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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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도서제공

알제리의 ‘검은 10년’, 국가에서 법으로 언급을 금지한 내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소설이다. 카멜 다우드는 잊혀지고 외면당한 역사적 아픔을 문학의 이름으로 재건한다.

알제리의 검은 내전은 이슬람 무장단체와 군부 쿠데타 세력의 대립으로 시작되었고, 무수히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2005년 화해법이 제정되면서, 이슬람 무장 세력들은 ‘요리사’로 둔갑되어 사면을 받고 내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책 속에서 이 내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성대를 잃어 말할 수 없는 주인공 ‘오브’이다. 오브는 바깥언어가 아닌 내면의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전쟁의 폭력과 상처, 곳곳에 산재한 흔적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는 하드 셰칼라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로 가족을 잃고, 목이 그어진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다. 이로 인해 오브는 얼굴 밑에 커다란 ‘미소’와 튜브를 지닌채 살아가게 된다.

소설은 오브가 뱃속에 품은 아이 ‘후리’에게 세상에 태어나선 안되는 이유를 말하며 시작된다. ‘후리’는 이슬람에서 천국에 간 남성들에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처녀들을 뜻한다. 오브에 따르면 후리가 천국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들은 무수히 많다. 이 세계는 여자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있어서는 안되고, 목소리를 내서도 안되며, 팔을 드러내서도 안된다.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죄악시 되는 곳이자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이 곳에, 과연 생명을 낳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오브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하드 셰칼라 마을을 향해 나선다. 도중에 말을 절대 멈추지 않는, 알제리 내전의 목격자 아이사를 만나고, 억울하게 납치당하고 강간당했으나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함라의 이야기를 듣는다. 함라를 끌고간 진짜 테러리스트들은 ’요리사‘로 변장하여 모든 죄를 사면받았는데, 왜 여성들만이 고통받아야 하는지. 이 처참한 현실에 화가 난다. 가해자들은 받아주면서 왜 피해자들은 끌어안아주지 못하는 걸까.

알제리의 독립전쟁은 기념비가 세워지고 역사적 승리로 전해지지만, 알제리 내전은 사람들에게 ‘망각’을 강요한다. 오브는 내전의 살아 있는 증거이므로, 이는 오브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과 같다. 오브가 1999년 12월 31일의 학살을 기억하고 있어도, 그 전쟁의 존재를 알려주는 증거는 오브의 몸을 제외하곤 세상 어디에도 없다.

종교와 신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학살이 행해졌을까. 하드 셰칼라에서 벌어진 학살은 너무 끔찍하고 마음이 아파 다시 읽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신이 다섯살과 아홉살 난 아이를 잔혹하게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인지. 수염을 단 남자들은 온갖 이름을 빌려와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 행위를 정당화한다. 왜 항상 피해자는 여성과 연약한 아이들일 수 밖에 없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슬펐다.

피해자임에도 가해자가 된듯한 죄책감에 시달렸던 오브는 이 순례여행의 마지막에 가서야 언니의 사랑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죽은 척을 하라고 속삭였던 언니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그제서야 오브는 ‘진짜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나는 후리를 낳기로 한 오브의 마지막 결정이, 이 세상이 나아질거란 희망을 내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브는 그저 살아내기로 결심한 것 뿐이다.

이 책으로 인해 카멜 다우드에겐 국제 체포 영장이 내려졌다고 한다. 저 머나먼 공간과 시간의 사건을 데려와, 그 아픔에 같이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보여준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종교와 국가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학살과 강요당한 침묵, 그리고 여성에 대한 얼토당토 않는 폭력들까지. 한 번은 꼭 읽어보아야 하는 책이다.

+23년 공쿠르 수상작인 <그녀를 지키다>도 정말 좋았었는데.. 앞으로 공쿠르 수상작은 무조건 읽어보리라 다짐😎

🔖”넌, 넌 한 권의 책이야." "진짜 책.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 무지한 자들만 모르는 알 파벳이야.“ (p.20)

🔖밖에선 난 벙어리야. 말하려면 몇 마디밖에 쓰지 않아. 하지만 이곳, 내 머리속에선, 너와 나 사이에선, 내 기억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단어들이 줄줄이 나와. 바깥 세상을 마주할 때 내 안의 언어는 정교함의 경이, 그 자체야. 그 안에서 저 옛날이야기가 꿈틀거리며 되살아나. 그 경이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거의 모든 것이 태양 없이도 빛날 거야. 단 네가 있는 곳은 제외하고. 맞아! 이 안의 언어는 내가 사랑을 할 때 빛나. 분노 속에, 웃음 속에 있을 때도. 특히 불면에 시달릴 때면 여름날 홍수처럼 이 언어는 부풀어 오르지.(p.20~21)

🔖 전쟁을 통틀어 살아남은 사 람이 단 한 사람이라면, 그 전쟁은 그 사람의 상상 속 일 이 된다. 그 상상이 전쟁이 벌어진 곳, 유일한 장소가 되는 거다.(p.141)

🔖나 역시 내 전쟁에 대한 목소리를 원한다는 것을. 십 년 동안의 살육 끝에도 우린 그 어떤 전리품도 얻을 수 없 었어.시신조차, 한마디 말조차.(p.145)

🔖예언자의 말씀대로 미소 하나로 우주를 환히 밝힐 수 있는 나의 아름다운 아이야. 내 안에는 오로지 너뿐이었다, 목적을 상기 시켜 주는 존재는. 그 목적은 내 입안에 있었다, 오래되어 씹어도 아무 맛도 안 나는 질문처럼. (p.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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