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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자서전
마리-헐린 버티노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7월
평점 :
📚<외계인 자서전>, 마리-헐린 버티노 #도서제공
🏷유머러스하지만 슬프고, 외롭지만 다정한 소설이다. 외계인 아디나가 인간으로 태어나 별처럼 스러질 때까지를 다룬 이야기로,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 삶의 의미, 부모와 친구, 그리고 사랑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타워즈>가 탄생한 해, '귀뚜라미 쌀' 행성 출신의 외계인 아디나 조르노가 지구에서 태어난다. 아디나의 임무는 인간의 모습을 고향별의 상관들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그녀는 엄마가 주운 팩스기계로 보고서를 보낸다.
어린 아디나가 보내는 보고서는 처음엔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비추어낸다. 가령 기회는 파이와 같아서, 인간은 한정된 조각만 가질 수 있다는 것. 불평불만이 많은 인간은 원하는 걸 전부 얻지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외면하고 불편해하는 진실들이 아디나의 보고서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편 소설을 읽다보면 아디나의 외로움이 점점 나에게도 스며드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이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 못한 외로운 존재라고 느낀다. 아디나가 느끼는 외로움은 단순히 친구나 연인이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내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데서 오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다. 나는 이 순간만큼은 아디나가 정말 인간 같다고 느꼈다. 아디나는 점점 보고서에서 인간을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 칭하기 시작한다.
외계인으로서 인간들을 관찰했던 아디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한 인간을 닮아간다. 후반부에 그려지는 가슴 아픈 이별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다. 아디나 또한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이 슬프다. 처음엔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봤지만, 아디나는 점차 그 영화 속 배우가 되어간다. 나는 아디나의 눈물에 같이 슬퍼하고, 그녀의 아픔에 공감했다. 누군가의 평처럼 외로움을 이렇게 따스하게 그려낼 수 있는 소설은 없을 것이다.
아디나의 유머가 느껴지는 묘사도 좋았고, 외로움을 드러낸 문장들은 내 마음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발췌하고 싶은 문장들도 너무 너무 많았지만 몇 개만 적어본다.(그러나 이것도 너무 많은....) 기발한 형식과 다정한 소설을 보고 싶다면 아디나와 함께하세요!
🔖저에게는 발음 교정 수업과 시력 교정 렌즈가 필요해요. 그리고 아마 치아 교정기도 필요할 거예요. 나는 비싼 외계인이에요.
답변: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평범한 게 뭔가요?
그건 네가 알려줘야지.(p.56)
🔖처음으로 그녀는 지구상의 누구도 심지어는 그 너머의 존재들조차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p.160)
🔖아디나는 이렇게 누군가의 현관이 열리는 듯한 순간들이 주는 비밀스러움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어른들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며 스스로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유일한 순간들-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 순간들은 마치 그들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아 묘한 위안이 되었다. 괜찮아, 아디나. 우리는 살아 있고, 너와 함께 여기에서 이 세상을 걷고 있어.(p.214)
🔖은총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다정함이예요. 정당한 이유 없이 주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비참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비참한 존재는 인간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죠. 또한 인간은 결함 있는 존재리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해요.(p.332)
🔖누군가가 죽을 때, 그 사람이 에그롤을 먹는 방식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p.378)
🔖인간의 삶은 빠르게 흘러요. 하지만 인생은 짧지 않아요. 우리가 어떤 중요한 날들을 마치 어제 일처럼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그렇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아직 젊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터무니없이 빠르게 늙어가요. 우리는 모두 어른 역할을 맡기 위해 고용된 일곱 살짜리 배우들이에요.(p.393)
🔖인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결함을 의미하죠. 만약 내 임무가 인간이 되는 것, 그러니까 실패하는 것였다면, 난 성공한 것 같아요.(p.437)
🔖언어는 경험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요. 내가 가장 깊이 사랑했던 것들과 가장 깊이 슬퍼했던 것들은 말로은 표현되지 않았고 결코 팩스로 보낼 수도 없었어요.(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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