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점보는 자기만의 시간대에서 살아갔다. 그는 일 분에 겨우스물다섯 번밖에 뛰지 않는 심장을 가지고 느릿느릿 움직였으며 춘희 또한, 그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움직였다. 그들의 세계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었지만 대신에 길 한쪽에 비켜서서 질주하는 자동차를 지켜보는 것처럼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하루살이의 인생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 P185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죠. 아무리 우물이 깊어도 반드시 바닥은있게 마련이에요. - P187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에 관한 귀납적인 설명이다. 즉, 한 인물의 성격이 미리 정해져 있어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 P188

죽으면 사라지는 거야. 그리고 헤어지는 거지. 영원히. - P197

떠도는 자들의 소망이란 본시 소박하기 짝이 없어, 그저 입에 풀칠할 걱정 하지 않고 두 다리를 뻗을 데만 있으면 그들에겐 그곳이 바로 꿈에 본 내 고향이요, 복숭아꽃 흐드러진 정원이었던 것이다. - P200

춘희에게 금복은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신기루와도 같았으며, 춘희의 바람은 끝내 채워질 수 없는 허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그것은 결국 그녀를 평생 따라다닐 아득한 그리움이 되고 말았다. - P200

본시 뜨내기들이란 들어올 때 다르고 나갈 때 다른데다 염량빠르기로 치면 장사꾼 못지않았고 거칠기로 치면 건달 못지않았으며 음험하기로 치면 거간꾼 못지않았다. 또한 그들 가운데에는 뭔가 틈이 있으면 그 틈을 더욱 넓게 벌려 그 속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 P202

여기저기서 거침없이 죽이자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물론, 일꾼들을 부추기고 충동질해서 그곳까지 끌고 온 자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의 말엔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것은 그 어떤 백 마디 말보다도 힘이 있었고 그 어떤 논리보다도 설득력이 있었으며 그 어떤 선전문구보다도 자극적이었다. 그것은 구호의 법칙이었다. 재청에 뒤이어 봇물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온갖 종류의 구호들이 쏟아져나왔다. - P205

금복은 자신에게 돌아온 엄청난 행운이 곧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게 된 운명의 아이러니에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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