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달콤한 매혹 속에는 그렇듯 파렴치한, 스스로 외면하고 싶은 죄스런 욕망이 씨앗처럼 단단히 박혀 있는 걸까. - P79
여성적이고자 하는 욕망은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중성적이고자 하는 욕망은 나를 심각하고 진지한 고민에 빠뜨렸다. 당시의 내게 여성성은 유혹과 매력이었고, 중성성은 당위이자 압력이었다. 누구나 그랬듯이 나는 둘 사이에서 방황했으며, 누구나 그런건 아닐진대 나는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한동안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 P83
여자들은 일에 열중할 때 가장 진지한 얼굴이 되곤 하는데,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외가쪽 여인들도 서로 협력하여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숭고하게 보였다. - P84
나는 거기서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무엇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보다는 왠지 모를 상실감, 뭔가 중요한 걸 놓쳐버렸다는 슬픔에 안타까웠지만, 그러나 나는 더이상 허기진 얼굴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자리를 기웃거리는 짓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훌쩍 비켜서기로 했다. 여름 농촌활동을 계기로 나는 씩씩하고 걸출하고 통이 큰 중성적 여성이 되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이 선택도 내게 그다지 적합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아니, 어떤 선택에 대해서건 내 인생 자체가 별로 적합한 포즈를 취해주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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