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죽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위해 양복을 사야 한다. 그것이 그로첸스키의 유령이 내게 하는 말 아니었을까? 나는 아이작을 창피하게 할 수 없었고 날 자랑스럽게 여기게도 할 수 없었다. 그애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 P129

새 양복을 차려입고 선반에서 보드카를 꺼냈다. 한 모금을 마시고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알코올의 예리함이 슬픔의 예리함을 대체하는 것을 느끼며, 내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눈을 반쯤 감고서 백 번은 했을 그 몸짓을 반복했다. 그러다 술병이 비고 나서는 춤을 추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하지만 점점 빨리. 발을 쿵쿵 굴렸고 관절에서 뚝뚝 소리가 나도록 발길질을 했다. 내 아버지가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춘 춤을 나도 추며 발을 쾅쾅 차고 쭈그리고 다리를 내뻗었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웃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또 추어서 발이 까지고 발톱 밑에 피가 맺히는데도,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대로 춤을 추었다. 삶을 위해, 의자에 부딪히고 빙글빙글 돌다가 쓰러지면 일어나 다시 춤을 추었다. - P129

나는 세상이 날 맞을 준비를 못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어쩌면 내가 세상을 맞을 준비를 못했다는 게 진실일 것이다. 나는 인생의 현장에 항상 너무 늦게 도착했다. - P130

우리에게 가능했던 인생과 우리의 지금 인생 사이에 놓여 있던 문은 우리 눈앞에서 닫혀버린 후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눈앞에서 내 삶의 문법은 이렇다. 경험 법칙에 따라, 복수형이 나오면 항상 단수형으로 고친다. 그 고귀한 우리라는 말이 무심코 흘러나오더라도 신속히 머리에 일격을 가해 비참함에서 벗어난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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