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발견한 것은 바로 죽음 뒤에 남게 될자신의 모습이었다. - P216

춘희는 비로소 생전의 점보가 말하던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거였다. 파리가 눈에 앉아도 눈을 깜박여 쫓지 못하는 거였고 차가운 비가 내려도 피하지 못하는 거였으며 다리가 아파도 앉아서 쉴 수 없는 거였다. - P218

춘희가 느낀 슬픔은 쌍둥이자매만큼 강렬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상실감은 그네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훗날 그녀가 공장에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 P218

춘희가 되는 대로 이겨놓은 진흙을 본 文은 그녀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춘희가 비록 말은 못 하지만 물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독특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녀에게 벽돌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 춘희의 나이 열두 살이었다. - P228

文도 처음에는 춘희와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녀가 말도 못 할뿐더러 사람들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그녀가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구태여 언어가 아니더라도 서로 주고받는 미묘한 느낌과 감정을 통해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文에게도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 P228

춘희는 곧 文이 한없이 고독하고 슬픈 감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이를 의아하게 여겼다. 그녀는 끝내 文의 슬픔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 때문에 文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점보와 함께 공유했던 일종의 연대감과 같은 것이었다. 두사람 사이에선 말이 없는 가운데 그렇게 차츰 독특한 부녀관계가 형성되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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