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평점 :
📚<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도서협찬
📙채식주의가 대세가 된 시대. 동네에선 정육점을 찾아보기 힘들고, 마트 내 정육 코너는 채식주의자 눈에 띄지 않도록 분리된다. 우리의 주인공은 육식을 너무 사랑하지만, 회식날 어쩌다 고기요리를 시켜 온갖 눈총을 받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로 주인공은 모든 인생의 낙을 잃고, 남성으로서의 정체성도 잃고,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닌 채 좀비처럼 생을 이어가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베르트 육수맛내기 라는 수상한 사람이 접근한다. 베르트는 채식주의자의 음모에 대해서 궤변을 늘어놓는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130여쪽의 굉장히 짧은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웃기고 강렬하다. 제목을 어찌나 잘 지었는지, 소설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소시지"와 "광기"이다. 유명 채식주의자 블로거인 "톰 두부"의 글을 보며 채식으로 연명하는 주인공의 삶도 그렇고, 베르트를 위시한 육식주의자들 또한 광기로 절여져 있다. 채식주의자들을 육식주의자로 바꾸고 육식이 대세인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것 부터 다들 좀 은은하게 돌아있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고기가 없는 세상이라니..!(나는 과연 삼겹살을 못 먹는 세상에 살 수 있을까?😇) 정말이지 주인공이 채식을 선언한 다음부터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샤퀴테리 플래터가 나오는 꿈을 꾸고,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햄버그, 스테이크 등 고기 이름을 읊조린다. 또 채식만 하다 보니 기력이 사라져서 성욕도 없어지고, 심지어는 거세까지 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을 때 육수맛내기가 등장한다.
톰 두부가 극단적인 채식을 지향하듯이, 육수맛내기 또한 극단적인 논리로 채식을 반대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 만연해 있는 채식주의는 제약산업, 콩과 두부산업에서 만든 음모이다. 또한 육식이 환경에 해롭다 하는데, 수억명의 채식주의자들이 방귀를 뀌면 그거야말로 환경에 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진짜 말도 안되는 헛소리 같은데 주인공은 다시 육식을 시작할 명분을 얻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채식주의자를 육식주의자로 돌리는 비밀스런 캠페인을 벌이다가 결국 그 이면에 숨겨진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게 된디.
마지막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 책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 모두 극단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그래서 책을 읽은 내내 양쪽 진영의 논리에 숨이 막히다가, 마지막 전개에 이르러 주인공이 폭발하자 다 끝났구나 란 생각이 든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채식주의자이면서, 독일 내 유행처럼 번져가는 채식주의에 불편함을 느껴 이 소설을 쓴 것이라 한다.
물론 공장형 축산, 동물 학대 등 육식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유행처럼 번져가는 채식주의는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선민의식과 함께 점점 강요된 의식이 되고 있다. 극단적인 채식주의는 현실에서 고기를 줄이고, 채식을 조금 더 해볼까 하는 움직임마저 움츠러들게 만든다. 역자의 말마따나 뭐든 "이데올로기화" 된 것은 좋지 않다. 채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육식이든 채식이든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유행을 따르는 것은 좋지 않음을 시사한다.
🏷엄청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소설. 근데 진짜진짜 웃기다. 그나저나 나라도 톰 두부 가만히 안뒀을 듯...인생 그렇게 살지 마요 두부씨😇..!
🔖고기를 사고 싶다면,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할복할 것이냐 아니면 실제로 할복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는 거였죠. 그렇게 멀리 와 있더란 말입니다.(p.17)
🔖직장에서 모여 놀자고 마련한 자리라면 저는 아주 질색이었죠. 논다는 건 스위치를 끄고 일상의 걱정과 문제를 잊는거 아닙니까. 왜 하필이면 근심 걱정을 내 일상의 최전선으로 불러오는 장본인인 직장동료들과 놀아야 한답니까? 그건 휴가지를 사무실로 예약하는 거나 다를 바 없어요.(p.18)
🔖한 접시 가득한 채소는 주례 앞에 신랑 혼자 달랑 서 있는 결혼식 같은 그런 모자라는 음식이란 말입니다.(p.41)
🔖제 조상은 저더러 지금 긴팔원숭이처럼 먹으라고 나무에서 기어내려와 지상을 평정한 게 아닙니다!(p.42)
⭐️출판사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