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세상 마음대로 굴러가게 놔두면 된다. - P246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일이라는 건 바라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 세계는 오히려 그가 어떤 것을 바라지 않는지를 훤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 P246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이죠. 세상에는 모르는 채로 덮어두는 게 좋은 일도 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당신 어머니 일도 그래요. 진상을 알게 되면 그건 당신에게 상처가 돼요. 그리고 일단 진상을 알게 되면 거기에 대한 책임도 떠맡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 P265

남자는 잠시 틈을 두고 나서 말했다. "내가 아직 맛본 적이 없는 고통이 있다면 그게 어떤 것인지 한번 보고 싶군." 거기에는가벼운 야유의 여운이 담겨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든 고통이란 즐거운 게 아니죠."
"하지만 아픔을 수반하는 게 효과는 더 크겠지. 그렇지 않은가? 의미 있는 고통이라면 나는 견딜 수 있어." - P267

"아픔은 많은 경우에 다른 아픔에 의해 경감되고 상쇄되지. 감각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야."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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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있는 정상적인 사람은 눈사태가 일어날 법한 계절에 눈사태가 일어날 법한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아." - P126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무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변함없이 덴고라는 열 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않은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 - P133

신문은 ‘일어난‘ 일은 적극적으로 다루지만 ‘진행중인‘ 일에는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매체다. - P138

고전적으로 표현하자면, 당신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긴 했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파워풀한 조합이었다. 각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서로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 P187

친절이라는 건 지금(혹은 항상) 이 세계에 부족한 것 중 하나였다. - P188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거예요. - P211

"공백이 생기면 누군가가 와서 채워야 해요. 다들 그렇게 하는거니까." - P215

"설명을 안 해주면 그걸 모른다는 건, 말하자면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른다는 거야." - P215

이 사람은 텅 빈 잔해 같은게 아니다. 그냥 빈 집도 아니다. 고집스럽고 협소한 영혼과 음울한 기억을 안고 바닷가 요양소에서 더듬더듬 삶을 이어가는 살아 있는 한 남자다. 자신의 내면에서 서서히 퍼져가는 공백과 어쩔 도리 없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아직 공백과 기억이 뒤엉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이윽고 공백이, 본인이 그것을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남겨져 있는 기억을 완전히 삼켜버릴 것이다. 그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가 이제부터 맞서려는 공백은, 내가 태어난 곳과 똑같은 공백일까.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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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윤도의 세계는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내 비밀의무게에 짓눌려 남들도 자신의 비밀을 짊어지고 살고 있을 거라는생각을 하지 못했다.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 P125

때때로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 P131

학교라는 사회가 야생이나 다름없으며 다층적인 권력관계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 삶이라는 게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자각이 없다는 점. 순수의 시절에나 간직할 수 있는 맑은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 태리의 그런 투명함이 나는 언제나 불편했다. 그 맑은 얼굴에 보기 흉하게 구겨진 나의 내면이 자꾸만 비쳐 보이는 것 같아서.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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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가 말했어." 다마루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 고" - P36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 P36

아오마메는 탄환이 장전된 권총을 받아들고 그 무게가 불어난 것을 깨달았다. 아까처럼 가볍지는 않다. 거기에는 확실히 죽음의 기척이 있었다. - P84

인간에게 죽을 때라는 건 아주 중요한 거야. 어떻게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어. - P87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는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영화와는 달라. 영화에서는 다들 깨끗하게 죽지. - P87

"돈은 필요 없어. 이 세상은 돈보다 오히려 서로 빚을 주고받는 걸로 돌아가거든. 나는 빚지는 건 싫으니까 가능한 한 빚 받을 데를 많이 만들어두지." - P89

"체호프는 뛰어난 작가지만 그의 방식만이 유일한 건 아니야. 당연한 얘기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총이 모두 다 불을 뿜는 건 아니야." - P91

자신이 지금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의식만으로도 세계가 조금 달라 보였다. 주변 풍경에 기묘한 낯선 색감이 더해졌다. - P92

모든 총이 다 불을 뿜는 건 아니야, 아오마메는 샤워를 하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총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야. 여긴 터진 틈과 부정합성과 안티클라이맥스로 가득한 현실세계야. - P92

이따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깜박 잊을 뻔하기도 했다. 이건 진짜 현실일까. 자신에게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면, 다른 어디에서 현실을 찾아야 할지 그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선은 이것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어떻게든 이 현실을 살아낼 뿐이다. - P95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아오마메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두려운 것은 현실이 나를 따돌리는 것이다. 현실이 나를 두고 가버리는 것이다. - P95

과거를 아무리 열심히, 면밀하게 다시 바꿔 쓴다 해도 현재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의 큰 줄거리가 변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라는 건 인위적인 변경은 모조리 취소시켜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가해진 수정에 다시금 새로운 수정을 덧칠하여 흐름을 원래대로 고쳐갈 게 틀림없다. 다소의 세세한 사실이 변경되는 일은 있다 해도,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덴고일 수밖에 없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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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인간관계에 뒤엉키는 일 없이, 규칙에 얽매이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않고, 혼자 자유롭게, 아주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웬만한 불편은 참아낼 용의도 있었다. - P535

미래도 언젠가는 현실이 돼. 그리고 그건 또 금세 과거가 되지. - P543

"올바른 역사를 박탈하는 것은 인격의 일부를 빼앗는 것과 똑같은 일이지. 그건 범죄야." - P544

"우리의 기억은 개인적인 기억과 집단의 기억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거야." 덴고는 말했다. "그 두 가지 기억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지. 그리고 역사라는 건 집단의 기억을 말하는 거야. 그것을 빼앗으면, 혹은 고쳐 쓰면 우리는 정당한 인격을 유지할수 없어." - P544

"저지른 쪽은 적당한 이론을 달아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어. 보고 싶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릴 수도있지. 하지만 당한 쪽은 잊지 못해. 눈을 돌리지도 못해. 기억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이어지지. 세계라는 건 말이지, 아오마메 씨,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야." - P623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는 게. 나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게." - P624

아오마메는 말했다. "티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와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나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해. 빛나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야." - P626

"하지만 과거를 바꿔 쓰면 당연히 현재도 바뀌어. 현재라는 것은 과거가 모이고 쌓여서 이루어진 거니까." - P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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