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 내가 이 책을 그토록 소중히 마음에 간직해온 이유는 엉뚱한 것이었지만 그건 오독 때문이 아니라 앎이 아직 여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책이 오히려 더욱 위대하고 감동적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책 한권의 풍요한 의미를 향해 여행을 해야 하는 쪽은 독자인 나라는 걸 처음 똑똑히 깨닫기도 했다. - P32
소설의 핵심에 놓인 투쟁은 폴과 모친의 갈등보다는, 성애를 해방으로 착각하는 풀이 자기 환상을 붙잡고 씨름하는 데 있다. 까마득히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비로소 이 통찰을 제대로 이해했다. - P35
이상적인 삶-교육받은 삶, 용감한 삶,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면, 사랑은 추구할 뿐아니라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목표여야 마땅했다. 사랑만 쟁취하면 존재는 철저히 탈바꿈한다. 그러면우리가 일상적으로 서로에게 건네는 내면의 삶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어설픈 보고서 따위가 아닌, 풍요롭고 심오하고 질감이 살아 있는 산문을 직조할 수 있게 된다고들 했다. 사랑의 약속 하나만 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진정성 있는 경험을 찾아 저 바깥으로 고개를 돌려 이런저런 경고에 시달려야 하는 감시관할구역을 떠나는 꿈을 꿀 수 있었다. 심지어 확실한 결혼 약속 같은 것 없이도 거침없이 낭만적 열정에, 그러니까 사랑에 풍덩 빠질 때에만 경험을 얻어낼 수 있었다. - P37
감각하는 인간이면서도 자기 내면과 대화할 줄 모르고 언어가 없어서 기쁨을 잃은 본연의 자아에 접근할 길도 막혀버린 그의 머릿속엔 혼돈만이 가득하다. (이 모든 것 안에 나는 어디 있나?) - P39
작가는 폴을 통해 육체나 영혼에 정확히 얼마나 헌신해야 하는지를 탐문함으로써 아들과 연인에 근본적으로 깔린 문제를 다룬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작품에 깔린 진짜 문제를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안에서 밖으로 내면을 외재화하며 자아를 구축할까. 그것이 문제였다. - P44
사실이 그러했다. 영혼을 기형으로 일그러뜨리는 대상을 앞에 두고 기분 나빠하면서도 침착하게 대처한다는 건 어중이떠중이의 도덕률이다. 격렬한 분노로 맞서 싸우는것이야말로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낼 길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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