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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말뚝들>, 김홍 #도서제공
🏷바다에 갑자기 생겨난 말뚝들이 도시로,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온다. 과연 이 말뚝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 책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 들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나는 책을 넘기며 계속 "이게 뭐지? 이...게 뭐야?"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 장은 몸값도, 협박도 없는 황당한 납치를 당하고, 도시에 말뚝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장은 갑자기 말뚝과 함께 정부와 대기업의 주요인물로 우뚝 선다. 초반엔 적재적소에 쓰인 가벼운 유머와 으레 회사원들이라면 겪는 아니꼬운 경험들이 책장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도록 해주었으나 이내 말뚝에 담긴 비밀과 눈물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가는 이 여정이 책을 다 덮은 뒤에도 여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말뚝들>의 주인공 장은 본부장에게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찍혀서 대출심사 담당임에도 불구하고 허구헌날 외근을 나가야 하는 처지이다. 그의 처지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로 목숨을 잃은 말뚝들과 다르지 않다. 말뚝들은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시랍화'된 것이다. 장이 주요인물이 된 까닭은, 1호 말뚝의 입에서 그의 명함이 나왔고 그 말뚝이 갑자기 사라져 장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뚝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은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실들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장을 협박하고 자진해서 계엄사령부에서 일한 진희 선배는 계엄이 종료된 뒤에도 회사 파벌을 잘 파고들어 실세가 된다. 계엄 전 미국으로 도망간 본부장도 마찬가지로 돌아와 중요한 요직을 꿰찬다. 장이 말뚝의 이름을 찾고 그 한을 풀어주었다 해도, 여전히 부조리는 존재한다. 이 가벼움과 무거움을 넘나드는 소설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날카롭다. 이런걸 두고 해학이라고 하던가? 불과 반년 전에 일어난 계엄이라는 소재를 시의적절하게 활용하고, 회사 내 정치질, 불합리한 사회현실, 현대에도 존재하는 계급 등 사회문제를 풍자한다.
처음엔 장이나 차대리가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 가볍다 생각했는데, 소설을 다 읽고보니 정말 치밀한 구성이 아닌가 싶다. 납치사건은 뜬금없어 보이지만, 아마 이 불운한 사건이 없었더라면 장은 구태여 말뚝의 한을 풀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구석구석에 이런 장치들이 숨겨져 있어 개연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또 운전수 없이 운전하는 말리부 차량이라던가 말뚝에서 터져나오는 하얀 빛들이 이 소설 장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뜬금 없고 비현실적인데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나도 이 사회에선 개미 같은 존재고, '장' 말마따나 노비에 가깝지만🥲 눈앞에 펼쳐진 부조리들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에 있어 면죄부가 될 수 없단 걸 잘 안다. 어쩌면 장이 납치 당하고 나서 계속해서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 라고 되뇌이는 건 '나' 역시 '말뚝들'과 다름 없음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그런 일이 너에겐 일어나선 안되냐고, 그냥 사고일 뿐이라고 데보라가 말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 나에게 닥친 불행도, 뜻밖의 행운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삶에는 원래 엄청난 일이 계속 되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부터 봐요. 불행을 특별 대우해주면 불행이 잘난 척을 해요."(p.185)
🔖얼마나 간절해야 전과 다른 사람이 될까? 죽음으로 협박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변할 수 있을까?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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