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겨울마다 나는 나무에 물을 주고 이파리를 마대 방수포로 감싸주었다. 어쩐지 그 나무가 죽지 않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일인 것만 같았다. - P68

"아까 강연에서 그 여자가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나. 그거 있잖아,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그것이 진정한 자아와 맺는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된다는 말, 그리고 진정한 자아와 조응하는 행동이 가치 있다고 여겨진다는 말. 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더이상 통제할수 없다면 어떡하지? 자기 몸을 더이상 통제할 수 없다면?" - P88

지금까지 여러 달을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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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생활?
덴고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생활‘의 이미지는 깊이와 색채가 빠져버린 유형적인 것밖에 없다. 부부, 그리고 대개는 아이가 둘. 어머니는 앞치마를 걸치고 있다. 김이 나는 냄비, 식탁에서의 대화 덴고의 상상력은 거기에서 단단한 벽에 부딪힌다.
평범한 가족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덴고 자신은 식탁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한 기억이 없다. - P348

그의 사고는 모든 출구가 막힌 미로에서 치즈 냄새만 맡는 가엾은 쥐처럼, 똑같은 길을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다. - P356

"중요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돼. 그게 세상의 룰이야." - P362

"물론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결과적으로 나름의 의미가 발생하지." 고마쓰는 말했다. - P366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고 우시카와는 마음먹었다. 살갗을 좀더 두껍게 하고, 마음의 껍질을 단단하게 만들고, 하루하루를 하나씩 규칙적으로 쌓아나가는 것이다. 나는 단지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유능하고 참을성 있고 무감각한 기계. 한쪽 입으로 새로운 시간을 들이쉬고, 그것을 헌 시간으로 바꾸어 다른 한쪽 입으로 토해낸다.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이 기계의 존재 이유이다. - P393

어떤 사람이든 사고나 행동에는 반드시 패턴이 있고, 그런 패턴이 있으면 거기에 약점이 생기지. - P409

패턴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어. 음악에서의 테마 같은 거야. 하지만 그건 동시에 인간의 사고나 행동에 틀을 만들고 자유를 제약해. 우선순위를 바꾸고, 어떤 경우에는 논리성을 왜곡하지. - P409

가장 중요한 일은 퍼센티지로 결정되는게 아니니까. - P411

주의 깊게, 참을성 있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세상을 바라본다. 좁게 구획된 세계의 한 획을. 그 미끄럼틀 위의 한 점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은 뭔가를 놓치는 법이다. 오직 한 쌍의 눈밖에 갖고 있지 않으니까. - P419

"바늘로 찌르면 붉은 피가 나는 곳이 현실세계예요." 덴고는 대답했다. -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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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다. 정당화가 되느냐 아니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두 인간과 그들 각각의 가족에게 일어난 아주 슬픈 사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 말고는 그다지 할 얘기가 없다. - P14

나는 항상 책과 와인 한 잔, 때로는 칵테일 한 잔을 들고 그 방에 앉아 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것이 요즈음 내 인생의 단순한 즐거움이었다. - P20

이곳이 내 집이고, 나는 그 안에서 안전하며, 복도 저편에서는 내 아이들이 각자의 침대에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 P21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 P21

과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그 다른 삶이 살짝 윙크를 보내는 때가있었다. - P24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 - P26

가끔은 뭔가 놓치고 있다거나 뒤처지고 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보통 그런 느낌은 곧 사라졌다. - P52

나는 서른한 살이었고 내 일을 좋아했다. 내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마야와 함께 있는 한 그저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다른 사람의 예술에 소소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도 자신이 가는 길의 일부라고, 마야는 언젠가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 P53

그 순간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지금 설명하기는 어렵다. 혼란스러운, 슬픈, 불확실한. - P56

나는 잔을 내려놓고 마야를 바라보았다. 벌써 마야가 떠나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빛이 어딘가 달랐다. 아마도 그때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 - 이미 가버린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 - 내 인생의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 P58

이런 점진적인 멀어짐은 그해 여름 내내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그것을 물리적으로 감지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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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우리 주위에서 세계의 룰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거죠. - P285

일이 너무 완벽하면 그다음에 반드시 반동이 찾아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 P299

지식이나 능력은 어디까지나 도구이지 그것 자체를 자랑하며 내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 P306

"자네는 무거운 시련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돼. 그것을 뚫고 나갔을 때,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들을 목격할 게야." - P326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없어서는 안 되고, 그림자가 있는 곳에 빛이 없어서는 안 된다. 빛이 없는 그림자는 없고, 또한 그림자가 없는 빛은 없다. 리틀 피플이 선인지 악인지, 그건 알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이해나 정의를 뛰어넘는 존재다. 우리는 오랜 옛날부터 그들과 함께 살아왔다. 아직 선악 따위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무렵부터 사람들의 의식이 아직 미명의 것이었던 시절부터 - P331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있었어요. 하지만 세월은 모든 인간에게서 조금씩 생명을 앗아갑니다. 사람은 때가 되어서 죽는게 아니에요. 안에서부터 서서히 죽어가다가 이윽고 최종 결제기일을 맞는 것이지요. 아무도 거기에서 도망칠 수 없답니다. 인간은 받은 것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나는 이제야 그 진실을 배우고 있을 뿐이에요."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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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 그 위대한 삶의 비밀을 핏속에 가진 자의 힘을 나는 안톤에게서 명확히 보았다. - P19

나는 안톤이 가진 힘의 비밀을 곧바로 이해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했기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 - P20

그의 세계관에서는 안 입는 코트를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은 완전히 당연한 일이었다. - P25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 P27

스스로 만든 이런 고립이 그에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지 알았기에, 우리는 감히 장난도 치지 못했고 크게 떠들며 웃을 수도 없었다. 그는 분명 우리가 다정하게 다가와 주기를 바랐을 터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다가갈 방법을 잘 몰랐던 우리는 서로 눈치만 보며 주저했다. 누구도 먼저 나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 P35

그 중요한 순간에 그를 저버리고 만 것은 공감 부족이나 무관심, 못된 의도가 아니었다. 가장 필요할 때 올바른 말을 못하게 막는 것은 많은 경우 용기 부족인 것 같다. - P37

패배나 굴욕의 수치심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P37

그날 아침 우리의 말 한마디, 다정한 몸짓 하나가 그에게 불행과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어쩌면 줄 수 있었으리라. - P38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돈의 실패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 P45

우리는 비록 돈에 실패했지만,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삶의 오랜 가치(일, 사랑, 우정, 예술, 자연 등)가 더욱 중요해졌다. - P46

돈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의 진수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보존하고 수호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 P46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그날, 나는 이전에도 본 적 없고 이후에도 보지 못한 가장 완벽한 공연을 관람했다. - P47

한때 나는 돈의 힘과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생활감정이 뗄 수 없이 단단히 엮여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 P48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 P48

우리는 비록 돈에 실패했지만,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삶의 오랜 가치가 더욱 중요해졌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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