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열망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오류에 찬 시도가 늘 실패하기 마련이듯, 열심히 하겠노라고 다짐해 보이는 나의 애원도 대번에 거부당하고 말았다. - P149
그 가을 오후 내가 그의 믿음을 저버리기 전까지 종태는 내게 한 자락 부드러운 시선이었다. 호수의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나를 향해 펄쩍펄쩍 뛰어와 주었던 그순간 이래로 항상 너그러운 눈길로 나를 지켜봐주고, 수줍고 머뭇거리기를 잘했던 종태는, 나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울타리였다. - P153
"왜 아니래냐? 그때 에미 맘이 오직했는 줄 아냐?" "아이고, 엄니! 그러니 그때 내 맘은 오죽했겠수?" 나는 외할머니의 ‘오직한 마음‘과 어머니의 ‘오죽한 마음‘ 중 어느 것이 더 절실했을지 저울질을 해보았다. - P157
어머니는 영웅의 일대기에서나 있음직한 출생의 비범함(파랑새 신화)이라든가 어린 시절의 고난(혈관종)과 극복(기적적 치유) 등의 모티프를 내 유년에서 발견했다고 믿고, 그와 똑같은 영웅적 삶을 내 미래에 투사하고 있었다. - P160
정신의 항아리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어지러운 상념의 가루들이 잦아들면서 나는 잠이라는 고운 뻘밭으로 한 발씩 빠져든다. - P171
아버지와 나는 라면을 끓여먹는 취향이 달라서 두 개의 냄비에 따로 끓였다. 아버지는 국물을 넉넉히 붓는 편이고 나는 적당히 붓는 편이었다. 아버지는 라면을 네 조각으로 쪼개고 나는 통째로 넣었다. 아버지는 라면발이 퉁퉁 불도록 끓여 숟가락으로 뚝뚝 떠서 먹고, 나는 면발이 살짝 덜 익어 쫄깃거리게 하여 젓가락으로 호로록 건져 먹었다. 아버지와 나는 라면 먹는 방식에서 도저히 화합할 수 없었다. - P176
지고한 것에 대해 복종하고 헌신하는 태도를 톨스토이는 감격벽이라고 불렀다. 누구에게나 감격벽으로 충만한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감격하기 쉬운 습벽은 아마도 고결한 이기주의와 맹목적인 이타주의의 결합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감격벽을 가진 사람은 결코 비열해질 수 없고, 실리적인 문제에 어둡거나 적어도 그런 체해야 하며, 증오와 애정의 선이 분명한 대신 그 근거는 박약하기 짝이 없고, 세상이 이편과 저편으로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 - P178
지고한 가치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습벽은 냉철한 실용주의의 대척점에 있기도 하다. 나도 한때 감격벽에 사로잡힌 젊은이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감격벽, 그 나르시시즘적인 욕망을 극복하는 길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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