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님 바통 7
이종산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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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같은 제목과 추억의 윈도우를 연상케 하는 힙한 표지. 인스타에 올린 적은 없지만 카카오페이지의 열렬한 독자인 나로선 드디어 문학판 빙의물을 보는 것인가, 이게 은행나무에서 출판이 되다니 무슨일인가 하는 그런 생각들을 했더랬다. 정말 사전적의미로 쓰인 "빙의"부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몸체에 영혼이 "빙의"하는 것, 몸은 하나지만 여러 개의 정체성으로 "빙의"하는 것까지. 7인의 작가들이 다양하게 해석한 빙의물들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론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과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이 제일 좋았다. 현호정 작가님의 단편은 얼마전 읽었던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것인데 또 읽어도 역시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조시현
어느 날 AI 안젤리카에 의해 모든 인간들이 컴퓨터에 다운로드 당한다. 몸이 없어진 인간들은 단 열대뿐인 휴먼슈트에 영혼이 주입될 때만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화자인 나진은 공용슈트에 주입되는 날엔 옛 집을 찾아가 슈크림빵을 굽고 연인 '마디'를 위해 편지를 남긴다.

이 휴먼슈트에 영혼이 쫘악 주입되는 순간은 '슈크림' 같기도 하고, 누런 콧물 같기도 하다고 표현된다. 이 독특한 세계관에 더해, 인간됨과 영혼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이야말로 이 단편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영혼은 슈크림이기도 하고, 그건 마디에 대한 나진의 사랑이기도 하다. '나'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마디이고,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마디에 대한 생각과 추억이다. 내가 생각으로만 존재한다면 그건 나라고 할 수 있을지, 나는 이 무의미한 생각이 흐르는 시간들을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언젠가 수억분의 일의 확률을 거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리라는 소망으로 버티는 거겠지. 다시 생각해도 감동😭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몸. 실리콘의, 균질한. 차이도 차별도 없는 몸.
그러나 마디, 내 인간됨의 증거.(p.93)


📖<두 사람>, 이종산
오랜만에 만나게 된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지원은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라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예은은 그런 지원이 부럽고, 내심 비빌 언덕이 있으니 방구석에 처박혀 속편한 소리나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가 되고 싶은 부러움을 전통적인 귀신"빙의"로 해석한 편이다.
제일 난해했지만.. 확실한 건 절대 밤에 보지 마세요😇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현호정
난해한데 정말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렇게 태어난 2세들, 자성체와 기생체의 얘기이다. 이야기는 종국에는 지구의 탄생까지 흘러간다. 이게 말이 되냐고? 솔직히 모르겠다. 근데 그냥 지구에 빙의했다는 부랑자 얘기를 듣고 있으면, 기생쌍둥이 얘기가 징그러우면서도 바닷물 풍경이 상상되고 흥미롭다. 그리고 이는 카페에서 얘기를 듣고 있는 K로 이어져 현실에도 위로를 준다. 내가 가끔 여기 있는 게 맞나 싶을 때, 이번 판은 연습이라고 가장한다는 것. 그럼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한번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느 날 여신님의 다리 위에 우리가>, 한정현
인권운동을 한 것이 '흠'으로 치부되어 일본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던 언니 미정과 바람 피우는 것도 모자라 폭력까지 행사했던 미정의 남편 얘기가 스치듯 나온다. 언니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이선은 6년 뒤 미정을 추모하러 가는 길에 자살 유가족 모임에서 만난 유스케로부터 일본 하시히메에 대한 전설을 듣는다. 시간은 비가역적이지만, 세상은 가역적일 수 있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덮어쓰기>, 박문영
"빙의"의 개념을 타자에서 나로 "덮어쓰기"한 것에 주목한 단편이다. 몰래카메라의 피해자들 모습을 영상을 보는 관찰자로 바꾸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마지막 결말처럼 원래 그런 영상을 안 보던 사람이면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갈 것이다. 그런 사람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쓴 단편이 아닐까 싶다.

📖<니가 왜 미쳤는지 내가 왜 알아야 돼>, 박서련
장르소설로서 "빙의"의 개념을 착실히 다룬 단편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은 아직 1/3도 읽지 못한 추리소설에 빙의한다. 빙의소설의 주인공들은 미래를 다 알고 승승장구하는 데 반해, 여기 주인공은 소설도 다 읽지 못해서 누가 범인인지도 모른다. 정말 착실하게 빙의 모티브를 썼지만, 일반 클리셰를 빗나간 점이 매력포인트다.

📖<이 시점에 문필로 일억을 벌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정수읠
연구생도, 등단도 실패한 주인공이 웹소설 작가로 정체성을 갈아끼우는 이야기이다. 빙의는 내가 아닌 다른 타자로 변모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실패한 작가의 필명을 버리고 성공할때 까지 계속 다른 필명에 빙의하지만 결말에 이르는 데 실패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았다.

⭐️출판사 은행나무(@ehbook_)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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