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여름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아이다호 팬핸들에서 스포케인 국제철도회사 상점의 물건을 훔치다가 잡힌. 그러니까 어쨌든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는 중국인 노동자를 죽이려는 사람들 무리에 가담했다. - P7

"그냥 재미로 시작한 건데. 재미로." 흙바닥에 앉은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동료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어이, 젤 투미스, 이제 그만하지." - P9

점점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집으로 걸어가던 그레이니어는 사방에 그 중국인이 있는 것 같았다. 길에 서 있는 중국인. 숲속의 중국인. 양팔을 밧줄처럼 늘어뜨린 채 천천히 걷고 있는 중국인. 개울에서 거미처럼 사사삭 기어나오는 중국인. - P11

어둠 속에서 딸이 궁지에 몰린 짐승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괜한 상상일 뿐이었지만,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레이니어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그뒤로 평생 동안 이날 밤의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 P14

그레이니어가 맡은 일은 밧줄 담당이었다. 기차 도착점 쪽이 아니라 숲 쪽에서 숲에서 벌목꾼들이 둘씩 짝을 지어 톱으로 가문비나무를 쓰러뜨리면, 가지 담당이 도끼로 잔가지를 깨끗하게 쳐내고, 톱장이가 통나무를 18피트 길이로 잘랐다. 그다음에는 밧줄 담당이 통나무를 밧줄로 감아 말이 운반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레이니어는 이 일이 좋았다. 불끈불끈 힘을 쓰고 나면 탈진해서 도취한 것 같은 상태가 되고, 그렇게 하루 일을 끝낸 뒤에는 푹 쉬었다. 숲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규모가 웅장한 것도, 멀고 외딴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이렇게 많은 나무들이 감시병처럼 서 있으니 어떤 위험도 자신을 찾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감각도 좋았다. - P18

나무가 우리를 친구로 대해주는 건 우리가 건드리지 않을 때뿐이야. 톱날이 파고들어간 다음부터는 전쟁이 벌어지는 거라고. - P19

안 피플스는 가만히 서 있는 나무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에게 죽음을 내려보낸 것은 바로 그런 나무였다. - P23

성경책도 보이지 않았다. 주님이 자신의 말씀이 기록된 책조차 지키지 못했다면, 그레이니어가 보기에 그것은 이곳을 찾아온 불길이 하느님보다 더 강했다는 증거였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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