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진지해." 나는 말했다. "그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낄 뿐이야." - P99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진척되는 듯했고, 아마 그래서 내가 물러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모르겠다. 얼마 뒤에는 이 관계 역시 근래에 맺은 다른 모든 관계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기엔 바로 그 친밀함이, 그 신뢰가 없었다. - P107

세월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친밀함의 문제야, - P107

여러 해가 흐른 뒤에도 가끔 그녀의 눈 속에 얼핏 스치는 그 시절의 다른 자아는 라인벡으로 가는 기차에 오르는 순간 희미해지기 시작해 소도시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점점 더 흐릿하게 멀어지곤 했다. - P111

예전에는 그런 감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예전에는 우리가 젊음의 어떤 절정에 도달했다는 감각, 우리가 여전히 젊다는 게 아니라 아직은 그런 척할 수 있다는, 더 젊은 자아로 슬쩍 되돌아가 다시 대학 시절의 그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그건 속임수이자 가장 놀이였고, 우리는 그 놀이를 자주는 아니어도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을 만큼은 이어갔다. - P112

"그런데 가장 무서운 건 뭔지 아니? 이젠 문제가 뭔지도 모르겠다는 거야. 내 말은, 데이비드가 날 배신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런 거라면 쉽겠지. 어쨌든 문제가 이거라고 짚을 수라도 있을 테니까." - P119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화가 난 건 기만당해서였고, 짜증이 난 건 그들이 이 소식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으며, 슬픈 건 그런 일이, 어쩐지 없을 거라고 애써 믿었던 그 일이 이제 정말로 일어날 것 같아서였다. 모든 것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찼다. - P123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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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하는 자의 사각은 추적당하는 것이다. - P503

일단 기대가 생겨나면 마음은 그것을 계기로 독자적인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대가 어긋났을 때 사람은 실망하고, 실망은 무력감을 부른다. 마음에 틈새가 생기고 경계가 허술해진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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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만남이 우리 삶에 어떤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이따금 가져야 한다. 왜 이 직업 또는 저 직업을 선택했고, 왜 이 도시, 이 집을 선택했을까? 삶의 최종 방향을 제시한 결정적 계기는 실제로 무엇이었을까?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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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팔다리에 저릿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닫고 보니, 그의 내부에는기묘한 공간이 생겨나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공동空洞이었다. 그 공간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결락이며 틀림없는 무無였다. 우시카와는 자신의 내부에 생겨난 그 낯선 공동에 주저앉은 채 일어설 수 없었다. 가슴에 둔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그건 아픔이 아니다. 결락과 비결락의 접점에 생긴 압력차 같은 것이다. - P461

그가 느끼는 따스함은 아픔과 짝을 이루어 찾아온 것이니까. 아픔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따스함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건 교환거래같은 것이다. - P465

그가 당면한 극심한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그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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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역사를 진정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모든 역사책이 센강의 낚시꾼에 관한 그날의 사소한 일화를 빼놓지 않고 다루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일에 비추어 볼 때, 그 일화는 사실임이 분명할 뿐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역사적 진실인 것 같다. 우리는 현재 매일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 P55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 P56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 사방에서 벌어지더라도 일상생활은 평범하게 계속 이어진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런 동시성을 나는 한 신문에 실린 항공사진을 보고 명확히 이해했다. 사진에는 살인적인 폭격이 쏟아지는 참호와 옆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같이 담겼는데, 농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말을 끌며 밭을 갈고, 콩코르드광장에서 왕이 처형될 때 센강의 낚시꾼들이 했던 것과 똑같이 폭격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P57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하지 않은 모든 사건에 관심을 둘 의향이 매우 강하고, 그것에 몰두하고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소망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모두 더 강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 자연법칙은 우리의 참여의지와 공감 능력을 현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제한한다. 강한 흥분이 연속되면 필연적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너무 오래 계속되는 과도한 긴장은 일종의 마비를 일으킨다. 2000년 전에 이미 그리스 극작가들은 이것을 비극의 법칙으로 알고 있었다.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는 극의 길이를 두 시간, 길어야 세 시간으로 제한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비극이 한없이 길어지면, 그것에 몰두하는 능력이 오히려 감소하기 때문이다. - P59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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