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리커버)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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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잖아.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않게 엄마가, 아버지가 쓰러지고 돌봄은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지.”(p204)

간병과 돌봄의 힘겨움 속에서 살아가는 명주와 준성의 이야기다.
주인공 명주는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병간호로 잦은 결석을 하자 자퇴를 강요하는 선생님에 의해 검정고시로 학력을 취득,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결혼과 이혼, 아이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위자료도 받지않고 집을 나오게 되지만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저지른 문제로 전세금을 빼서 해결, 무일푼이 된다. 온갖 일을 하면서 얻게 된 화상,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게 되고, 생활은 더욱 곧두박질을 치고, 그러던 와중에 엄마로부터 같이 살자는 연락을 받는다.

‘처음엔 명주도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엄마를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겪는 모멸감에 비하면 내 엄마 간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 안에 있는 자비심이란 얼마나 알량하고 얄팍했던지 명주는 엄마를 돌보기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p125)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집을 나와 돌아다니다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앞으로 넘어져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약을 먹고 같이 죽으려 했지만 깨어나게 된다. 그때 어머니 휴대폰에 연금이 수령됐다고 문자 알림이 온다. 그 순간 엄마의 죽음을 묻게 된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데 차가운 바람을 뚫고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마다기 자신을 막아 세웠다. 엄마를 미라로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뇌까린 말들이었다. 이건 세상에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사죄야. 명주는 마음이 비로소 흡족하다 느껴질 때까지 보상받으리라. 그때에야 미련없이 가리라 결심했었다.’ (p138)

하지만 명주는 자신이 원한 것이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 위로 내려앉는 한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싶은 이유였다.’(p138)

명주의 이웃집 702호에 사는 준성이라는 20대 청년은 어려서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형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외국으로 튀고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아버지를 혼자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 연금은 월 60만원, 아버지를 두고 돈을 벌러 나갈 수가 없어서 낮에는 아버지를 수발, 밤에는 대리기사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다 아버지가 화상을 입게 되고, 외제차 대리를 뛰다가 사고를 내게 되고. 병원비에 보상비에

‘착하다는 말, 대견하다는 말, 효자라는 말도 다 싫어요. 그냥 단지 제 인생을 살고 싶어요. 이젠 그마저도 어렵게 됐지만요…….’(p172)

그래 이런 말들이 한 사람을 옭아매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준성이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리려다 준성의 손길을 강하게 뿌리치는 바람에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혀 목숨을 잃게 된다. 당황한 준성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명주에게 도와달라 부탁을 한다. 그런 준성을 보며 명주는 생각한다.

‘무언가 거침없는 물살이 그의 인생을 할퀴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명주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이가 좀 많다고 해서, 인생을 좀더 살았다고 해서 그 물살에 언제나 잘 대처하는 것은 아니었다.’(p127)

맞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좀더 살았다고 해서 거친 물살을 피하고 익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결국, 명주는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하게 되고 준성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때까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숨기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명주는 이렇게 말한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을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거야.’(p220)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준성을 명주와 함께 아버지를 미라로 만들고, 명주는 자신의 어머니와 준성의 아버지를 모시고 명주 엄마가 사놓은 시골집으로 가게 된다. 눈 내리는 겨울날.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참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두 사람을 보며 안타깝지만 그들의 행위까지 용인할 순 없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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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잖아.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않게 엄마가 아버지가 쓰러지고 돌봄은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지. - P204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나도 많이 살아보진 않았지만 견디지 못할 일은 없더라고. - P217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 P218

준성은 말없이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혼자서 비밀을 떠안고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각자 견뎌야 할 몫은 있는 법이었다. - P220

명주는 자신에게 이성이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 인간은 원래 사악한 동물이었다. 처음 한 대가 어려웠지 한번 나간 손은 좀처럼 멈춰지질 않았다. 명주는 엄마가 놀라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쳐다보는데도 엄마의 얼굴과 머리를 사정없이 때려댔다. 살기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목을 조르는건 시간문제였다. 엄마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두 손으로 빌며 말하지 않았더라면 명주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을지도 몰랐다. - P222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이것도 한 인생인 거야. 그 말을 들을 때면 준성은 아버지가 세상에 태어나 눈에 띄게 이룬 것도 없고, 자랑할 만한 것도 없어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 보잘것없는 인생에 대한 변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에게도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훈계를 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고 여겼다. 아버지는 그렇게 보잘것없어 보이는 당신의 삶을 조용히 홀로 삭이다 부지불식간에 가셨다. 이제 준성은 아버지의 말이 다르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살아낸 인생은 그것대로 하나의 인생이니, 너도 네 삶을 네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가라는의미로,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낼 만한 인생이 아니어도 모든 삶은 그대로 하나의 인생이니까. - P233

준성은 지금 바닥으로 떨어진 제 인생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인생을 아버지의 방식대로 살아냈듯이, 준성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싸워가고 있다고.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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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는 준성의 말을 들으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차라리 고아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간병은 그 끝이 너무나 허무하고 너의 젊음을 앗아갈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 P123

처음엔 명주도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엄마를 돌볼 수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겪는 모멸감에 비하면 내 엄마를 간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 안에 있는 자비심이란 얼마나 알량하고 얄팍했던지. 명주는 엄마를 돌보기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 P125

무언가 거침없는 물살이 그의 인생을 할퀴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명주가 어떻게 해줄 수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이가 좀 많다고 해서, 인생을 좀더 살았다고 해서 그 물살에 언제나 잘 대처하는 것은 아니었다. - P127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데 차가운 바람을 뚫고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마디가 자신을 막아 세웠다. 엄마를 미라로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뇌까린 말들이었다.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사죄야. 명주는 마음이 비로소 흡족하다 느껴질 때까지 보상받으리라, 그때에야 미련 없이 가리라 결심했었다. - P138

하지만 지금 명주는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 있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위로 내려앉는 한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싶은 이유였다. - P138

겪어보니 인간들 중 8할은 보통 사람이고, 1할은 뼛속까지 못된 사람, 1할은 좋은 사람이라고. 준성은 방금 그 1할의 좋은 사람 한 명을 태우고 온 것 같았다. - P157

착하다는 말, 대견하다는 말, 효자라는 말도 다 싫어요. 그냥 단지 제 인생을 살고 싶어요. 이젠 그마저도 어렵게 됐지만요.......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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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은 견고한 어떤 것이 아니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 P32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잖아. 처음과 마지막은 항상 다르잖아. 어떻게 처음과 마지막이 같을 수가 있니.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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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가는 법은 없다. 인생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듯이.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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