나게 된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지원은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라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예은은 그런 지원이 부럽고, 내심 비빌 언덕이 있으니 방구석에 처박혀 속편한 소리나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가 되고 싶은 부러움을 전통적인 귀신"빙의"로 해석한 편이다.
제일 난해했지만.. 확실한 건 절대 밤에 보지 마세요😇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현호정
난해한데 정말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렇게 태어난 2세들, 자성체와 기생체의 얘기이다. 이야기는 종국에는 지구의 탄생까지 흘러간다. 이게 말이 되냐고? 솔직히 모르겠다. 근데 그냥 지구에 빙의했다는 부랑자 얘기를 듣고 있으면, 기생쌍둥이 얘기가 징그러우면서도 바닷물 풍경이 상상되고 흥미롭다. 그리고 이는 카페에서 얘기를 듣고 있는 K로 이어져 현실에도 위로를 준다. 내가 가끔 여기 있는 게 맞나 싶을 때, 이번 판은 연습이라고 가장한다는 것. 그럼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한번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느 날 여신님의 다리 위에 우리가>, 한정현
인권운동을 한 것이 '흠'으로 치부되어 일본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던 언니 미정과 바람 피우는 것도 모자라 폭력까지 행사했던 미정의 남편 얘기가 스치듯 나온다. 언니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이선은 6년 뒤 미정을 추모하러 가는 길에 자살 유가족 모임에서 만난 유스케로부터 일본 하시히메에 대한 전설을 듣는다. 시간은 비가역적이지만, 세상은 가역적일 수 있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덮어쓰기>, 박문영
"빙의"의 개념을 타자에서 나로 "덮어쓰기"한 것에 주목한 단편이다. 몰래카메라의 피해자들 모습을 영상을 보는 관찰자로 바꾸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마지막 결말처럼 원래 그런 영상을 안 보던 사람이면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갈 것이다. 그런 사람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쓴 단편이 아닐까 싶다.

📖<니가 왜 미쳤는지 내가 왜 알아야 돼>, 박서련
장르소설로서 "빙의"의 개념을 착실히 다룬 단편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은 아직 1/3도 읽지 못한 추리소설에 빙의한다. 빙의소설의 주인공들은 미래를 다 알고 승승장구하는 데 반해, 여기 주인공은 소설도 다 읽지 못해서 누가 범인인지도 모른다. 정말 착실하게 빙의 모티브를 썼지만, 일반 클리셰를 빗나간 점이 매력포인트다.

📖<이 시점에 문필로 일억을 벌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정수읠
연구생도, 등단도 실패한 주인공이 웹소설 작가로 정체성을 갈아끼우는 이야기이다. 빙의는 내가 아닌 다른 타자로 변모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실패한 작가의 필명을 버리고 성공할때 까지 계속 다른 필명에 빙의하지만 결말에 이르는 데 실패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았다.

⭐️출판사 은행나무(@ehbook_)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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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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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도서협찬

📙채식주의가 대세가 된 시대. 동네에선 정육점을 찾아보기 힘들고, 마트 내 정육 코너는 채식주의자 눈에 띄지 않도록 분리된다. 우리의 주인공은 육식을 너무 사랑하지만, 회식날 어쩌다 고기요리를 시켜 온갖 눈총을 받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로 주인공은 모든 인생의 낙을 잃고, 남성으로서의 정체성도 잃고,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닌 채 좀비처럼 생을 이어가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베르트 육수맛내기 라는 수상한 사람이 접근한다. 베르트는 채식주의자의 음모에 대해서 궤변을 늘어놓는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130여쪽의 굉장히 짧은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웃기고 강렬하다. 제목을 어찌나 잘 지었는지, 소설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소시지"와 "광기"이다. 유명 채식주의자 블로거인 "톰 두부"의 글을 보며 채식으로 연명하는 주인공의 삶도 그렇고, 베르트를 위시한 육식주의자들 또한 광기로 절여져 있다. 채식주의자들을 육식주의자로 바꾸고 육식이 대세인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것 부터 다들 좀 은은하게 돌아있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고기가 없는 세상이라니..!(나는 과연 삼겹살을 못 먹는 세상에 살 수 있을까?😇) 정말이지 주인공이 채식을 선언한 다음부터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샤퀴테리 플래터가 나오는 꿈을 꾸고,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햄버그, 스테이크 등 고기 이름을 읊조린다. 또 채식만 하다 보니 기력이 사라져서 성욕도 없어지고, 심지어는 거세까지 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을 때 육수맛내기가 등장한다.

톰 두부가 극단적인 채식을 지향하듯이, 육수맛내기 또한 극단적인 논리로 채식을 반대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 만연해 있는 채식주의는 제약산업, 콩과 두부산업에서 만든 음모이다. 또한 육식이 환경에 해롭다 하는데, 수억명의 채식주의자들이 방귀를 뀌면 그거야말로 환경에 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진짜 말도 안되는 헛소리 같은데 주인공은 다시 육식을 시작할 명분을 얻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채식주의자를 육식주의자로 돌리는 비밀스런 캠페인을 벌이다가 결국 그 이면에 숨겨진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게 된디.

마지막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 책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 모두 극단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그래서 책을 읽은 내내 양쪽 진영의 논리에 숨이 막히다가, 마지막 전개에 이르러 주인공이 폭발하자 다 끝났구나 란 생각이 든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채식주의자이면서, 독일 내 유행처럼 번져가는 채식주의에 불편함을 느껴 이 소설을 쓴 것이라 한다.

물론 공장형 축산, 동물 학대 등 육식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유행처럼 번져가는 채식주의는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선민의식과 함께 점점 강요된 의식이 되고 있다. 극단적인 채식주의는 현실에서 고기를 줄이고, 채식을 조금 더 해볼까 하는 움직임마저 움츠러들게 만든다. 역자의 말마따나 뭐든 "이데올로기화" 된 것은 좋지 않다. 채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육식이든 채식이든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유행을 따르는 것은 좋지 않음을 시사한다.

🏷엄청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소설. 근데 진짜진짜 웃기다. 그나저나 나라도 톰 두부 가만히 안뒀을 듯...인생 그렇게 살지 마요 두부씨😇..!


🔖고기를 사고 싶다면,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할복할 것이냐 아니면 실제로 할복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는 거였죠. 그렇게 멀리 와 있더란 말입니다.(p.17)

🔖직장에서 모여 놀자고 마련한 자리라면 저는 아주 질색이었죠. 논다는 건 스위치를 끄고 일상의 걱정과 문제를 잊는거 아닙니까. 왜 하필이면 근심 걱정을 내 일상의 최전선으로 불러오는 장본인인 직장동료들과 놀아야 한답니까? 그건 휴가지를 사무실로 예약하는 거나 다를 바 없어요.(p.18)

🔖한 접시 가득한 채소는 주례 앞에 신랑 혼자 달랑 서 있는 결혼식 같은 그런 모자라는 음식이란 말입니다.(p.41)

🔖제 조상은 저더러 지금 긴팔원숭이처럼 먹으라고 나무에서 기어내려와 지상을 평정한 게 아닙니다!(p.42)

⭐️출판사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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