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식으로 말해서 명호로부터 날아온 우연의 새가 내 오른쪽 어깨에 내려앉았다면 종태가 띄워보냈다고 여겨지는 새로운 우연의 새는 내 왼쪽 어깨에 날아들었다. 온통 잡새 천지인 교정에서 내 이름의 양어깨에 내려앉아준 그리운 우연의 새들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 P41
자기 생각뿐인 걸 가지고 전부의 생각인 것처럼 대표하려고 하는그런 태도에서 바로 독단이란 게 생겨난다고 본다. - P52
"선배들이 운동권 얘기만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그 반대되는 자기 생각만 얘기하는 것도 문제 아닐까? 대학은 누구한테나 똑같은 생각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데가 아닌 걸로 나는 알고 있고, 그러기 위해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지성인다운 태도가 필요한데, 그걸 거부하고 자기 논리만 옳다는 식으로 나간다면 그게 바로 파쇼고 군부독재가 되는 거다. - P54
수많은 디테일이 차곡차곡 쌓여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고 종합되는 열정적 사랑이 아니라, 그것과 정반대로, 그렇게 표나는 유일무이성을 참을 수 없어하는 내 마음의 알리바바는 만나는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건네받는 족족 그 정표에 동일한 표시를 하여 사랑이란 보물을 갈구하는 내 마음의 도적떼를 혼란시켰다. - P57
내 머릿속은 바빠진다. 기억과 상상은 새로운 조리를 실현하는 또하나의 부엌이다. 기억과 상상은 도마와 칼처럼 부지런히 호응하여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음식들을 분주하게 마련해놓는다. - P59
실현되지 않은 맛에 대한 기억의 길이, 그리움의 길이가 얼마나 기나긴지 내 혀는 알고있다. 충족되지 않은 식욕은 언제든 몸서리치게 끈끈한 식탐으로 부활한다. 내 혀가 내 식욕이 잠에서 깨어난 것은 열한 살 때였다. 각성이 항상 인생에 바람직한 건 아니다. 그것은 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 온다. - P59
나는 ‘인물이 좋다‘든가 ‘훤하다‘는 말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그 말들은 평범하게 생긴 얼굴을 짐짓 치켜세우는 말처럼 들렸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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