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잖아.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않게 엄마가 아버지가 쓰러지고 돌봄은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지. - P204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나도 많이 살아보진 않았지만 견디지 못할 일은 없더라고. - P217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 P218
준성은 말없이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혼자서 비밀을 떠안고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각자 견뎌야 할 몫은 있는 법이었다. - P220
명주는 자신에게 이성이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 인간은 원래 사악한 동물이었다. 처음 한 대가 어려웠지 한번 나간 손은 좀처럼 멈춰지질 않았다. 명주는 엄마가 놀라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쳐다보는데도 엄마의 얼굴과 머리를 사정없이 때려댔다. 살기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목을 조르는건 시간문제였다. 엄마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두 손으로 빌며 말하지 않았더라면 명주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을지도 몰랐다. - P222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이것도 한 인생인 거야. 그 말을 들을 때면 준성은 아버지가 세상에 태어나 눈에 띄게 이룬 것도 없고, 자랑할 만한 것도 없어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 보잘것없는 인생에 대한 변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에게도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훈계를 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고 여겼다. 아버지는 그렇게 보잘것없어 보이는 당신의 삶을 조용히 홀로 삭이다 부지불식간에 가셨다. 이제 준성은 아버지의 말이 다르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살아낸 인생은 그것대로 하나의 인생이니, 너도 네 삶을 네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가라는의미로,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낼 만한 인생이 아니어도 모든 삶은 그대로 하나의 인생이니까. - P233
준성은 지금 바닥으로 떨어진 제 인생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인생을 아버지의 방식대로 살아냈듯이, 준성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싸워가고 있다고.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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