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금까지 일관성을 위해, 자기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한동안 싸워야 했지만 더이상은 싸울 수가 없었다. 그는 신문을 손에 쥔 채 이 사실을 깨달았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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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이 그녀가 품고 있는 상실을 알아보고 그것을 소리 내서 말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누구도 실비가 안고 있는 고통의 소용돌이를 알아본 적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자 오랫동안 숨을 참은 끝에 공기를 크게 몇 모금 들이마신 것 같았다. - P269

휘트먼은 [나 자신의 노래]에서 풀잎을 다양하게 정의하지만 실비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덤의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카락이었다. 실비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이 구절을 생각했다. 시인에 따르면 죽음은 삶과 얽혀 있으므로 끝이 아니다. 실비와 자매들이 이 땅을 걸어다니는 것은 그들이 땅에 묻은 남자 때문이다. 실비는 이런 생각을 하고 휘트먼의 시를 읽는 것이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성과 나누는 예의바른 잡담보다, 늘 지갑에 돈이 별로 없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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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목적을 가진다고, 애써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실패한다 해도 의미만은 남을 거라고 믿게 하는 침착한 힘이 그녀의 말씨와 몸짓에 배어 있었다. - P44

좀전에 병원 로비에서 이미 깨닫지 않았던가.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럽다는걸? - P49

결국 집을 나온 건 살고 싶어서였어. 그러지 않으면 그 불덩이가 나를 죽일 것 같아서. - P77

누군가를 오래 만나다보면 어떤 순간에 말을 아껴야 하는지 어렴풋이 배우게 된다. - P75

외할머니는 부모님하고 다르셨거든. 서로 복잡한 마음이란 게 조금도 없고...... 끝없이 주기만 하시고. - P75

그후로 엄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이야기는커녕 내색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 P87

인내와 체념, 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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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왜 몸이 떨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마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과 같은 떨림이었지만, 눈물 같은 건 흐르지도, 고이지도 않았다. 그걸 공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불안이라고, 전율이라고, 돌연한 고통이라고? 아니, 그건 이가 부딪히도록 차가운 각성 같은거였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칼이-사람의 힘으로 들어올릴 수도 없을 무거운 쇳날이 허공에 떠서 내 몸을 겨누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마주 올려다보며 누워 있는 것 같았다. - P12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들로 이뤄진 그곳이 앞으로 남겨질 내 삶을 당겨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바로 지금을. - P12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경비실을 지나 아파트 광장을 가로질러 걸으며 나는 무언가를 목격하고 있다고 느꼈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그날의 날씨를. 공기 중의 습도와 중력의 감각을. - P14

지나치게 뜨거운 그걸 천천히 먹는 동안, 유리문 밖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가 깨어질 듯 연약해 보였다.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 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 P15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 P15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 P17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 해도 더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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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는 아기가 가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새로운 존재는 작디작은 몸 전체를 산다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 P99

찰리의 죽음과 로즈가 그 죽음에서 본 배신이 재회 가능성을 전부 망쳤다. - P105

실비는 나무에 -생각과 고민을 털어놓던 나무에 -소설책을 숨겨두고 읽었고, 줄리아는 학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전부 뛰어넘었다. - P108

"넌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인생은 정말 짧아. 중요한 것을 위해 중요하지 않은 것을 멀리하는 널 말리고 싶지 않았다. 넌 나랑 비슷해, 실비, 둘 다 학교나 직장이 우릴 채워주리라기대하지 않지. 우린 그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서 창밖을 내다보거나 우리 안을 들여다봐." - P108

"넌 더 많은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지루한 수업에 들어가거나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늘 알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몰라, 그래서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물론 그렇게 사는 게 짜증도 나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은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너랑 나는 다행히도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지." - P108

"하늘도, 네 엄마의 텃밭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기차역에서 자는 노인도 우리의 일부야. 우린 전부 연결되어 있고, 그 사실을 깨달으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돼. 엄마랑 네 언니와 동생들은 그걸 모르지. 아무튼 아직은 몰라. 자신이 자기 몸안에 갇혀 있다고, 인생의 전기적 사실이 곧 자기라고 생각하지." - P109

"우리는 우리의 모자와 신발 사이에 갇혀 있지 않다." - P109

신부님과 추도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찰리를 전기적 사실에 따라 정의하겠지만 사실 아버지는 그보다 훨씬 큰 존재였기 때문에 실비는 마음이 아팠다. 찰리는 거대하고 아름다웠고, 제지공장에서 보낸 시간이 아니라 어린 어머니들에게 선물한 이유식에 존재했다. 친절한 행동, 딸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날 저녁 식료품점 뒤에서 실비와 함께 보낸 이십 분이 바로 찰리였다. - P110

그날 나눈 대화 덕분에 실비는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실비가 제3의 문을 찾으려 한 것은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줄리아는 최우수 학생, 여자친구, 아내 같은 꼬리표를 수집하려 했지만 실비는 꼬리표와 거리가 먼 곳을 향해서만 나아갔다. 실비는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믿음을 갖든 자신에게 진실하고 싶었다. - P110

실비와 자매들은 아버지의 시선을 통해서 스스로를 깨달았다. 이제 그 시선이 사라지자 가족을 단단하게 묶고 있던 끈이 느슨해졌다. 아무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던 일에 이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모두의 집이었던 곳이 이제 로즈만의 집이 되었다. - P111

찰리의 시선을 받을 때 실비는 완전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 앞에서는 구멍이 뻥뻥 뚫린 채 사라지고 있었다. - P112

줄리아가 말했다. "베스가 된 기분이야."
실비가 언니를 더욱 가까이 끌어안았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말을 한 사람은 실비와 에멀라인, 세실리아밖에 없었다. 이전에 줄리아는 베스 같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감기나 독감에 걸려서 아프면 얼른 힘을 내서 나으려고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아연 정제를 빨아먹고 샐러드를 먹었다. 병이나 실망은 극복 대상일 뿐이었다. 줄리아는 농담으로도 굴복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 P115

줄리아의 계획에 아버지의 죽음은 없었고, 그 충격이 줄리아의 세계관 자체를위협했다. 아버지의 부재는 고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 P115

역사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범위, 즉 중요한 사건을 둘러싼 지형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무엇도, 그 누구도 진공상태에 존재하지 않았다. - P137

두 자매는 서로에게 조심스럽고 다정했다. 윌리엄은 두 사람의 그런 모습에 항상 감탄했다. 줄리아가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좋았다. 자매들 사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사실 그의 아내는 절대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파다바노가의 네 자매는 인생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강점을 칭찬하거나 활용하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었다. 줄리아는 설계자이자 리더였고, 실비는 독서가이자 신중한 목소리였으며, 에멀라인은 돌보는 사람, 세실리아는 미술가였다. - P140

"난 몰랐어요" 실비가 잠시 말을 멈췄다 "상실이 전부가 될 줄은, 모든 순간의 일부가 될 줄은 말이에요. 누군가를 잃는 것이 너무나많은 것을 같이 잃는다는 뜻인 줄은 몰랐어요." - P145

줄리아는 평생 다른 사람들-부모님, 동생들, 윌리엄-을 고치려고 애썼지만 무의미한 노력이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줄리아는 아버지를 되살리거나, 어머니를 시카고에 붙잡아두거나, 세실리아를 금욕주의자로 만들거나, 윌리엄을 야심 차게 만들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을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그동안 기술을 미세하게 가다듬었던 것이다. 줄리아는 귀여운 딸을 보호하고 찬양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전부 자기 멋대로 하게 놔둘 생각이었다. 딸이 있으므로 줄리아는 온전했다. 그녀는 감탄하며 깨달았다. 나는 날 사랑해. 지금까지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니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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