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이 적당한 시점에 최악의 결말로 끝나버릴 거라는 염세적인 기분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건대, 그 감각은 세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으로 구성되고, 나는 속절없이 휘말릴 뿐이라는 것을 그 시절에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걸레가 되고 그 짓거리 하는 년이 되고 씨발년이 된다. 그건 내 의도도 누구의 의도도 아니다. 세계가 그렇게 나를 그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 P86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해야 하는 싸움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싸움도 있는 법이다. - P88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빠가 컴퓨터를 부순 이후로 아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빠가 교육의 일종이랍시고 하는 모든 일이 내게는 단순한 화풀이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P91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동생이 생긴다는 것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족이 하나 더 생긴다는 건 식구가 는다는 거고, 식구가 는다는 건 더 깊고 깊은 가난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거다. - P92

집에 가는 도중에 미정에게서 문자가 왔다. 장문의 문자였다. 나는 그 문자를 읽은 뒤 그냥 삭제해 버렸다. 조금 후회했지만, 이윽고 후회 따윈 하지 않는 채로 삶을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P109

얘들아, 무망한 게 제일로 무섭다. 할머니는 침대에 묶인 채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몹시 놀랐다. 그럼 할머니는 기어코 무엇을 열망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단 말인가. - P113

내가 내보이는 모든 모양새에 무심함이 묻어나야 한다. 그게 어른들의 세계에 잠입하는 방식이다. - P113

누군가의 생이 끝나버릴 뿐인 생리 현상을 그와의 영원한 작별로 편리하게 의미화해버리는 어른들의 태도가 우스웠다. 끝이라는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정해진다면 우리는 진작 고통받는 일없이 살고 있을텐데 - P115

상대방이 신중하지 않은 태도로 뱉은 말은 절대로 믿어선 안 된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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